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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은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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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genii] 쪽지 캡슐

2008-07-01 ㅣ No.12

 
여기에 이런 글을 써도 좋을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그저 저는 천주교에 입교하면서 다른 어떤 요인보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삶과 행동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먼저
밝히고 싶습니다. 저는 멀리 있는 교황님보다, 하늘에 계신 성부 성자 성령보다 우리나라에 계신 추기경님을 본받고자 영세를 받고, 견진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런 발언이나 생각이 진정한 카톨릭 신자로서의 자질로는 적합하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도 나라의 위기 상황이나 극단적인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추기경님의 적절한 정치적 발언과 행동은 큰 교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완전히 내리막을 걷지는 않겠구나 하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 신자가 되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신자임을 밝히며 너무나 즐겁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노력도 했습니다. 모두가 행복하고 차별이 없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 위해서 저부터 열심히 살았던 것입니다. 희생이나 봉사, 불우이웃 돕기, 환경 보호. 성당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은 그런 저의 마음에 잘 맞았습니다.
 
최근 나라가 많이 어렵습니다. 서로 원인을 미뤄대며 폭력 일변으로 가고 있는 양상입니다. 벌써 두 달 정도 국민들은 생업에 힘쓰지도, 여가를 즐기지도 못한 채 지내고 있습니다. 행여 웃기라도 하면 어딘지 양심에 걸려 '내가 이래도 되나'하는 자책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분명 이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카톨릭이 가만히 있는 것 역시 정상이 아닙니다. 저는 기다렸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천주교에서 행동해 주기를. 성당 차원에서 정식으로 정부에게 이런 저런 어려움과 잘못이 있음을 지적해주리라 기대했습니다. 아니 예전에 제가 기억하는 한국 카톨릭은 그런 기다림이 불필요할 정도로 앞장서 나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물론 어제 시국 미사가 있었습니다. 정의사회구현실천 사제단의 미사와 강론은 정말로 눈물겨웠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런 움직임마저 없었더라면 저는 배교를 할지도 모를 정도로 신앙과 삶에 위기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명동성당을 위시한 한국 카톨릭의 공식 입장은 아직 어떤 것도 나오지 않고 있네요. 답답할 따름입니다. 성당에서 미사만 드리면 되고, 착하게 살면서 성서 말씀만 읽고 있으면 되는 겁니까? 그러는 게 카톨릭 본연의 정신입니까?
 
사실 이런 불평은 여기다 털어 놓을 게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마땅히 어디에 대고 말해야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제 신앙의 출발이였던 추기경님께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왠지 추기경님께선 알아주실 거 같았고 추기경님께서 알아만 주셔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건강이 회복되시면 좋겠습니다. 아직 이땅에 함께 계시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고, 꿈이라도 꿀 수 있으니까요. 기도하겠습니다. 회복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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