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봉사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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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규 [ereneo] 쪽지 캡슐

2003-08-28 ㅣ No.3931

 

얼마 전 책에서 소중한 이야기 하나를 읽었습니다.

파키스탄과 중국을 국경두고 있는 인도 북부 라다크(Ladakh)에 사는 사람들은 약속 시간을 정할 때 ‘어두워진 다음 잠잘 때’ ‘산꼭대기에 해가 오기 전’ ‘아침에 일어날 때’ 등이라고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모호한 시간 개념으로도 일상생활에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합니다. 약속 시간에 10분이라도 늦으면 핸드폰으로 재촉하기 바쁜 요즘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 입니다.

이들이 이처럼 여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습니다.

난 ‘속도’와 함께 살아왔습니다. 그 속도에 현기증까지 느껴질 정도입니다. 하루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먹고 살아가는 문제 때문에 난 어제도, 오늘도 정신없이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전 이제 변했습니다. 쉼이라는 단어에 숨겨진 진정한 의미를 발견한 것은 성 바오로 병원에서 였습니다.

제가 봉사를 시작한 지는 이제 불과 3개월 남짓 밖에 되지 않습니다. 병원에서의 봉사활동을 한 것도 횟수로 따지면 8번 정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그 짧은 시간동안 느꼈습니다.

전 매주 1회 월요일 오전 환자들을 일일이 방문하며 기도를 하고 위로하는 봉사를 맡았습니다. 일할 시간을 쪼개 병원을 방문해 봉사활동 한다는 것은 과거엔 생각도 못하던 일이었습니다. 그저 막연히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교통사고로 입원한 한 자매를 만난 것은 병원에 첫 봉사활동을 한 날이었습니다. 얼굴에는 핏기가 없고, 눈은 초점이 없었습니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고, 말 수는 거의 없었습니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습니다.

출근하면서 버스에서 내리다 차와 부딪혔다고 합니다.

지금은 거동을 거의 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안타까웠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그분을 위로해 드릴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전 일단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난 그분의 손을 잡고 간절히, 그리고 마음을 모아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자매님의 고통이 하루빨리 낳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자매님께 진심어린 마음으로 빠른 쾌유를 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진심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한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 다시 자매님를 찾아 갔습니다. 자매님은 단정한 머리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살아야 되겠다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눈물 흘린 기억이 가마득하던 나의 마음속에서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 난 자매님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처음 봉사활동에 나설 땐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봉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봉사활동을 통해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웁니다. 건강의 소중함을 배우고, 또 사랑하는 마음을 배웁니다.

 병마의 고통 속에서도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려는 환자들을 보면서 나약해지는 삶의 의지를 바로세웁니다.

 병원에서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보는 수녀님들과 간호사님, 의사분들, 그리고 모든 직원들의 모습속에서 직분에 충실하는 법을 배웁니다.

봉사활동은 내가 남에게 해 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난 욕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얻고 싶습니다.

사랑의 소중함도 더 많이 느끼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전 성 바오로 병원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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