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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사랑의 수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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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록 [peterkauh] 쪽지 캡슐

2008-09-09 ㅣ No.6597

 
(이 글은 지난 주일 우리 본당 반석회 9월 월례모임에서 수잔나 원장 수녀님께서 해주신 두 번째 특강을 듣고 그 요지를 적은 것입니다. 수녀님께서는 반석회 외에도 본당 신자들을 위해 심리치료와 영성교육 과정을 열고 계시며, 앞으로도 자주 반석회의 요청에 응하시어 월 첫째 주일 교중미사 후 깊은 묵상과 함께 감동적인 영적 나눔에 함께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참여를 환영합니다. 이 글 속에는 옮기는 저의 임의적 해석도 포함되어 있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글은 요약되어 딱딱하지만 수녀님의 절제된 가운데서도 사랑과 영성 넘치는 강의는 듣는 모든 이의 가슴 깊숙히 파고들어 긴 여운을 남김니다. 이 자리를 빌어 수녀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진정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왜  '콩쥐와 팥쥐'의 콩쥐에, '흥부와 놀부' 의 흥부에, '프시케와 아프로디테'의 프시케에 연민하는가?
궁지에 몰린 콩쥐를 돕는 참새와 두꺼비, 흥부를 돕는 제비, 프시케를 영적 사랑으로 이끈 에로스는 과연 무엇인가?
 
그토록 평생을 통해 몸부림 치며 그럴듯한 사회적 인격을 형성했으나 자아는 실현되지 못한 체 밑바닥에 짓눌려,
일생을 되돌아 보며 허무한 삶을 후회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사회를 향한 '포장된 나의 인격(persona)' 속에 내가 실현한 나의 '진정한 자아(self)'는 얼마나 될까?
특히 장년에 이르러 마치 자신이 무슨 "경지"에 이른 것 같은 가식과 허세로 가득 차 참 자아를 상실한 껍데기 "인격"으로 굳어진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지금 대부분의 부모로서 우리가 자녀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persona(페르조나: 사회적 인격)의 형성인가,
self(자아)의 실현인가?
 
 우리는 처음 자신에 대한 인식(자의식)이 없는 무의식 상태로 태어난다.  
태어날 때까지는 경쟁대상이 없이 완전히 보호되고 있는 상태로서 피아를 구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모자는 곧 한 몸 처럼 혼연일체의 상태로서 자신은 혼자이지만 일체감 속에서 완전하게 보호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늘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이 상태인지도 모른다.  심리학자 융(Carl Gustav Jung)이 "인간에겐 영원한 향수가 있다"고 말한 것은 바로 태어나면 영원히 되돌아갈 수 없는 이 모자의 완전한 일체 상태에 대한 동경과 욕구일 것이다. 이 욕구는 인간관계(부부, 부자, 모녀, 친구 관계 등) 속에서도 되살아나며 끝없는 마찰과 갈등으로 표출된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 자의식(ego)이 형성되는 시기에는 특히 이런 욕구가 가장 강해서 어머니와의 일체감, 혼자 차지하고 싶은 독점욕이 때론 관심을 끌기 위한 투정과 화, 때로는 무능함의 표시,  등으로 나타난다. 또한 가족관계 등에서도 욕구불만이 빈발한다. 이를 이해와 사랑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도록 유도하여 자아를 육성하기 보다는 일방적이고 억압적인 (예를 들어 유교적인) 인습의 강요와 사회적 경쟁에서의 우열만을 강조하여 내면적 상처만 가중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분노와 좌절 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져 win-win이 아닌 상호 파괴적 형태로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이 때 다른 동배와의 비교평가와 외압으로 형성되는 부정적 의식("나는 사랑받을 수 없어"라는 열등의식, "하면 않돼"라는 강박관념,  등)이 확대되고 누적 침잠되면서 컴플렉스와 병으로 발달한다.(프로이드, 융, 등의 "무의식과 잠재의식에 관한 심리학 이론)
 
 여기 참고할만한 틱낫한 스님이 설파한 교훈이 있다.  인간의 마음은 마치 물 주면 자라는 식물처럼 마음 속에 무엇을 육성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나쁜 것에 물 주지 마라."  자신을 다스려 참 자아를 실현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길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무관심과 이기심, 즉 사랑을 심어주지 못함으로써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 속의 "나"
 
"나는 나다(La Casa Piccola)"--출3.13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하느님이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나는 곧 나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나'라고 하는 분이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고 하여라."
 하느님이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야훼, 너희 조상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한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바로 너희가 대대로 기억할 나의 이름이다"'
 
 인간이 정의할 수 없는, 스스로 존재하시고, 원하시는 대로 행하시는 창조주이신 위대하신 하느님께서 친히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으로 언약하시고  바로 지금 우리 가운데서 일하고 계신다는 경이를 자각하게 됩니다. 그 하느님께서 지금 '나의 하느님'이시며, 나는 그분의 백성이며, 지금 내게 오셔서 내 안에서 역사하신다는 사실보다 더 큰 영광은 없을 것입니다.
 '나는 나'라고 선언하신 하느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깊이 묵상하며,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저희가 항상 참 자아를 실현하려는 노력 가운데서 끝없이 한 분이신 하느님을  느끼며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할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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