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동(구 미아3동)성당 게시판

낙산 통신2-아버지 집은 무지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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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근 [raphaelangel] 쪽지 캡슐

2000-08-31 ㅣ No.4069

막바지 더위에 지쳐, 지쳐가고 계시진 설마 않겠지요.

아랫녘에서 밀려오는 태풍이 더위는 잠시 가시게 하는지 몰라도 큰 비 피해 주고 갈까봐 내심 걱정입니다. 낙산의 상수리 나무들도 툭툭 묵은 가지가 부러져 산책길이 엉망입니다.

묵은 것들은 모름지기 다 없어지기 마련이라지만 지난 두 계절 내내 저 보잘 것 없는 도토리 한 알 속살거리며 키워온 나무들이 혹 제 속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내하고 있지 않은지....조용히 지내다보니 별 생각을 다 하게 되는군요.

 

제가 살고 있는 공동체 형제들 사이에 불평이 많이 늘었습니다.

’아니, 성당이 왜 이리 더운거야.’ ’사우나에서 기도하는 것 같다’...등등 식탁에서는 온통 물젖은 솜처럼 우리를 만들고 마는 기도시간 얘기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저희 옆 공동체(신학교에는 모두 6개의 공동체로 나뉘어져 살고 있습니다) 성당에 지난 여름 에어컨이 설치되었기에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거세더군요. 그들은 기도를 마치고 나서도 어쩌면 저렇게 뽀송뽀송하냐는 둥,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둥...물론 다 농담이긴 하지만, 하여간 저 역시 성당에 들어가는 것이 거의 공포에 가까울 지경이었습니다.

 

아침 기도-미사 때 수단 아래로 흘러내리는 땀과의 전쟁하며, 로사리오 후 끝기도 때의 그 열기는 거의 수직상승하는 체온으로 인해 가끔 다른 부분을 앞질러 기도하는 형제들마저 속출하는 지경이었습니다. 마흔 명에 가까운 인간 난로들이 작고 아담한 성당에 그득하니 들어있는 것을 상상해 보시지요. 게다가 한참 땀 많이 흘리는 20대(저와 몇몇은 제외됩니다만)의 젊은 총각들이 내뿜는 감당할 수 없는 그 뜨거움이란.

 

그런데....

지난 며칠 간 겪은 이 곤혹스러움의 원인이 어이없이 밝혀졌습니다.

여름 방학 기간 동안 성당이 비어있기 때문에 가끔 난방을 해서 습기를 제거하곤 한답니다. 그래서 성당 라디에터가 조금씩 열려져 있었던 것인데, 그걸 아무도 몰랐던 겁니다. 유독히 성당히 더웠던 이유가 어제 저녁 나절에 밝혀지자 몇몇은 경악했습니다.

 

아버지의 집은 그렇게 뜨겁습니다.

이 뜨거움이 잘못 열려있는 라디에터때문이 아니라

오직 한님이신 당신을 향한 우리들의 갈망 때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갈망이 마침내 우리를 불타오르게 하고, 우리 안에 하느님 나라를 모셔오는 디딤돌이 될 날이 마침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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