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님께 드리는 사랑의 편지

누군가 널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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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agneskim] 쪽지 캡슐

2000-01-24 ㅣ No.1075

 

할아버지 안녕하시죠?

 

어느새 날씨가 풀렸나 했더니 오늘밤부터 또 추워진다고 합니다.

 

감기 VIRUS 는 약 3천 개나 되는데 한 번 몸 안에 들어왔던 VIRUS는 몸에 면역성이 생기므로 같은 VIRUS로 인한 감기는 다시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증상이 감기별로 비슷해서 모두 같은 VIRUS로 생각 하지만 증상만 같을 뿐 원인 균은 다르죠...)

 

인간이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면 적어도 3천 번은 감기에 걸려야 한다는 소리인데... 그렇다면  매일 매일 다른 VIRUS로 일년 열두 달 감기에 시달리기를 약 8년하고도 80일을 계속 앓아야 만 감기를 완전히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번 감기가 나았다고 방심할 것이 아니라 열심히 방어(?)를 해야 한다고 어떤 의학 서적에서 보았는데... 이름이 생각나질 않으니--> 기억력 감퇴!! T_T

 

할아버지 감기 조심하시라는 말씀을 드린다는 것이...

 

어제는 오래간만에 성당 주일학교 동기들을 만났습니다.   

약 15년이 넘는 친구들로 사춘기를 같이 보냈고 세 명의 친구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으며 22명중 한 명의 수사님(미리내 천주성삼 수도회)과 네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부남 유부녀로 구성된 아주 오래된 친구들입니다.

저희들은 만나면 늘 지긋지긋하다고 하지만 실은 언제부터인가 각자의 마음 속 깊은 곳 중요한 곳에 담아두고 있는 그런 친구들입니다.  

 

어제 모임에는 여자들만 네 명이 모여서(아무래도 가끔은 여자들만의 수다가 필요해서..) 인사동 거리를 누볐습니다.   

1시에 만나서 5시에 헤어졌는데 너무 시간이 짧고 아쉬웠어요.

이것저것 할 말이 왜 그리 많던지 역시 여자들의 언어구사능력 (일명 수다)은 여자인 저도 가끔 놀란 다니까요...

 

그런데~ 인사동 한복판에서 제가 울어 버린 일이 생겼습니다. 뭘까요???

진수경 수산나라는 친구가 있는데요... 그 친구 지방에서 결혼했는데 제가 증인(결혼식 증인만 10번이 넘습니다.)도 서주고 집꾼(?) 노릇을 좀 했거든요. (워낙 힘이 세다보이... 그래도 제 힘을 과시할 만한 무거운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친구가.... 저를 나머지 두 친구와 잠시 격리(?) 시킨 후 조용히 ...

 

  "희정아~ 내가 너한테 뭔가 해줄 것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가방에서 파란 봉투를 꺼내서 저에게 주며)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내 마음이야..."

  "이게 뭐야?...  (아무래도... 이상한 예감....) 수..경..아..."   

  "아니... 네가 나 결혼할 때 증인도 서주고 지난번 우리 엄마 돌아 가셨을 때도 도와주고.. 또 여러 가지로 고마워서... 내가 너 좋은 사람도 소개 시켜주고 해야 하는데...."

  "증인은 내가 서주고 싶어서 서 준거지.. 다른 것들도 그렇고... 그런 부담을 왜 갖고 있어? 그리고, 이건 그냥 마음으로 고맙다...  받은 것으로 할게..."

  "아니~ 너야말로 부담 갖지 말고... 그냥~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받아..."

 

한참을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어요.  

그 친구는 언제나 그랬듯이 동갑내기 친구들 사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평안한 눈빛으로 제 손에 봉투를 쥐어주었어요.  언제나 그렇듯 그 따뜻한 손으로..

 

  "너도 살림해야 하는데... 됐어 그냥 마음만으로도 고맙다.. 받은 것으로 할게..." (그 때부터 주책없이 눈물 찍~ 콧물 찍~ T_T)

  "희정아... 왜 울어... 너 우리 집 여유 있는 것 알잖아.. 혼자 힘으로 공부하려면 힘들텐데... 내 마음이야... "

  "수경아~ 별로 힘들지 않아... 혼자서도 괜찮아... (흑흑흑)... 그냥...받은 것으로 할게... 왜 이렇게 날 울리고 그래..."

  "아니... 울지마.. 나도 여러 가지로 고마워서 주는 건데... 어서 받아...빨리"

 

왜 눈물이 날까요? T_T

어느 음식점 앞에서 울고 있는 저를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듯 힐끔힐끔 쳐다보며 지나는 거예요 (특히 남자들... 거~기 아저씨! 여자 우는 것 처음 보세영~ 훌쩍).

사람들이 쳐다봐도 자꾸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 없었어요.

 

  "수경아.... 고맙다... 너무 고마워...."  -.-;;

  "그래..."  *^.^*

 

결국! 받았어요... T_T

자기가 여러 가지로 도와주고 싶었는데 어떤 좋은 방법이 없을까하다가 지난 12월 동문회에서 제가 학비 장만하는데 좀 힘들었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 그래서 준비를 했대요 (학교 다니기 전보다는 많이 어려워지긴 했지만 그런 대로 괜찮은데..)

 

할아버지 실은 제가 99(일명 비둘기) 학번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저를 만 학도라고도 하지요.

여러 가지 사정과 이유로 인해 몇 번 공부를 접었다가(?) 이제야 쫙~쫙~ 폈거든요...

저도 할아버지와 같은 혜화동 식구입니다.

지금은 방학이라 혜화동(엄격히 따지면 명륜동)에서 밥 먹어 본지도 오래되었지만...

 

 

다른 친구들이나 사람들은 제가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공부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끔은 저에게 "넌 돈 많이 벌잖아.." "넌 벌어 놓은 돈 많아서 걱정 없겠다..." 라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남의 속도 모르고 말하는 친구들이... 흑흑흑 T_T

 

그런데....

 

넘~ 행복해요.

누구나 좋아하는 현금을 그 것도 친구에게 장학금(?)으로 받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행복함과 고마움!!  

그 뭐랄까???

정말 표현해야 할 것은 너무 큰데 제 작은 가슴과 생각으로는 도저히 그것을 적절히 표현할 수 없습니다 --> 도와주세요.

 

게다가 할아버지께서 저의 글 솜씨까지 칭찬을 하시니...

정말 지금까지 살아온 동안 느끼고 알고 있던 표현력으로 담기에는 너무 큰 행복입니다.

 

점점 쓸쓸해지고 외로워지는 이 세상이 제게는 사랑과 기쁨으로 넘치는 것은 저를 향해 베풀어주는 사람들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고

사람들의 개인주의와 이기심과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차츰 삭막해지는 이 세상을 아직까지는 자신 있게 아름답다고 큰 소리로 말 할 수 있는 것은 할아버지 같은 좋은 분들이 저희와 함께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사랑이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이고... 짧게 쓴다는 것이 오늘도 이렇게 길~어 졌습니다 (정말 길다...)

할아버지 바쁘실 텐데... *^.^*

 

그럼 할아버지 이만~

작은 표현력의 소유자 불광동 아녜스올림

 

 

p.s.

이 순간 생각나는 성가~

 

     마음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지쳐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들께도 감사드리며 할아버지 안녕히계세요...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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