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동성당 게시판

보고 싶은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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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kimpaul25] 쪽지 캡슐

2005-03-06 ㅣ No.3250

 

보고 싶은 얼굴

                         

                                                         현 미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


거리마다 물결이 거리마다 발길이

휩쓸고 간 지나간 허황한 거리에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

보고 싶은 얼굴



 외로운 노래가 제단 위에 흐른다. 거룩한 제단 위에 흐른다. 미사가 숙연해진다. 젊으신 사제가 운다. 고독으로 운다. 독신의 고독이 아니다. 겨레의 고독으로 운다. 서글픈 십자가에 아파하는 겨레로 운다. 눈을 고요히 감으시고 초라한 보고 싶은 얼굴들을 그리시며 우신다. 적막만이 남은 거리에 남아서 불쌍한 여인을 붙잡고 우신다. 예수님처럼……. 아, 참으로 양을 사랑하시는 우리의 사제이시다.

 하찮은 유행가 한 곡이 이다지도 그윽하게 애처롭게 실핏줄에 흐르는가! 거룩한 일이다. 거리마다 발길이 휩쓸던 그 거리는 금수강산 어느 거리였던가? 겨레가 광복을 춤추며 지나간 환희가 가득 채워 휩쓸고 간 그 텅 빈 봄길, 허황한 길에서 털썩 주저앉아 운 여인을 아는가? 광복이 되었다고 춤추는 거리에 차마 얼굴을 내놓지 못하였던 그 사람은 누구였던가? 상처를 포대기 속에 안고 골방에서 한없이 울어야 했던, 그 가슴들이 이제야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아, 아직도 늙지 못한 소녀, 시간을 움켜쥐고 살아온 이 땅의 우리들의 할머니, 이름 하여 정신대라고…….

 아, 아직도 떠나지 못한 소년, 허공에 주먹을 불끈 쥐고,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우리의 젊은 학생들, 이름 하여 인혁당이라고…….

 어두운 시대에 우리의 짐을 대신 지고 사신 그 분들의 어깨가 아프다고 울부짖는다. 수십 년 전의 그 소녀 소년들이 이 텅 빈 길거리에서 울부짖는다. 아마도 우리의 젊으신 사제가 이를 우시며, 지금 막 거룩한 미사로 그 한을 풀고 계시리라.


 ‘역사의 십자가는 신앙의 희망이며 시작이다.’

 당시의 십자가를 썩은 흙으로 덮어 버렸다면 신앙은 없다. 우리의 순교자들이 활짝 들춰서 진리가 태양처럼 빛난다. 2000년 전 과거를 오늘에 살려서 신앙이다. 우리의 과거 아픔을  치유해드리는 지혜는 겨레의 희망이요, 장래이며, 또한 후손이 해드려야 할 마땅한 보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젊은 날,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노래 ‘보고 싶은 얼굴’을 지금 듣는다. 보고 싶은 그 소녀가 어둠 속에서 방긋이 웃는다. 미안하다고 잘 살라고 손짓이 다정하다. 소년의 가슴을 쓰다듬어 다소곳이 봄눈이 녹아 가슴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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