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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이후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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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3-22 ㅣ No.257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이후 행보

축복 전 머리 숙여 기도 청한 '하느님 종들의 종'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길 원한다"





▲ 하느님께서 자신을 위해 복을 내려주시도록 기도해 달라며 고개를 숙이는 새 교황.


뜻밖의 선출이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하심을 믿는 신앙인에게 새 교황은 이 시대를 위해 주신 선물이었다. 베드로 사도의 제265번째 후계자로 선출되던 순간과 신자들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즉위식 전까지 새 교황 프란치스코의 주요 행보에 대해 알아본다.


◇ 새 교황 탄생

○…3월 13일 저녁 7시 6분(현지 시각).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전날인 12일 저녁 7시 42분과 다음날인 13일 오전 11시 40분에 이어 세 번째다. 이번에는 흰 연기였다. 곧이어 성 베드로 대성전의 종들이 울리기 시작했다. 새 교황이 탄생했다! 시간상으로는 다섯 번째 투표에 선출된 것이 분명했다.

새 교황은 누구일까. 거의 온종일 비가 내리고 쌀쌀한 날씨였지만 광장은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 찼고 사람들은 계속 밀려들고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었다.

8시 12분, 추기경단의 부제급 수석인 장 루이 토랑 추기경이 베드로 대성전 중앙 발코니에 나타났다. "교황님이 나셨습니다. 거룩한 로마 교회의 베르골료 추기경입니다. 교황님은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정했습니다."

광장은 순식간에 환호의 물결로 변했다. 하지만 뜻밖이었다. 베르골료는 누구인가? 아르헨티나에서 온 추기경인 것이 알려지면서 광장에 있던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환호했다.

새 교황은 이름을 프란치스코라고 했는데,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인가. 예수회의 공동 창설자로서 선교사업의 수호자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인가. 교황이 정한 이름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임이 알려지면서 한쪽에서는 또 예수회 출신인 교황이 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로 정했나 하는 의문이 제기됐다. 베르골료 추기경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가난하고 겸손한 추기경 모습이 떠올랐다.



▲ 새 교황 탄생 소식에 사람들이 아르헨티나기와 교황기를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 감동의 첫 만남

○…3월 13일 저녁 8시 24분. 하얀 옷을 입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십자가를 앞세우고 중앙 발코니에 나타났다. 환호하는 함성과 박수 소리가 어둠이 짙은 광장을 가득 메웠다. 모인 사람은 20만 가까이 됐다.

교황이 첫 인사를 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좋은 저녁입니다." 특별하지 않아서 오히려 상큼한 인사였다. "형제 추기경님들께서 로마의 주교를 찾고자 지구 끝까지 가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여기 있습니다." 위트가 넘치는 표현이었다.

새 교황은 "형제애와 사랑과 신뢰의" 새 여정을 시작한다며 뜻밖의 말과 동작을 했다. 교황으로서 사도적 축복을 주기에 앞서 신자들에게 먼저 자신을 위해 하느님께 복을 내려주시기를 청하며 고개를 깊이 숙인 것이다. 신선한 충격이었고 감동이었다.

"이제 저는 물러나겠습니다.…우리는 곧 서로 만날 것입니다. 내일 저는 온 로마를 보살펴주시도록 성모님께 기도하러 가고자 합니다. 좋은 밤 되시고 편히 주무십시오."

교황은 발코니에서 모습을 감췄지만 그의 밤 인사는 광장에 있던 사람들이나 생중계로 시청하던 사람들에게 긴 여운을 일으키며 대성전을 휘감아 돌고 있었다.


 
▲ 성모 마리아 대성전의 성모 이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 드리는 새 교황.


◇ 로마의 보호자

○…3월 14일 아침 교황은 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을 떠나 로마 시내에 있는 성모 마리아 대성전을 찾았다. 로마를 보살펴주시도록 성모님께 기도하러 간다는 바로 그곳이었다. 로마에 있는 성모 마리아 성당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먼저 봉헌된 이 성당에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베들레헴 구유의 일부가 보관돼 있고, 로마인들이 자신들의 보호자로 여기는 성모 마리아 이콘이 모셔져 있다.

제대 앞에 꽃다발을 바치고 잠시 기도하고 난 교황은 대성전 한쪽 시스티나 경당을 찾았다. 예수회 설립자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이 사제품을 받고 첫 미사를 봉헌한 곳이다. 교황청 대변인 롬바르디 신부에 따르면 "예수회 영성에서 대단히 의미심장한 장소"였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콘클라베에 들어가기 전에 묵었던 호텔에서 정산을 기다리고 있다.


◇ 파격적 행보

○…첫 나들이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준 몇몇 모습은 '파격' 그 자체였다. 프란치스코는 교황이 신는 빨간 구두가 아니라 검은색 구두를 그대로 신었다. 목에 패용하는 십자가도 교황 십자가가 아니라 주교 때부터 패용하던 십자가였다. 또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 갈 때는 교황 전용 차량이 아니라 경찰차를 이용했다. 숙소인 산타 마르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용한 차량에는 경찰 차량 표시조차 없었다.

더욱 파격적인 일은 돌아가는 길에서 일어났다. 교황은 콘클라베에 들어가기 전에 묵었던 호텔 앞에 차를 세우게 하고는 호텔에 들어가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자신의 짐가방을 찾고 숙박비용을 지불한 것이다. "교황으로서 모범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놀라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이는 이미 예고돼 있었다. 대성전 발코니에서 첫 인사를 한 후 교황은 숙소로 돌아갈 때 교황 차량을 이용하지 않았다. 추기경들이 이용하던 미니버스를 똑같이 탔다. 숙소에서 저녁을 들면서 새 교황은 추기경들에게 (나를 뽑은 것에 대해) "하느님께서 당신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하고 말해 추기경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고 한다. 교황은 또 "내일은 묵었던 숙소에 가서 짐도 찾고 돈도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 새 교황과 선거인 추기경들이 시스티나 성당에서 콘클라베를 폐회하며 교회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 십자가 없으면 교회도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4일 저녁 5시 시스티나 성당에서 선거에 참여한 114명의 추기경과 함께 콘클라베를 마치면서 '교회를 위한 미사'를 봉헌했다. 교황이 된 후 첫 공식 전례 집전이었다.

교황은 원고 없이 이탈리아어로 행한 강론에서 "그리스도를 증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의 신부인 교회가 아니라 박애주의자들의 민간기구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또 인생을 길을 가는 여정에 비기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 걷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 교회를 건설하고. 십자가 없이 그리스도를 고백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아니다. 우리는 주교이고 사제이고 추기경이고 교황이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는 아니다"며 십자가를 삶의 중심에 둘 것을 강조했다.


 
▲ 새 교황 프란치스코가 14일 로마 성모 마리아대성전에서 기도를 바치고 나와 축하객과 언론사 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바티칸시티=CNS】


◇ 비관도 낙담도 하지 마라

○…다음날인 15일 오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궁 클레멘스 홀에서 선거인 추기경과 비선거인 추기경을 포함한 전체 추기경단을 처음으로 접견했다.
 
교황은 추기경들에게 "결코 비관주의에 굴복하지 말고 낙담하지 말라"고 말했다. "성령께서 교회에 당신의 힘찬 숨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신다는 굳은 확신으로 인내하고 복음화의 새 방법을 모색하며 땅 끝까지 복음을 선포하자"고 격려했다. 추기경들 가운데 절반 가량이 고령임을 의식한 교황은 노인의 지혜를 시간이 흐르면서 맛이 좋아지는 포도주에 비기며 "우리 삶의 지혜를 젊은이들에게 전해 주자"고 말했다.

교황은 사도좌 공석 중에 추기경단이 보여준 협력에 고마움을 표시했고, 특히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감사를 드러냈다. 프란치스코는 교황에 선출된 직후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전화 통화를 나눴으며, 즉위식이 끝난 후에는 카스텔간돌포로 가서 전임 교황을 만날 계획이다.

교황은 연설을 마치고 추기경들과 한 사람씩 차례로 인사를 나눴다. 교황에게 책을 선물하거나 편지를 전달한 추기경도 있었고, 일부는 교황의 축복을 받고자 성물을 건네기도 했다.


◇ 그리스도 없이는 교황도, 교회도 없어

○…프란치스코 교황은 16일 오전 11시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6000명이 넘는 기자, 카메라맨, 피디 등 언론인들을 접견하고, 교황 선출 과정을 취재 보도한 언론의 노고에 감사를 표시했다.

교황은 교회적 사건들이 정치적 경제적 사건들보다 더 복잡하지는 않지만 세속적 범주에 들지 않은 영적 측면을 지니고 있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또 "교회는 인간적이고 제도이지만 본절적으로 영적인 하느님 백성"이라고 설명한 교황은 "교회의 중심이자 근본이 되는 그리스도가 없이는 베드로(교황)도 교회도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교황은 언론들도 교회의 이런 본성을 더 알게 되기를 권고하면서 언론인들을 축복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자신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교황 이름으로 정하게 된 사연을 설명했다. 콘클라베에서 브라질의 클라우디오 우메스 추기경이 옆자리에 앉았는데 그는 프란치스코회 출신이었다. 계표가 진행되면서 자신이 교황에 선출되는 것이 확실해지자 우메스 추기경은 자신을 껴안으면서 "가난한 이를 잊지 마십시오"하고 말했다. 그 말이 베르골료의 머리에 꽂혔고, 즉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내게 가난의 인물, 평화의 인물, 창조계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인물입니다. 우리가 창조계와의 관계가 좋지 않은 이 시기에 프란치스코는 평화의 정신을 심어줍니다. 나는 가난한 교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교황청 각 부서장과 위원들을 잠정적으로 유임시켰다고 교황청이 발표했다.
 

◇ 자비는 하느님의 가장 힘있는 메시지

○…교황은 사순 제5주일인 17일 아침 바티칸시티 본당인 성녀 안나 성당에서 주일미사를 집전하고, 자비에 대해 강론했다.

교황은 예수께서 간음한 죄인을 용서하신 복음 말씀을 인용하면서 "자비는 주님의 가장 힘있는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하느님의 자비는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기에 자신을 하느님의 자비에 맡겨드리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하느님은 여러분에게 입맞추시고 여러분을 껴안으시며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겠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죄짓지 마라'고 말씀하신다"며 "하느님께서는 용서하시는 것을 결코 싫증내지 않으시기에 절대로 싫증내지 않고 용서의 은총을 달라고 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사 후 본당 신부를 비롯해 성 베드로 대성전 수석 사제, 바티칸시티 총대리 등의 환영 인사를 받은 교황은 제의를 벗고 다시 성당 밖으로 나가 여느 본당신부처럼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숙소 창문에서 삼종기도에 앞서 광장에 운집한 신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하느님의 용서가 없다면 세상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

○…"주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을 결코 싫증내지 않으신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날 낮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교황궁 교황 숙소 창문에서 신자들과 처음으로 함께 주일 삼종기도를 바치기에 앞서 연설을 통해 이날 복음의 주제인 자비와 용서를 거듭 강조했다.
30만 가까운 인파가 성 베드로 광장과 그 주변 일대를 가득 메운 가운데 교황은 자신이 주교 시절에 만났던 한 할머니의 말을 인용,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면 세상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또 "하느님의 얼굴은 늘 인내하시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얼굴"이라며 우리가 뉘우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돌아간다면 하느님께서는 결코 싫증내지 않고 우리를 용서하신다고 강조했다.

삼종기도를 함께 바친 후 교황은 자신을 환영해 준 데 대해 거듭 감사하다고 인사하면서 주님의 강복과 성모 마리아의 보호를 기원했다.

"주일 잘 보내시고, 점심 맛있게 드십시오." 교황의 마지막 인사는 군중의 엄청난 환호와 박수갈채에 묻혔다.

[평화신문, 2013년 3월 24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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