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2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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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3-08-03 ㅣ No.5484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23/08/19

 

요즘 신문지상에서 어린이 학대에 대한 사건사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특별히 누구에게서보다 가장 보호를 받아야 하고, 사랑받아야 할 부모와 친인척에게서부터 폭행과 수탈을 당하는 어린이들에 관한 기사가 늘고 있습니다. 그 사건 사고들의 배후에는 "내가 낳고 내가 키웠으니까, 내 아이를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라는 부모의 입장에서처럼, "인간의 존재근거는 인간에게 있다."라는 명제에서부터 나온 부작용처럼 보입니다. 여기엔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인간 생명을 소유하고 조절할 수 있다는 낙태와 학대와 같은 생명존중의 결여도 한 몫을 더하고 있어 보입니다.

 

한 때 중세 시대를 '신중심 사회', '신에게 속한 사회'라고 풍자하고 거부하며 인간 존엄성을 외쳤지만, 인간의 사랑과 희생을 바탕으로 한 존중과 지지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인간에게 인간은 세계 제2차 대전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바라보았듯이 약육강식 그 이상의 잔인함과 비인격적인 지배와 통제와 같은 처사들이 판을 칠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에 아연실색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다가오는 아이들을 말리던 제자들에게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 19,14) 라고 말씀하십니다.

 

비단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이 가는 나라일 뿐만 아니라, 나약하고 보호받고 사랑받아야할 어린이들과 가난한 이들로 통칭되고 번역되는 약자들이, 인격적인 존중과 배려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주 하느님의 사랑과 지지 안에서 그려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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