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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믿나이다: 교회의 신앙 고백 -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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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02 ㅣ No.120

[신앙의 해 - 저는 믿나이다] 교회의 신앙 고백

니케아 -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김혁태


신앙이란?

‘신앙의 해’를 맞아 교황님은 다음과 같이 촉구하십니다. “우리는 이 신앙의 해에 모든 신자가 충만하게, 새로운 확신으로, 신념과 희망을 가지고 신앙을 고백하는 열망을 지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우리가 고백하고, 경축하며, 실천하고, 기도하는 신앙의 내용을 재발견하고, 신앙 행위를 성찰하는 것은 특히 이 신앙의 해에 모든 신자가 짊어져야 할 책무입니다”(「믿음의 문」, 9항).

신앙은 신앙 내용과 신앙 행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 것인지, 그리고 믿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렇게 내용과 행위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물론 신앙 내용과 신앙 행위는 서로 일치해야 합니다.

곧 우리는 자신이 믿는 것을 삶의 모습으로 옮깁니다. 그 내용을 입으로 고백하고, 전례와 성사에서 거행하고, 고백하고 거행한 것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실천하며, 기도 안에서 이 모든 것을 다시 하나로 모읍니다. 반대로 우리의 온 삶을 통해 증거하는 신앙 행위는 우리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신앙 내용에 당연히 부합해야 합니다.

신앙 행위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먼저 신앙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신경이란?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 내용을 요약해 놓은 것이 바로 신앙 고백문 또는 신경입니다. 서양말로 ‘크레도(Credo)’라고 부릅니다. “저는 믿나이다(credo).”라는 말로 신경을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 ‘믿는다’는 동사 다음에 무엇을 믿는지, 곧 신앙 내용이 나옵니다.

그 핵심은 물론 한 분이신 하느님에 관한 것, 달리 말해, 이 한 분이신 하느님이 신약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 삼위일체 하느님에 관한 것입니다. 삼위의 하느님이 각각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어떻게 하셨는지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교회와 종말론적인 것에 관한 내용들이 추가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는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고백이 신경의 전체골격을 이루고 있습니다.

신경을 ‘상징 (Symbol)’이라는 말로도 부릅니다. 신경, 곧 구체적으로 신경의 내용을 고백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참된 신앙인의 표지 또는 상징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원래 어떤 물건을 반쪽으로 쪼개어, 나중에 신원을 확인하던 표로 나누어 가지던 것을 말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88항 참조).

우리나라 고구려의 주몽 이야기에서 아들 유리왕이 들고 찾아온 부러진 칼도 말하자면 이와 비슷한 것이지요.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신경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거꾸로도, 신경을 고백함으로써 우리는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어갑니다. 그리하여 교황님께서는 이 ‘신앙의 해’에 전 세계의 본당과 가정에서, 모든 교회 단체에서, 공적으로 신앙 고백을 하는 방안을 찾도록 권고하십니다(「믿음의 문」, 8항 참조).


교회의 신앙

내가 믿는 신앙 내용은 그러나 우리의 신앙입니다. 바로 교회가 지키고 전해준 신앙이고, 나는 그것을 전수받고 받아들였습니다. 내가 믿는 것이지만, 나는 언제나 우리와, 곧 믿는 이들 모두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신경의 신앙 내용은 내가 혼자서 찾아낸 것도 스스로 깨달은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 공통의 것입니다. 내가 믿는 것은 교회가 믿는 것입니다. 교회는 우리보다 앞서 가면서 우리의 신앙을 낳고, 지탱하고, 기르는 어머니와 같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81항 참조).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 때에, “여러분은 하느님의 교회에서 무엇을 청합니까?”라는 물음에 “신앙을 청합니다.”라고 응답했습니다.

교회의 신앙 내용을 요약해 놓은 신경들은 교회 안에 다양하고 많습니다. 초세기부터 시작해서 가장 가까이는 1968년 바오로 6세 교황께서 발표하신 자의 교서 「하느님 백성의 신앙 고백」이 있습니다.

20세기의 유명한 가톨릭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카를 라너도 현대인의 사고에 맞추어 ‘짧은 신앙 고백 정식’을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교회의 삶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신경은 ‘사도신경’과 ‘니케아 -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입니다. ‘사도신경’은 로마 교회에서 생겨나 오랜 역사를 걸쳐 완성된, 짧지만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신앙 내용을 충실히 요약해 놓은 권위 있는 신경입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 신앙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제1편은 주로 ‘사도신경’의 구조를 따르고 있습니다.

‘대신경’이라고도 불리는 ‘니케아 -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와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를 통해 교회가 권위 있게 선포한 신경입니다. 두 공의회의 신앙 고백이 합쳐진 것이지요.

공의회는 교회 안에서 교황좌와 더불어 최고의 통치권을 행사합니다. 따라서 ‘니케아 -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권위 또한 막중한데,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모두 오늘날까지 이 신경을 귀중한 ‘신앙의 유산’으로 간직해 오고 있습니다.


니케아 신경

제1차 니케아 공의회는 오늘날 터키북서부에 있는 도시 이즈니크(옛 지명은 니케아)에서 서기 325년 6월 19일에서 8월 25일까지 열린, 교회 역사상 첫 번째 세계 공의회입니다.

여기서 아리우스파를 단죄하고 정통 신앙을 고백문 형식에 담아 정의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바로 니케아 신경인 것이지요. 이후 공의회나 교회회의가 신앙 고백문을 작성하는 관습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때 논란이 되었던 가장 중요한 쟁점은, 예수님을 하느님이라고 고백한다면 하느님이신 예수님과 구약의 한 분이신 하느님은 어떤 관계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리우스와 그 추종자들은 예수님을 하느님 아버지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이로써 예수님을 창조된 피조물 편에 세움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이에 맞서 교회는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와 한 본체이신 분임을, 곧 예수님의 참된 신성을 옹호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니케아 -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서는 삼위일체 제2의 위격이신 예수님에 관한 고백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는 서기 381년 5월에 시작하여 7월 30일에 막을 내린, 교회 역사상 두 번째 세계 공의회입니다.

여기서는 다시 한번 여러 종류의 아리우스파 이단설들을 단죄하고, 이후에 큰 논란을 불러오게 될 ‘아폴리나리우스설’도 단죄했습니다. 아폴리나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인성을 의문에 처하게 하는 주장을 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대두된 문제는 성령의 신성을 부정하는 자들에 맞서, 삼위일체 제3의 위격이신 성령의 참된 신성을 옹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니케아 신경에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던, 성령의 신성과 활동에 관한 고백이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서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신경에서 원래 “성령께서는 성부에게서 발하시고” 하는 부분에, 나중에 “성자에게서도”라는 말이 첨가됨으로써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 니케아 신경의 정통 신앙을 그대로 고수하고 발전시켰다는 의미에서, 오늘날 두 신경은 하나로 묶여 ‘니케아 -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라는 이름으로 전수되고 있습니다.


신앙 고백과 영원한 생명

‘니케아 -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는 교회가 신앙을 지키고자 어떤 혼란과 고난을 겪었는지를 말해주는 역사가 배어있습니다. 그 말마디들은 박해를 받고 피를 흘리면서까지 지켜낸 공통의 신앙 언어들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신경을 외는 것은 그저 죽은 문자를 반복하는 것에 지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이 신경을 고백함으로써, 우리에게 어머니로서 신앙의 언어를 가르쳐주고 길러주는 교회와 일치를 이룹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97항 참조). 어머니의 품을 떠나서는 아무도 제대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니케아 -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외고 고백함으로써 우리는 또한 삼위일체 하느님과 일치를 이룹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신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시고 어떻게 하셨는지 고백함으로써 그분과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생명의 신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결국은 신앙의 마지막 모습이자 목표입니다.

신앙 고백을 통해 우리가 하느님의 신비 안으로, 그리고 교회의 신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신앙고백의 내용을 알아야 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사실 ‘니케아 -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성경의 계시를 요약해 놓은 ‘짧은 교리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알고 고백함으로써,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바로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영원한 생명이 달려있기 때문입니다(요한 17,3 참조).

우리는 모두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로마 10,10).

김혁태 베드로 - 전주교구 신부.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경향잡지, 201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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