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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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3-08-03 ㅣ No.5482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23/08/17

 

우리 말에 삼세번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가위, 바위, 를 하며 승패 가르기를 해도 세 번까지는 시도를 하자고 하는가 하면, 용서도 세 번까지는 봐주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우리 인내심의 한계가 세 번까지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마태 18,21) 하고 묻습니다. 베드로는 삼세번보다는 더 용서할 수 있었나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한계보다 더 많이 그리고 어쩌면 불가능해 보이는 횟수만큼이나 요구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22) 그러시면서 기가 막혀 있는 베드로에게 예를 들어주십니다.

 

어떤 임금에게 빚을 갚을 길이 전혀 없어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자, 임금은 그 사람을 보시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만 달렌트나 되는 부채도 탕감해 줍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 빚을 전액 탕감 받고 나가서는 자신에게 백 달렌트 밖에 안되는 빚을 진 동료를 잡아다가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둬버립니다. 그러자 동료들이 임금에게 가서 안타까운 사정을 이야기하며 감옥에 갖힌 동료를 구해달라고 청합니다. 그러자 임금은 그 배은망덕하고 무자비한 종을 불러다가 말합니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32-33) 그러시고는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도록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예를 다 마치시고는 베드로에게 결정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35)

 

혹시 오늘 내가 용서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가 내게 지은 죄악이 얼마나 많은지 따져 봅시다. 그리고 혹여, 주 하느님과 형제자매들에게 용서받은 내 죄악은 얼마나 있었는지 비교해 봅시다.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악을 다 아시면서도, 벌하지 않으시고, 따지지도 않으시며, 못 본 체해 주시며, 오늘도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허락하시는 주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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