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하느님께 바쳐야 할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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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1동성당 [suyu1] 쪽지 캡슐

2005-10-19 ㅣ No.479

 

제1독서   이사야 45,1.4-6

제2독서   1데살 1,1-5

복음        마태 22,15-21

하느님께 바쳐야 할 ‘세금’

 

   지난 두 주일 복음에서 들은 바처럼 예수님은 ‘악한 소작인의 비유’와 ‘혼인잔치의 비유’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불충을 꼬집어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당시 종교지도층은 예수님께 앙심을 품고 반격을 시도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헤로데의 추종자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말로써 올가미를 씌우려는 속셈을 갖고 ‘어르고 뺨치기’ 수법으로 나갑니다. 우선 예수님이 올곧은 분으로서 거리낌 없이 오직 진실만을 말하는 분이라고 추켜세우고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카이사르(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는 이 질문에 대해 긍정을 하던 부정을 하던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때에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래서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쳐야 했는데, 이는 일종의 주민세였습니다. 하느님께 뽑힌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을 지녔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민족의 지배 하에서 그들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을 견디기 어려운 치욕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로마 제국의 막강한 힘 앞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세금을 내는 것이 옳다고 대답한다면, 민족 감정을 거슬러 백성의 반발을 살 것이 분명합니다. 반대로 옳지 않다고 대답한다면, 적대자들은 쾌재를 부르며 예수님을 로마제국에 대한 반역자로 고발할 것입니다. 진퇴양난의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의 사악한 속셈을 간파하신 예수님은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오라고 분부하십니다. 데나리온은 로마제국의 은화로서, 세금은 꼭 데나리온으로 바쳐야만 했습니다. 이 은화의 한쪽에는 카이사르의 흉상과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초상과 글자는 누구의 것이냐”고 물으시자, 반대자들은 “카이사르의 것입니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지혜로운 대답에 예수님의 반대자들은 말문이 막힙니다.

 

   예수님의 반대자들도 로마제국의 은화를 사용하여 경제활동을 하였으므로 싫튼 좋튼 상관없이 사실상 로마 황제의 권한을 인정한 셈입니다. 따라서 황제가 요구하는 세금납부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카이사르의 것을 카이사르에게 돌려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당신 적대자들이 던진 교묘한 올가미를 피해 가십니다. 동시에 그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십니다. 하느님의 것, 즉 하느님께 바쳐야할 ‘세금’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돈이 아니라 인간 자신입니다. 카이사르에게는 그의 초상이 새겨진 은화만 돌려주면 됩니다. 하지만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제1독서)께는 모든 것을 바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창세 1,27) 우리 안에는 그분의 초상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선택을 받아(제2 독서) 그분의 백성이 된 사람들로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하느님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마태 22,37). / 손희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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