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동성당 게시판

은총이 가득하신... 하나, 둘,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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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bkkim] 쪽지 캡슐

2000-09-07 ㅣ No.459

어제 밤에 드디어 십자수를 하나 완성했다. 탐스런 사과가 열린 나무가지인데 시작한 것은 찬바람이 불던 계절이었건만 그새 다른 그림을 시작하며 제쳐두었던 것을 완성했다. 크지도 않은 크기의 액자용인데 끝내고 보니 꽤 근사해 보인다. 그중에서도 짙은 초록의 잎새를 보면 지난 캠프때 민박집을 향해 들어가던 산길의 숲이 생각나 좋았다. 십자수를 두며 기도해야지 번번히 시작을 하지만 칸을 세어가며 색실로 채워가다 보면 '은총이 가득하신...하나, 둘, 셋... 하늘에 계신 하나, 둘, 셋... XXX번 실이 어디있나... 영광이...'하는 식이 되어 버리기 일쑤이다. 드라마를 보며 하다보면 라디오의 드라마 극장처럼 음성만 기억에 남아서 어쩌다 재방송때 보면 '저런 장면이었네'한다. 완성하고 늦어진 시간에 놀라 잠자리에 들다가 십자수를 태교를 하느라 시작했던 친구가 생각났다. 초등학교때 만난 친구이고 지금도 물론 잘 지내는 사이지만 맞벌이를 하느라 도무지 한가로이 통화할 시간 내기도 어려워진 친구가 잘 지내는지 궁금해졌다. 어쩌다 근무중 쉬는 틈에 전화건 친구와 안부말고는 세세한 일상에 관한 얘기를 나눌 수 없게 되어버린 묘한 어색함이 떠올라 서글퍼지기도 한다. 결혼과 동시에 거주지가 같은 서울인 정도를 다행으로 여겨야하고 얼굴보고 수다 떨기가 연중행사 정도가 되어버렸다. 이제 정말 바빠진 나이가 되었슴을 주위를 둘러보고서야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리고 다시 적당히 서로를 잊어주며 때로는 위로해 주며 지내야하는 것이 어릴 때와는 다른 친구 역할이다. 그래서 아줌마들이 동창들은 어쩌다 만나는 것으로 인정해 가며 옆집 XX엄마와 시장도 가고 친구가 되어 지내게 되는 모양이다. 아무 걱정없이 깔깔거리던 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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