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님께 드리는 사랑의 편지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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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추기경 [cardinal] 쪽지 캡슐

1999-10-04 ㅣ No.583

사랑하는 친구들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추석도 지나고 이제는 가을이군요.

오늘은 제법 쌀쌀한 느낌까지 드는 날씨입니다.

그러나 하늘은 맑고 높고 푸릅니다.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홍지화에게

 

보내준 편지 잘 받았어요.

지금 대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면서 또 교리 공부도 한다고요?

교리 공부를 잘 해서 세례성사를 받는 은총의 날이 오기를 빕니다.

그런데 큰 문제를 던졌군요. 하느님이 계시다면 이 세상에 선과 악이 없어야 하고 병자도 죽음도 없어야 하지 않을까?

아주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고통과 죽음, 이것은 인간이 하느님을 거스려 지은 죄 때문에 있게 된 것입니다. 본래 하느님은 인간이 당신과 같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창세기에서 보듯이 인류의 원조인 아담과 하와는 이 하느님의 뜻을 거스려 죄를 짓고 그 결과로 죽음을 초래했습니다.(창세기 3장 참조) 그러면 왜 하느님은 인간이 지은 그 죄를 막지 않으셨는가?

하느님은 물론 막으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인간의 자유를 더 소중히 여기십니다. 만일 하느님이 어떤 불행도 악도 일어나지 않게끔 막으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그러면 얼른 보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그러나 인간은 아무런 자유도 없는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 말은 스스로는 선을 행할 수도 없고 악을 피할 수도 없고 결국 사랑할 수도 없는 로버트와 같은 존재가 되고 맙니다.  우리는 이런 인간이 되기를 원합니까?  하느님은 인간을 당신을 닮은 존엄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자유의사로서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며 자유의사로 사랑할 줄도 아는 그런 사람으로 영원히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불행히도 하느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하느님의 뜻을 거스려 죄를 지었습니다. 그 결과로 고통과 죽음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런데 자비로우신 하느님은 죄와 고통까지도 인간을 구원하는 계기로 삼으십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오로는 "죄가 많은 곳에 은총도 풍성하게  내렸습니다"(로마서 5, 20)라고 하였습니다.

이렇듯이 고통과 죽음은 더 할 수 없이 큰 불행이면서도 동시에 우리에게 더 큰 은총을 주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죽음 앞에  너무나 아프고 두렵기 때문에 하느님을 원망하고 왜 나에게 이 고통을 주시는가? 하느님은 계시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어떤 이는 무신론자가 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하느님은 없다’ 이렇게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고 고통과 죽음의 문제가 풀리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왜 고통과 죽음이 있는지 알아 듣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계실 때는 적어도 그 하느님께 왜? 왜? 하면서 원망할 수도 있고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이 과정을 거쳐서 고통과 죽음을 받아드리게 됩니다. 하느님을 보다 깊이 깨닫고 믿게 됩니다. 심지어는 그 고통과 죽음이 나를 참 인간으로 만들기 위하여 하느님이 허락하신 은혜와 같이 받아드리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정말 깊은 신앙인이 되지요. 나는 홍양도 현재 겪는 고통,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겪는 고통 그리고 언젠가 우리 모두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 죽음을 이런 믿음의 시각에서 이해하고 은총속에 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내 회답이 너무 길었습니다.

안녕히.....

                                      추기경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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