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동성당 게시판

성서 이야기 - 9) 두 여자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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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웅열 [ryuwy] 쪽지 캡슐

2003-09-02 ㅣ No.1373

두 여자의 갈등

                   (사라와 하갈)

 

신앙 인은 사람이나 사물 안에서 하느님을 찾아 만나기 전에, 먼저 개인적으로 그 분을 만나야한다. 신앙의 주님은 인간이 오랜 추구 끝에 비로소 만나게 되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왜냐하면 “그 분은 우리각자에게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으며, 여러분의 어떤 이가 「우리는 그 분의 족속」이라고 말했듯이 우리는 그 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분은 늘 인간 곁에 계시지만, 인간이 그 분의 존재를 느끼거나 보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신앙 인은 그 분이 자신을 늘 알고 계시며 찾으셨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그 분에게 붙잡혔고, 그 분은 마치 친구처럼 자신을 따뜻하게 꼭 껴안아 주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나의 친구”라고 부르셨다.

 

그러나 늘 곁에 계신 하느님을 보고 그 분의 계획을 따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분의 말씀은 지금까지의 인간상황, 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가장 훌륭한 삶이라고 여기는 상황에서 인간을 이끌어내 전혀 새로운 일을 하게 하신다.

 

-인간적인 결정이 빚은 결과-

창세기 16장은 하느님의 뜻이 실현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그 뜻을 인간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주님께서 나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시니, 내 몸종을 받아주십시오. 그 몸에서라도 아들을 얻어 대를 이었으면 합니다.”(2절)

 

아브라함은 묵묵히 사라의 뜻을 받아들이고, 이집트인 몸종 하갈과 한자리에 들어 하갈을 임신시킨다. 사라가 계획한대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어 가는 듯했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갈이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 돌연히 태도를 바꾸어 제 여주인 사라를 업신여기기 시작했고(4절: 그의 눈에 자기의 여주인이 하찮게 보였다), 사라가 이를 그냥 넘겨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갈의 달라진 처신으로 인해 사라는 불의를 당한다고 불평하면서 남편에게 “내가 이렇게 멸시를 받는 것은 당신 탓입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상황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사람은 남편 아브라함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내 몸종을 당신 품에 안겨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기 몸에 태기가 있는 것을 알고는 저를 업신여깁니다. 주님께서 나와 당신사이의 시비를 가려주시기를 빕니다.” 사라는 여종의 멸시를 받는 모든 책임을 남편에게로 돌린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비로소 입을 열어 두 여인 사이의 갈등에 대한 판단을 내리며 “당신의 여종이니 당신 손에 달려있지 않소? 당신 눈에 좋을 대로하시오”하면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

 

여하튼 사라는 즉시 행동을 취하여 “그 여자를 구박했다.” 가족공동체 안에서 생겨나는 이와 같은 갈등과 분쟁은 인간 본성깊이 스며 있어 결코 없어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대의 태도를 참아낼 수 없을 때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편이 양보하고 그 상황에서 멀어지는 것뿐이다. 그래서 하갈은 사라를 피해서 도망쳤던 것이다.

 

하갈이 사막으로 도주하던 중에 주님의 천사를 만난다. 천사는 하갈에게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에게 복종하며 참고 견디라고 말한다. 이처럼 인간은 다른 인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박해하며 그로 인해 눈물을 흘리지만 하느님께서는 창조된 모든 인간을 한결같이 사랑하시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며 축복해주신다.

하느님이 보내신 천사의 명령에 따라 하갈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돌아가, 아브라함이 86세였을 때 아들 이스마엘(하느님께서 ‘들으신다’라는 뜻이다.)을 낳는다.

 

신앙적 교훈 :

㉠ 하느님의 생각과 계획은 인간들이 생각하는 ‘좋은 의도’와는 분명히 다르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사명을 주셨다면 나는 그것을 다른 것으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 즉, ‘나의 마음’에 들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변경해서도 안 된다. 그 것은 이미 순수한 신앙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낸 신앙이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지혜와 좋은 의도가 하느님의 계획을 절대로 바꿀 수 없고, 또 바꾸어서도 안 된다.」

 

㉡ 사라와 하갈의 갈등과 시기 질투심에서 빚어지는 분쟁의 틈바구니에 있었던 아브라함의 입장을 깊이 생각해보고, 분쟁의 해결을 사라에게 던져버리고 그 자리를 피했던 아브라함의 판단이 과연 옳았던 것인지 ?  

 

㉣ 어떤 시련과 고통을 피해보려는 도피만이 능사가 아니다. 하갈이 만났던 천사의 말처럼 복수심에 박해하던 사라 밑으로 가서 그가 분풀이하는 모든 것을 다 참아내라고 한 것을 우리는 주의 깊게 읽어보아야 한다. 이 세상을 살면서 밀려오는 엄청난 파도의 물결에 놀랄 것이 아니라 참고 견디면서 그 엄청난 파도를 이용하는 “파도타기”로 즐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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