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동성당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고향 나자렛 (루카 2,22-40)

인쇄

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7-12-31 ㅣ No.74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고향 나자렛 (루카 2,22-40)



집회서의 저자는,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고,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것과 같다고 한다. (집회 3,2-6.12-14)
2 주님께서 자녀들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고,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권리를 보장하셨다. 3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는다. 4 제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다.
5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진다. 6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
12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13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14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바오로 사도는,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라고 한다. (콜로 3,12-21)
형제 여러분, 12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17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18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19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20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21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치는데, 시메온은 성전에서 아기를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이 아기는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리라고 한다. (루카 2,22-40)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예수, 마리아,요셉의 성가정 축일제1독서(집회3,2-6 12-14)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는다. 제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진다.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기울이는 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 (3~6) 

 

집회서 제1부(1,1~16,23)에서 저자는 주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임을 천명한다. 모든 지혜는 주님에게서 오므로 주님을 제대로 알아 모시지 않으면 그 지혜를 얻을 수 없다.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함'이다(1,14). 

여기서 '경외함' 벌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소극적인 삶의 자세가 아니라 어른을 삼가 공경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를 말한다. 

실제로 저자는 먼저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을 언급한 데(1~2장) 이어서 곧바로 부모에 대한 의무를 가르친다(3장).

 

오늘 성가정 축일 독서는 집회서 3장 2~6절과 12~14절의 말씀이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는다' (3)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6) 

이 말씀은 탈출기 20장 12절의 십계명을 연상시킨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공경하라'라고 번역된 '캅베드'(kabbed) '무겁다','존귀하다', '많다'뜻을 지닌 '카베드'(kabed) 능동형 명령형이다. 따라서 이것은 '반드시 존경하라','절대적으로 존귀케 하라' 매우 강한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카베드'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며 경외한다는 문맥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런 사실은 부모를 섬기고 공경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잘 보여준다.

 

사실 부모단순히 자식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한 생물학적 매체 혹은 이 땅에서 양육하고 지원하는 물리적 후원자 정도의 존재가 아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바대로 부모 이 땅에서 하느님을 대신하는 권위를 지닌 존재이므로 자녀는 부모 섬기는 일을 하느님 섬기듯이 정성껏 하여야 한다.

 

또한 이렇게 부모를 섬기고 순종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을 섬기며 순종하는 법까지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영적인 아버지이신 하느님 뿐만 아니라 그 권위를 지상에서 대행하는 우리의 육신적인 아버지이신 부모를 하느님께 하듯 섬겨야 할 것이다. 

 

탈출기 20장 12절에 '오래 살 것이다'라고 번역된 '야아리쿤'(yaarikun) '연장하다', '확장하다'는 뜻이 있는 '아라크'(arak)사역 능동형 동사로서 '길게 하여 주다', '연장시키다'는 뜻이다. '아이리쿤'(airikun)는 사역형 동사이므로 '길어지게 하시는' 보이지 않는 주어하느님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즉, 생명이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장수하도록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생명 연장의 약속이 아니라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그 삶이 복될 것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실로 하느님께서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다면, 그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그 인생을 또한 책임져 주시지 않겠는가?

사도 바오로는 이 아름답고 복된 약속을 에페소서 6장 1~3절에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자녀여러분, 주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옳은 일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이는 약속이 딸린 첫 계명입니다. '네가 잘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하신 약속입니다."

 

 

.예수,마리아,요셉의 성가정 축일 복음(루카2,22~40)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29)

 

루카 복음 2장 29절부터 32절까지는 일반적으로 '시메온의 고별 노래'라고 불린다.

 여기서 '주님'으로 번역된 '데스포타'(despota; Sovereign Lord)는  기본형 '데스포테스'(despotes)의 호격이다. '데스포테스'(despotes)'주인', '소유주'라는 뜻인데, 동일한 의미로 성경에서 749회나 사용된 '퀴리오스'(kyrios)와 달리 10회 밖에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데스포테스'(despotes)자신이 '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절대적인 주권과 능력을 인정하는 분'에 대해서 사용하는 상대방을 매우 높이는 강한 의미를 지닌 말이다(사도4,24; 묵시6,10).

 

시메온은 하느님을 '데스포테스'(despotes)라고 표현했을 뿐 아니라, 자신을 '당신 종', 즉 '톤 둘론 수'(ton doulon sou; your servant)라고 분명히 말하는, 하느님의 절대 주권과 소유권을 인정하는 매우 경건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제야'라고 번역된 '뉜'(nyn; now)이 문장의 처음에 와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새로운 차원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것은 인류 구원의 여명이 밝아오는 의미 뿐만 아니라 시메온 개인에게도 구원자를 기다리는 영적인 부담감과 책임감에서 해방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뒤이어 나오는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라고 번역된 '아폴뤼에이스'(apolyeis; depart; dismiss)'자유롭게 하다'를 의미하는 '아폴뤼오'(apolyo) 2인칭 단수이다. 이 단어는 완곡어법으로 쓰여 '죽을 수 있도록 하다'라는 뜻을 내포한다.

 

이제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주셨으므로 아무런 미련없이 눈을 감을 수 있다는 말이다.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라는 표현은 시메온이 매우 늙었으며, 지금까지는 구원자를 기다리는 사명과 희망으로 살아왔으나, 이제 그 사명과 희망이 완전히 성취되고 끝났음을 표현하고 있다.

 

'말씀하신 대로 ~평화로이' 

'말씀'으로 번역된 단어 '레마'(rema; word)루카 복음 2장 26절나오는 '성령의 알려주심'을 가리킨다. 

그런데 시메온은 '레마'(rema) 앞에 '토'(to)라는 정관사를 붙였을 뿐 아니라, 뒤에 2인칭 단수 소유격 대명사 '수'(sou)를 덧붙여서 '성령의 알려주심'을 '성부 하느님의 말씀'과 직접 연결시키고 있다.

 

이제 시메온은 자신이 바라던 바가 성취됨으로 인해 참 평화를 얻었다. 이 평화는 시메온 개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해서도 구원자의 오심의 결과요 선물이 되었다.

 

'평화'로 번역된 '에이레네'(eirene; peace) 하느님의 아들이 구세주로 이 땅에 오셔서 주시는 평화인데, 이 평화는 죄와 불순종으로 하느님과 원수가 인간과 하느님과의 화해에서 오는 구원이며(로마5,1.10), 반목과 질시로 벽을 쌓고 살아가는 인간들 관계 속에서의 평화일 뿐만 아니라(로마12,19), 염려와 근심, 격심한 감정의 혼란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인간 자신에게 이루어지는 평화이다(로마8,6).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원문의 서두에 나오는 '호티'(hoti; for)는 본문에서 이유 부사절을 이끄는 접속사로서, 앞에서 말한 자신의 평화로이 떠나감의 이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밝히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여기서 시메온이 '구원'을 본 주체'나','에고'(ego)라고 하지 않고, '제 눈이' '호이 옵탈모이 무'(hoi ophthalmoi mou; my eyes)라고 한 것은 하느님의 구원을 분명히 보았음을 더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강조하기 위함이다.

 

또한 여기서 '구원'이라고 번역된 '소테리온'(soterion; salvation)은 형용사인데, 명사처럼 쓰여 '구원의 수단' 혹은 '구원 그 자체'를 의미한다(시편50,23; 이사56,1).

그리고 구원은 예수님께서 하신 어떤 구체적인 영적을 말하기도 하지만, 예수님 자신이 바로 구원 자체이심을 보여 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을 자각했던 시메온은 사도 요한이 표현했던 그 기쁨을 맛보았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1요한1,1)

 

 

 

<성가정>

 

예수님의 다음 두 말씀은 성가정의 바탕을 이루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 10,9).”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5).”


요셉이 마리아와 파혼하려고 했던 일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으려고 했던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마태 1,18-19).”

복음서에는 ‘약혼, 파혼’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당시의 관습으로는 요셉과 마리아는 법적인 부부였습니다.

그래서 ‘약혼, 파혼’은 실제 뜻으로는 ‘결혼, 이혼’입니다.


요셉이 파혼하려고 한 것은 마리아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가 찾아온 일과 성령으로 잉태하게 되었음을

요셉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 일들은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마리아를 믿었기 때문에 ‘남모르게’ 파혼하려고 작정합니다.

(요셉은 마리아의 잉태 사실이 아니라 파혼 사실을 감추려고 했습니다.

파혼 사실을 감추면 사람들은 태어난 아기를 요셉의 아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따라서 요셉이 ‘남모르게’ 파혼하려고 한 것은

마리아와 아기를 모두 보호하기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랬었는데 천사가 직접 개입해서 성령 잉태를 설명해 주었고(마태 1,20-21),

요셉과 마리아가 갈라서는 일이 생기지 않게 됩니다.

(천사가 개입한 일은 사실은 하느님께서 개입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그 일은 하느님께서 요셉의 기도에 응답하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요셉은 자신의 생각을 실행하기 전에 아주 많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에서 보듯이 부부 사이의 믿음과 기도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부부 사이에 믿음이 깨지고, 그리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가정 공동체가 위험해집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 그래서 아브람은 나그네살이하려고 이집트로 내려갔다.

그 땅에 든 기근이 심하였기 때문이다. 이집트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그는 자기 아내 사라이에게 말하였다. ‘여보, 나는 당신이 아름다운 여인임을

잘 알고 있소. 이집트인들이 당신을 보면, `이 여자는 저자의 아내다.` 하면서,

나는 죽이고 당신은 살려 둘 것이오. 그러니 당신은 내 누이라고 하시오.

그래서 당신 덕분에 내가 잘되고, 또 당신 덕택에 내 목숨을 지킬 수 있게

해 주시오.’ 아브람이 이집트에 들어갔을 때, 이집트인들이 보니 과연 그 여자는

매우 아름다웠다. 파라오의 대신들이 사라이를 보고 파라오 앞에서

그 여자를 칭찬하였다. 그리하여 그 여자는 파라오의 궁전으로 불려 갔다.

파라오는 사라이 때문에 아브람에게 잘해 주었다. 그래서 그는 양과 소와 수나귀,

남종과 여종, 암나귀와 낙타들을 얻게 되었다(창세 12,10-16).”

아브라함은 자기가 살려고 사라가 아내라는 것을 감추었습니다.

그것은 부부 공동체를 부정한 일입니다.

(더 나쁘게 생각하면, 아내를 임금에게 팔아서 부자가 된 일입니다.)

겉으로는 부부 관계가 유지되었지만,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인연을 인간적인 욕심 때문에 갈라놓은 일을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하느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부부 공동체가 지켜졌습니다(창세 12,17).

그러나 아브라함의 행동이 정당화되지는 않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파라오는 아브라함을 엄하게 꾸짖고(창세 12,18-19),

그를 이집트에서 추방합니다(창세 12,20).

(파라오가 아브라함을 꾸짖은 것은 사실상 하느님께서 꾸짖으신 것입니다.

사라 입장에서 생각하면, 사라는 남편에게 크게 실망했을 것이고,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을 것입니다.)


아담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창세 3,11-12)”

하와를 처음 보았을 때 아담은,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라고 부르짖었습니다(창세 2,23).

이 말은, “하와는 나의 일부이고, 또 다른 ‘나’다.” 라는 뜻입니다.

그랬던 그가 선악과를 따 먹은 일 때문에 혼나게 되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 때문에 그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일부였던 아내를 ‘남’으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아담의 말은, 자기가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은 하와 책임이라고,

또 하와를 만들어 주신 하느님의 책임이기도 하다고 책임을 전가하는 말입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고 전가한 일도 죄가 되고,

자기만 살려고 부부 공동체를 깨뜨린 일도 죄가 됩니다.

하와 입장에서는 “저런 남편을 믿고 어떻게 평생을 함께 살 수 있을까?” 라고

한숨을 쉬었을 것이고, 아담에 대한 신뢰감을 잃었을 것입니다.)


부부가, 또 가족이 일심동체를 이루는 것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즉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일심동체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모범이 되는 사람은 ‘룻’입니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어머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저도 죽어 거기에 묻히렵니다. 주님께 맹세하건대, 오직 죽음만이 저와 어머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룻기 1,16-17).”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일심동체를 이루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일입니다.

즉 부부와 가정 공동체는 선(善)을 지향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족이 한마음 한 몸이 되어 하느님의 현존을 증언하는 신앙 공동체,

그것이 곧 성가정입니다.

(가족끼리 똘똘 뭉쳐서 악을 행한다면 그것은 범죄 집단이 될 뿐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2017년이여 안녕~~!!!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7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