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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통곡하는 검사는 없는가....우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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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자 [agatha11] 쪽지 캡슐

2009-06-24 ㅣ No.9663

통곡하는 검사는 없는가 / 우희종
 
 
 
한겨레  
 
 
»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문화방송〉 ‘피디수첩’과 관련된 사법부의 판단과 사회의 반응을 보면 다시 한 번 진실(truth)과 사실(fact)의 틈새를 생각하게 된다. 진실과 달리 사실이란 우리의 만들어진 믿음에 불과하다. 조작과 왜곡에 상관없이 일단 우리가 믿게 되면 그것은 사실이 된다. 사실이 언제나 진실과 같은 것이 아니며, 그 사이의 간극은 항상 있게 된다.

힘 있는 기득권자는 자신의 입장을 위해 얼마든지 진실을 가리고 그럴듯한 왜곡된 사실을 만들지만, 힘없는 자들은 그 무언가를 만들어내거나 왜곡·조작할 힘이 없다. 그래서 그들이 외치는 소리는 있는 그대로일 뿐이다. 기득권자들이 권력과 자본으로 진실을 왜곡하며 그 미약한 소리를 거짓으로 몰아 선전하면, 일반인들은 그것을 진실이라 믿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엔 만들어진 사실에 흥분하며, 그것이 진실인 양 착각하는 어리석은 광기가 넘쳐나고 있다.

검찰은 수사를 위해 국내 광우병 전문가들로부터 의견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광우병 관련 실험이나 연구를 하는 곳은 다섯 손가락도 안 된다. 과연 검찰이 들었다고 하는 국내 광우병 전문가는 누구일까? 정부 전문가회의에서 한 번도 이름이 거론된 적이 없고 광우병 연구와 전혀 무관한 이들이 쇠고기 졸속 타협 이후 갑자기 정부 쪽 광우병 전문가로 등장해서 각종 토론회와 청문회에 등장했던 기억이 있다.

검찰은 2007년 하반기 수입협상을 위한 전문가회의가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그 회의에 전문가로서 참석했던 나에게 그것은 단지 허울 좋은 말장난이다. 당시 회의에서는 현 정권의 협상 조건과는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고, 그 이후 관련 전문가회의는 없었다. 전문가회의의 결론과 다른 내용으로 경위도 불분명하게 협상함으로써 최종 소비자인 국민의 권리를 무시한 현 정권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검찰은 스스로 권력의 시녀로서 왜곡된 사실 만들기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인의 유전자형에 대한 검찰의 판단은 과학을 너무 모르는 결론이다. 어차피 질병은 하나의 요인만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기에 지금까지 방송된 대부분의 과학보도는 모두 허위가 되며, 전세계 과학 교과서의 용어도 전부 수정해야 한다.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면 사고 나니 조심해’라는 말까지 허위가 된다.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도 여러 요인이 중첩되어 사고가 나는 것이고 반드시 사고가 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은 국가간 통상 권고기준인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을 누구나 준수해야 할 과학기준과 혼동하고 있다. 주변 나라가 왜 1년이 넘도록 여전히 수입조건을 바꾸지 않고 있으며, 그럼에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당하지 않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촛불시위 당시 다른 나라가 한국 조건으로 재협상하지 않으면 언제고 재협상하겠다고 한 허언은 무엇인가. 또 촛불시위 이후 국제기준을 무시하며 황급하게 인간광우병(vCJD)을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으로부터 분리해 마치 별도의 질병처럼 국내 법령을 고친 것도 정부의 왜곡된 사실 만들기의 한 사례다.

검찰이 방송의 악의성을 증명한다면서 제시한 작가의 사적 메일은 입증 근거로는 너무도 초라하다. 이런 검찰의 행위가 사회에서 얼마나 폭력적으로 악용될 수 있는지는 명확하다. 진정 우리 사법부엔 깨어 있는 자가 이토록 없는 것일까. 더욱이 이런 허접한 논리로 만들어진 검찰 기소문이 나오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사회의 흉기, 경영진 퇴진’ 운운하며 열을 올리는 청와대의 모습. 이 시대의 희극 한마당이다. 깨어 있는 검사가 있다면 이번 기소문을 읽고 권력의 시녀를 위해 대성통곡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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