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동성당 게시판

사슬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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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충희 [rch1104] 쪽지 캡슐

2004-12-16 ㅣ No.3200

영혼의 속삭임

 

사슬풀기

한 광 구(요셉)

이제는 풀어야하리

하나하나 풀어버리고

새날을 맞아야 하리.

우리를 칭칭 감은 이 사슬

길고도 무겁기도 하지.

마디마디 엮여져

가슴을 옥죄고,

머리를 옭매고,

마디마디

왜 이다지도 질긴지.

밀치며 퍼붓던 비난과 원망

모두가 마디마디 얽혀서

온몸을 묶던

이 청동 사슬을

이제는 풀어야하리.

아니, 끊어 버리고

뜨거운 눈물로

서로 용서하고

서로 사랑하며

얼싸 안고 이 땅에

자유

평화

새날을 우리 함께 열어야 하리.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많은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고는 합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서부터 눈뜨면 마주쳐야만 하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많은 사람들과 평생을 마주치게 되고는 합니다. 사업관계로, 업무관계로, 직장에서, 일터에서, 이러저러한 크고 작은 모임에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헤어지게 되지요. ‘선연선과(善緣善果)’라는 옛말처럼 그러한 만남과 헤어짐에 아주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진다면 더 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고 좋은 인연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정말로 불편하고 어색하기 그지없는 악연이 되겠지요.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마태복음, 18장 21절) 하고 묻자, 주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마태복음 18장 22절)고 말씀해 주셨듯이, 위에 인용한 시에서도 시인은 “가슴을 옭죄고,/ 머리를 옭매고”있던 사슬, “이 청동 사슬을/ 이제는 풀어야하리./ 아니, 끊어 버리고/ 뜨거운 눈물로/ 서로 용서하고/ 서로 사랑하며”라고 ‘용서’와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누군가의 잘못을 용서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요. 더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언행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조차도 모르는 까닭에 그런 사람들을 용서하기란 그렇게 쉽지는 않지만,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계명이다.”(요한복음, 15장 17절)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그 모든 사람들,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을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면, 우리들 자신 또한 주님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이 시에서도 암시하고 있습니다. “밀치며 퍼붓던 비난과 원망”의 사슬, 질기고 질긴 ‘청동 사슬’을 ‘대림주일’을 맞아 아예 끊어버리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주님의 탄생을 기다릴 때에 우리 모두는 축복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일상사에서 마주치게 되는 모든 사람들과의 인연이 ‘선연선과’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윤호병 빈첸시오, 문학 평론가, 추계예술대학교 교수)

 

 

대림 막바지에 용기를 내어 나머지 사슬을 끊어 버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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