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동성당 게시판

너무 무심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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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정 [consola] 쪽지 캡슐

2002-02-26 ㅣ No.8098

봄날이 오는 가보다. 나는 봄이 와서 좋은데, 친구 하나는 겨울이 뒷모습도 보이지 않고 떠나갔다고, 떠나간 겨울을 아쉬워한다. 곧 있으면 3월이다. 겨우내 입던 코트 같은 것들 다 치우고 좀 할랑거리는 옷을 꺼내 입겠지, 날은 여전히 춥고 쌀쌀해도 안 추운 척하면서, 조금 얇은 옷을 고집할 것이다.

 

그래도 봄이 오면 나는 긴 겨울동안 웅크리고 있던 어깨를 좀 펼것이며, 겨울나무들이 연두색 파란 눈을 틔우기를 기다릴 것이다. 외롭게 저 혼자 서있는 나무들도 저마다의 옷으로 갈아입을 테고,  얼마나 조용히 그 나무가 변해가는지 나는 지켜볼테다.

 

식탁위에 땅콩이 있는 것을 보고서야 오늘이 대보름이란 것을 알아차렸다. 방청소며, 지저분하게 널부러져 있는 잡동사니들을 치워야지 하고 마음먹은지가 꽤 지났는데도 엄두가 나지 않아서, 아직 못치우고 있다. 남 주거나, 헌책방에 내다주려고 뽑아 놓은 책들은, 누구 줄까 생각하기도 어렵고, 헌책방에 가기가 귀찮아서, 있던 데다가 도로 꽂아두었다.

 

게시판에 들어오니 온통 솔트레이크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우리나라의 국력이 후진거,,, 외교적 수완이 떨어지는 것, 혹은 페어플레이 정신이 결여된 외국 선수들에 대해서 다들 분노한다.( 마침 우리에게는 공통적인 이야기거리가 생겼구나.) 사실 외교를 잘하는 건 북한인데, 북한이 쥐뿔도 없으면서 미국에 큰소리 칠 때마다 남들은 쥐약먹었냐,,, 그러지만, 나는 속으로 박수를 친다. 사람이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은 명예나 혹은 자존심, 자존감 이런게 아닌가 싶다. 물론 그런 것을 지키기 위해 먹을것이나, 그 밖의 것들이 최소한은 충족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어느 방송사 홈피나 올림픽 홈피,, 등등 관련된 홈페이지가 한국 열성팬들의 항의로 서버다운되었다고 하고, 정말 다들 한 성질 하시는 분들만 모이는 나라여서인지, 전국민이 똘똘 뭉쳐서 궐기하는 모습을 보고있자니, 이 바람이 또 언제 잠잠해질까 염려되어 하는 소리다. 곧 쉽게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이 각자 잘난 맛에, 살아갈 날 금방 올터인데, 뭐가 그렇게 큰일이 났다고 야단법석인지 하는 생각이 든다. 개국 이래 최대의 위기 IMF가 터졌을 때도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금을 모았고, 아무도 왜 우리가 금을 모아야 하는지, 금을 모으면 정말로 경제가 회생되는지 연결고리를 생각하지 않고 미친듯이 금만 모았다. 우리집이야 금붙이가 없어서 내놓을게 없었지만, 있었더라도 그런 닭질은 하지 않았을 거다.

 

 분노할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홈피를 망가뜨리거나 항의메일을 무수히 많이 보이는 행위를 함으로서 시위를 하는 것은, 국제적으로는 상당한 망신거리라고 생각한다. 외국에서는 우리국민의 이런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며, 상당히 감정적인 대응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그렇게 보고 있고, 제풀에 조용해질 것이라고 우리나라 국민을 우리 자신보다도 더 잘 파악하고 있어서 문제다. 이런 행위는 우리나라의 대외이미지에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뭐, 월드컵 코리아니까. 스포츠 강국이 되면 나라가 좋아지는 거겠지.

 

아니면 내가 너무 스포츠에 관심이 없어서일까. 운동을 함께 하면서 배우는 정신혹은 친선 이런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번에 주임신부님께서 우리 본당을 떠나가시는 것에 대해서도 속상하다.

게시판에 그토록 바람직한 사제상이며, 우리가 바라는 사제며, 이웃에 계시는 신부님이며,,,무성한 말잔치를 벌이던 사람들은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신가. 새로이 우리 본당에 신부님이 오시기 전에 더욱 공고히 우리가 바라는 사제에 대해서, 모름지기 신발 치수는 어때야 하고, 신자들과 만나 이야기할때는 어떠해야 한다고 못박아 두시는 게  좋지 아니한가.

 

우리는 공동체인가. 하느님을 섬기는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여서는, 어떤 사안이 이렇게 처리되어도 좋은 것인가. 교회의 주인은 하느님인가. 사제인가, 아니면 여기 터잡고 살고 있는 우리들인가.

교회가 가난하다는 것이 반드시 돈에 관해서만 말하는 것인가.

정작 우리는 무엇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것인가.

 

왜 아무도 서로의 말을 듣지 않고 있는가. 귀를 막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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