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성서공부

수요성서(7월13일) 말씀에 기준을 두고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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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식 [vlxj3004] 쪽지 캡슐

2006-07-12 ㅣ No.104

   † 그리스도님 우리의 평화                                            7;13   

 

잠시 있다가 가는 세상인데

마치 수천 만년을 사는것 처럼

미련한 인생은 세상적인 미래를 설계하고 갖가지 계획을 세우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하느님 앞에 올바로 사는것 하나 밖에 없음을

야고보를 통해서 가르켜 주시니 주님 감사드립니다.

 

네가 진정으로 나를 사랑 한다면

내가 네게 명령한 모든 말들을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우리 신앙의 올바른 자세를 채근하는 야고보는

 

세상적이며 반 하느님적인 것은 과감하게 도려내고 끊어내 버리고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말씀에 기준을 두고 살아 가라고

강한 멧세지를 쏫아내고 있사옵니다

 

주님

절대적 순명의 신앙 생활로 이어 지도록 미약한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요.

 

 

※ 말씀에 기준을 두는 삶 ※

 

4 장 8 절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죄인들은 손을 깨끗이 씻고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순결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엥기사테 토 데오)

7, 절 에서는 하느님께 순종 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8, 절 에서는 하느님께 가까이 나갈것을 명령하고 있는 야고보 입니다.

 

예수님 당시만 해도

구약의 율법은

하느님이 임재 하시는 성전에

규정된 시간에 제한적으로 접근 하는것만 허락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 제사를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께 얼마든지

어느 시간을 불문하고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 갈 수 있습니다.

 

▲에페소서 3:6, 9, 11,

그 심오한 계획이란

이방인들도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면서

유다인들과 함께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한 몸의 지체가 되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함께 받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과거에 감추고 계시던 심오한 계획을

어떻게 실현하시는지를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알려주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내세워 이루시려고

작정하신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입니다.

 

▲히브리서 4:14-16,

우리에게는 하늘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에 대한 신앙을 굳게 지킵시다.

 

우리의 사제는

연약한 우리의 사정을 몰라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유혹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용기를 내어 하느님의 은총의 옥좌로 가까이 나아갑시다.

그러면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받아서 필요한 때에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 앞에 언제나 나오기를 간절히 원하시고 계십니다.

당신 아들의 생명까지 우리를 위해 내 놓으신 하느님의 마음은

우리에게 향한 하느님의 아픔의 사랑으로

측량 할 수 없는 무한대 입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뿌리치고

사탄이에 의해서 오는 세상적인 정욕과 시기 질투 싸움 편가름 등등의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

쫒게 만드는 유혹을 쫒아 가는 교우들을 향해서

야고보는

하느님께 언제나 늘 가까이 나아 가라는 종용을 하고 있습니다.

 

엥기사테,(원형,엥기조)

시제가 부정 과거 명령형 으로

명령은 단호하며 실천은 즉각적으로 당장에 움직이라는 뜻으로

하느님께 신뢰를 갖고 그 앞에 나아 가라 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면 반듯이 하느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 가면서

구체적으로 먼저 내 행실을 고쳐야 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죄인들은 손을 깨끗이 씻고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순결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카라리사테 케이라스 하마르톨로이 카이 하그니사테 카르디아스 뒵시코이)

같은 주님을 믿는 교우들 이지만

세상을 벗하며 세상과 교회에 양쪽 발을 담고있는 교우들을 향해서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이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손을 씻고 순결한 마음을 가지라고 전재를 하고 있습니다.

 

카라리사테,(원형,카타리죠)

죄 따위를 씻어내다, 순수하고 맑게하다,

잘못과 죄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게하다, 입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제사를 드리기 전에 반듯이 손을 씻는 예식을 합니다.

 

▲출에급기 30:17-21,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세숫물을 담을 물두멍과 그 받침대를 놋쇠로 만들어

만남의 장막과 제단 사이에 놓아라.

 

그러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거기에서 물을 퍼내어

두 손과 두 발을 씻을 것이다.

 

만남의 장막 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물로 씻어야 죽지 않는다.

그들이 야훼께 제물을 살라 바치기 위하여 제단으로 나아갈 때에도

그렇게 해야 한다.

 

죽지 않으려면 손과 발을 씻어야 한다.

아론과 그의 후손들은 대대로 길이 이 규정을 지켜야 한다."

 

 

야고보는 여기에서 씻는 예식과 비교를 하면서

예수님의 피로

진정한 회계를 통해서 마음과 양심을 정결하게 씻을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하그니사테,(원형,하그니죠)

구약의 제사장이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규례로 행하는

정결예식을 가르키는 의미 입니다.

 

야고보는

카라리사테, 하그니사테, 라는 단어를 사용 하면서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야고보서 1:6-8

조금도 의심을 품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구하십시오.

의심을 품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흔들리는 바다 물결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예 주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의심을 품은 사람은 마음이 헷갈려 행동이 불안정합니다.

 

우상을 섬기는 세상을 쫒아감과

하느님을 믿는 믿음의 사이에서

 

▲1 열왕 18:20-24,

아합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고

예언자들에게 가르멜 산으로 모이라고 하였다.

 

엘리야가 백성들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있을 작정입니까?

만일 야훼가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시오."

그러나 백성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다시 말하였다.

"야훼의 예언자로서 살아 남은 사람은 나 하나요.

그러나 바알의 예언자는 사백오십 명이나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황소 두 마리를 끌어다 주시오.

그들에게 한 마리를 잡아 장작 위에 올려놓고

불을 붙이지 않은 채 그냥 두게 합시다.

나도 한 마리를 잡아 장작 위에 올려놓고 불을 붙이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섬기는 신의 이름을 부르시오.

나는 나의 하느님 야훼의 이름을 부르겠소.

어느 쪽이든지 불을 내려 응답하는 신이 참 하느님입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모두 그렇게 하자고 하였다.

 

세상에 미련을 두고 끊어 버리지 못하는 사이에서,

▲4:4

절조 없는 사람들!

이 세상과 짝하면 하느님을 등지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누구든지 이 세상의 친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원수가 됩니다.

 

 

위에서 언급된 내용을 갖고 있는 두 마음을 품은 자들 입니다.

당시에 교우들이 갖고 있는 문제를 야고보가 지적을 하고 있지만

오늘의 교회 공동체 내에서도 현실적인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세상을 향한 마음과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서 양쪽에 발을 담그고

양수겹장을 노리는 장사꾼 같은 신실성이 없는 신앙을 가고 있는자들,

 

기회를 노리면서

세상적인 이익과 연결 되어지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신앙 생활자들,

 

의복 벗듯이 언제라도

조금의 힘듬과 어려움이 신앙으로 인해서 찾아 올 때

예수님을 내 벗어 던지는 신앙인들,

 

자기의 이익이

하느님을 섬기는 신앙보다

세상적인 이익이 더 중요 하다고 여기는 모든 신앙인들에게

야고보는

그러한 두 마음을 깨끗이 벗어 던지라고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하그니사테,(원형,하그니조) 는

너희의 심장 중심에서 부터

세상적인 모든것을 깨끗이 씻어 내고

 

더러움을 제거하고, 죄를 씻어 맑은 상태를 유지하고,

네 자신이 죄로 접근하지 않도록 개혁을 하고,

라는 뜻처럼

두 마음에서 벗어 나라는 뜻입니다.

 

9 절

여러분은 괴로워하고 슬퍼하며 우십시오.

웃음을 슬픔으로 바꾸고 기쁨을 근심으로 바꾸십시오.

 

*여러분은 괴로워하고 슬퍼하며 우십시오

 (탈라이포레사테 카이 펜데사테 카이 클라우사테)

야고보는 3 개의 유사한 동사를 나열 하면서 회계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시제가 부정 과거 명령법 으로

철저하며 즉각적인 회계를 단호하게 명령하는 뜻입니다.

 

탈라이포레사테,(원형,탈라이포레오)

양심의 가책을 경험하다, 후회를 경험하다, 탄식하다, 라는 뜻이며

능동태 명령형 입니다.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들여다 보면서

가슴을 치며 한탄하는 자세로 회계를 통해서 내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모습 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미사를 봉헌 할 때

가슴을 치면서 내 탓이오, 라는 기도가 탈라이포레사테, 의 자세로

하느님 대전에 내 죄를 들여다 보면서 회계의 기도를 올리라는 의미 입니다.

 

펜데사테,(원형,펜데오)

죽은자를 위하여 대성 통곡을 하는 울음 입니다.

 

죄로 오염된 내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께 너무나도 죄송하고 송구 스러워 회계의 기도와 함께

통회하며 우는 회계의 울음 입니다.

 

산상 수훈에서 예수님이 애통해 하는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 하셨을 떄

사용 하셨던 단어 입니다.

▲마태오 5:4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떳떳하지 못한 죄로 인하여

하느님 앞에서 부끄럽고 머리를 들 수가 없어서 가슴을 치면서

애통해 하고 다시 하느님께 돌아 오겠다는

결심이 동반된 애통함 입니다.

 

클라우사테,(원형,클라이오)

울다, 눈물을 흘리다, 몹시 슬퍼하다, 통곡하다, 라는 뜻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영혼에서 부터 솟아 흘러 나오는 심연의 눈물 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회계의 증표가 되는 증거가 필요 하다고 했습니다

 

▲고린토후서 7:8-11

내가 여러분에게 보낸 그 편지가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 편지가 잠시 동안이나마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을 알고

내가 후회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기뻐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 기쁘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그 일로 인해서 회개하게 되었다는 것이 기쁘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마음 아파한 것은

하느님의 뜻대로 된 일이니

결국 여러분이 우리로 해서 손해본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겪는 상심은 회개할 마음을 일으켜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을 후회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세속적인 상심은 죽음을 가져올 뿐입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겪은 바로 그 상심이

여러분에게 이루어준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은 열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게 되었고

의분이 생겼고 두려워할 줄 알게 되었고

그리워하는 마음과 헌신하려는 마음이 생겼고

악을 징벌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여러분은 그 사건에 있어서 조금도 잘못이 없었다는 것을

훌륭하게 증명했습니다.

 

다윗은

하느님 앞에서 회계 할 때 심연의 눈물로 하느님께 회계를 하였습니다

 

▲시편 6:1-10,

야훼여! 노여우시더라도 나의 죄를 묻지 말아주소서.

아무리 화가 나시더라도 나를 벌하지 말아주소서.

 

야훼여! 힘이 부치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뼈 마디마디 쑤시오니 나를 고쳐주소서.

내 마음 이토록 떨리는데, 야훼여! 언제까지 지체하시렵니까?

 

야훼여! 돌아오소서,

이 목숨 구하소서. 당신의 자비로써 살려주소서.

죽으면 당신을 생각할 수 없고

죽음의 나라에선 당신을 기릴 자 없사옵니다.

 

나는 울다가 지쳤습니다.

밤마다 침상을 눈물로 적시고 나의 잠자리는 눈물 바다가 되었습니다.

울다울다 눈이 안 보이고, 괴롭다 못하여 늙고 말았습니다.

 

악한 짓 하는 자 모두 나에게서 물러가라.

내 울부짖는 소리 야훼께서 들으셨다.

야훼께서 나의 애원 들으셨으니 야훼께서 나의 기도 들어주시리라.

내 원수들이 모두 겁에 질려 당황하는구나.

창피하거든 어서들 물러가거라.

 

이렇게 하느님 앞에서

나의 잘못을 느끼고 고백하는 모습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렇게 회계 하면

그 슬픔을 웃음으로 바꿔 주신다고 예수님은 약속 하셨습니다.

 

▲루가 6:21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세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정화 하면서

깨끗한 상태를 유지 할것에 신경을 쓰면서

 

▲루가 18:11-14,

바리사이파 사람은 보라는 듯이 서서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을 뿐더러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일 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 하고 기도하였다

 

한편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들어라.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세리였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기준을 두면서

야고보는 우리의 자세를 수정 하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웃음을 슬픔으로 바꾸고 기쁨을 근심으로 바꾸십시오

(호 겔로스 휘몬 에이스 펜도스 메타트라페토 카이 헤 카라 에이스 카테페이안)

말씀에서 벗어나 있으면서,

세상과 짝 하고 세상적인 즐거움과 웃음을 만끽하는 입장에서

아무 죄책감 없이 즐기는 마음 상태를

하느님 앞에 올바로 서기위한 슬픔과 근심으로 바꿔 통회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야고보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루가 6:21-26,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사람의 아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내어쫓기고 욕을 먹고

누명을 쓰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럴 때에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그러나 부요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는 이미 받을 위로를 다 받았다.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굶주릴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웃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날이 올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사도 바오로는

내 모습의 실체를 정확히 진단하고

하느님 앞에 올바로 서있지 못하다면 애통해 하고 근심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고린토후서 7:10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겪는 상심은

회개할 마음을 일으켜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을 후회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세속적인 상심은 죽음을 가져올 뿐입니다.

 

카테페이안,(원형,카테페이아)

슬픔에 찬 표정, 우울함, 이라는 뜻으로

하느님께 떳떳하지 못한 내 모습을 보이면서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는

슬픔과 우울함 입니다.

 

10 절

주님 앞에서 스스로 낮추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높여주실 것입니다.

(타페이노데테 에노피온 퀴리우 카이 휩소세이 휘마스)

 

*낮추십시오....높여주실 것입니다

 (타페이노데테 에노피온...휩소세이)

 

타페이노데테,(원형,타페이노오)

6 절에서 나오는 타페이노스, 와 동일한 단어로

하느님 앞에서 자기를 최대한 낮추는 지극히 낮은 겸손함 입니다.

 

휩소세이,(원형,휩소오)

높이 올리다, 들어 올리다, 라는 뜻으로

 

모든 교우들의 장자가 되신 예수님을

하느님은 높이 들어 올리신것 처럼

천국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지극히 겸손한 사람 이라고 말씀 하셨듯이,

 

하느님의 주권적인 들어 올리심으로 높이 들어 올려 주시는 축복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이 높이 들어 오리시는데 그 누구도 끌어 내리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서로 헐뜯지 말라  ※

 

11 절

형제 여러분,

서로 헐뜯지 마십시오.

자기 형제를 헐뜯거나 심판하는 사람은 율법을 헐뜯고

율법을 심판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심판하면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심판자가 됩니다.

 

*형제 여러분...서로 헐뜯지 마십시오...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메 카탈랄레이테...아델포이...크리네이 노몬)

11, 12, 절은

교우 상호간에 긴밀한 관계성을 이야기 하면서

헐뜻거나 비방하거나 판단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러한 판단을 한다면

그가 하느님의 자리에 앉아 있는것 처럼  스스로 하느님 행세를 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므로

어떠한 경우가 되더라도

절대로 그러지 말라고 강한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심판권은 오짓 하느님에게 만 있는 것이며

우리는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님의 피로 한 형제 자매가 되었기 때문에

교우간 에는 사랑만을 주고 받아야 하는 것이며

 

같은 교우들을

헐뜻거나 비방 하는 행위는 

하느님이 평가를 해야 되는 권한에 침범하는 것이며 큰 교만 이므로

그 행위 자체가

하느님의 자리에 있는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카탈랄레이,(원형,카탈랄레오)

카타(~ 에서 아래로, ~ 에 대항하여) + 랄레오(말하다) 의 합성어로

상대방에 대해서 폄하하여 말하다, 대항하여 말하다, 라는 뜻으로

 

마음에 가득히 들어있는

악의적인 것과 증오와 교만함의 말로

상대를 깍아 내리며, 무시하고, 상대의 인격을 인정하지 않는,

교만한 마음으로 다툼으로 분쟁으로 이어지는 당시의 현실을 지적하는 것이고

오늘의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씀 입니다.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핏값으로 같은 공동체 안에 있는

형제 자매가 되었다면

 

신앙 생활의 모든 기준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인데

공동체 안에서 자기를 내세우려는 교만이

상대를 증오하게 하고 결국은 다툼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같은 형제 자매들에게 악한 말을 하지 말고 무시하지 말고

상대의 인격을 존중해 주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분쟁의 원인을 제공하는 사람은

세상과 교회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적을 하면서 야고보는 아델폰(형제들) 이라는 단어를

꺼내 쓰고 있습니다.

 

▲시 편 133:1

이다지도 좋을까, 이렇게 즐거울까! 형제들 모두 모여 한데 사는 일!

 

하느님의 계획으로 예수님을 통한 형제들이 되었고

교회는 영적인 공동체이며

예수님을 머리로 하여 각 지체로써 연결이 되어 있으며

하느님으로부터 유산을 상속받을 가족 이라는 것입니다.

 

크리네이,(원형,크리노)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이성적인 기준과

법에 기준하여 죄의 유 무죄를 재판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형제들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말씀을 내려주신 하느님의 입장에 서서 재판하는 것이므로

하느님이 되려는 교만함 입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심판하면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심판자가 됩니다.

  (우크 에이 포이에테스 노무 알라 크리테스)

우리 인생은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이지 조물주가 아닙니다

하느님을 재쳐놓고 계명을 제정한 하느님의 자리에 오르려고 한다면

사탄이와 조금도 다를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크리테스,(원형,크리노)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오류가 전혀 없으신 재판 판정과 하느님의 판단과 결정을 뜻합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서 제정해 주신 계명을 지킬 의무가 있는 피조물이지

계명을 제정한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같이 되려고

하느님의 영역 안에 들어 가려다가

하느님으로부터 쫒겨난 천사

곧 사탄이의 왕이 된 마귀는 하느님 행세를 하며

세상의 모든 인생들을

하느님이 정해 놓으신 기간 동안 그 세력을 쥐락펴락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14:21-15

웬일이냐, 너 새벽 여신의 아들 샛별아,

네가 하늘에서 떨어지다니!

민족들을 짓밟던 네가 찍혀서 땅에 넘어지다니!

 

네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아니하였더냐?

'내가 하늘에 오르리라.

나의 보좌를 저 높은 하느님의 별들 위에 두고

신들의 회의장이 있는 저 북극산에 자리잡으리라.

 

나는 저 구름 꼭대기에 올라가 가장 높으신 분처럼 되리라.'

그런데

네가 저승으로 떨어지고 저 깊은 구렁의 바닥으로 떨어졌구나!"

 

 

이 사탄이가

하느님이 처음 창조한 인간에게 접근해

사망과 죽음을 있게한 원흉 입니다.

 

▲창세기 3:4-6

그러자 뱀이 여자를 꾀었다.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 나무 열매를 따먹기만 하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서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이 아시고 그렇게 말하신 것이다."

 

여자가 그 나무를 쳐다보니

과연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 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따먹고 같이 사는 남편에게도 따주었다. 남편도 받아먹었다.

 

하느님 은

이렇게 죽음과 사망이 인생애게 오게한 원흉 사탄이를 가만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사탄이를 따르는 모든 인생들에게

하느님은 너무나도 큰 배신을 느끼실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느님이 정해 놓으신 기간이 다 차면

사탄이와 그를 따랏던 모든 인생들을 위해 준비해 놓으신 게엔나

불 바다 속에 던져 버리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천국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지극히 겸손한 사람 이라고 정의 하셨고

교만하지 말라고 경고의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리를 넘보는 자는 사탄이의 하수인이며

그의 종말은

영원한 절망과 고통과 형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 입니다

 

▲잠 언 16:18-20

거만엔 재난이 따르고 불손엔 멸망이 따른다.

거만한 자들과 어울려 전리품을 나누는 것보다

마음을 낮추어 낮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낫다.

 

삼가 말씀을 따라 살면

행운의 열쇠를 얻고 야훼를 믿고 살면 행복의 문이 열린다.

 

12 절

그러나 율법을 정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망시키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이기에 이웃을 심판한단 말입니까?

 

*율법을 정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헤이스 에스틴 호 노모데테스 카이 크리테스)

야고보는

형제를 비방하지 말 것을 명령하고 이것을 어기는 것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내려주신 계명을 어기는 것이며

어기는 그 행위는

하느님의 자리에 오르려는 사탄이와 다를바가 없다는 것을 지적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 절에서는

진정한 재판관이 누구인가를 말 하려고 합니다.

 

헤이스,

오직 한 분, 이라는 뜻으로

하느님과 비교될 수 있는 존재는 그 누구도 없다는 것입니다.

 

노모데테스,

노모스(율법) + 티데미(놓다, 두다) 의 합성어로

율법을 내려주신 제정자, 라는 뜻으로

 

율법을 제정해 내려 주시고 판단 하시고 판결 하실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자가 곧 하느님 이시며

이 하느님외에

그 누구도 하느님과 비교 할 수 없는 유일한 절대자 라는 뜻입니다.

 

또한 모든 인생들을

구원해 내시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는 하느님 이시라는 뜻입니다.

 

▲신명기 32:39

이제 알아라. 내가 바로 그다. 나 외에는 신이 없다.

죽이는 것도 나요 살리는 것도 나며

찌르는 것도 나요 고쳐주는 것도 나다.

내 손에 잡은 것을 빼낼 자 없다.

 

▲사무엘 상 2:6-10

야훼께서는

사람의 생사를 쥐고 계시어

지하에 떨어뜨리기도 하시며 끌어올리기도 하신다.

 

야훼께서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가멸지게도 하시며

쓰러뜨리기도 하시고 일으키기도 하신다.

 

땅바닥에 쓰러진 천민을 일으켜 세우시며

잿더미에 뒹구는 빈민을 들어 높이셔서

귀인들과 한자리에 앉혀주시고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

땅의 밑동은 야훼의 것, 그 위에 세상을 지으셨으니

 

당신을 따르면 그 걸음걸음을 지켜주시지만

불의하게 살면 앞이 캄캄해져서 말문이 막히리라.

사람이 제 힘으로는 승리하지 못하는 법,

 

야훼께 맞서는 자는 깨어지리라.

지존하신 이께서 하늘에서 천둥 소리로 우렁차게 호령하신다.

야훼는 땅 끝까지 심판하시는 분,

당신께서 세우신 왕에게 힘을 주시며 기름 부어 세우신 임금의 이름을 떨치게 하신다."

 

▲열왕기하 5:7

이스라엘 왕은 이 서신을 읽고 옷을 찢으면서 말하였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신이란 말인가?

 

그가 사람을 보내어 나에게 나병을 고쳐달라고 하니,

이것은 그가 나에게 싸움을 걸려고 트집을 잡으려는 것이 분명하다.

그대들은 이 점을 분명히 살피시오."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망시키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

(호 뒤나메노스 소사이 카이 아폴레사이)

 

▲마태오 10:28

그리고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육신을

아울러 지옥에 던져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라고 말씀하신 예수님 말씀에 근거를 두고

당시 초대교회에 만연되고 있는 형제들에 대한 비방과 비판등을

야고보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비판하는 자리는 하느님의 고유한 영역 인데

피조물인 인간이,

더군다나 예수님의 십자가 제사의 핏값으로 구원을 입은 형제 자매들이 같은 은총을 입은 형제 자매들에게

무순 권리로 비판과 비방을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이길레 이웃을 심판한단 말입니까

(쉬 데 티스 에이 호 크리논 톤 플레시온)

 

쉬 데 티스 에이: 그런데 너는 누구냐,

네 입으로 상대를 비방하고 판단을 하는데

네가 판단하는 그 상대와 너 라는 사람은

예수님의 핏값으로 같은 형제가 된 사이가 아니냐, 라는 뜻입니다. 

 

플레시온: 가까운 이웃, 친한사이,

예수님에 의해서 한 형제 자매가 된 사이 입니다.

 

호 크리논: 분리하다, 구분하다, 재판하다, 검열관의 권한을 휘두르다

           사법적으로 벌하다, 라는 뜻으로

 

절대자가 피조물에게 행 할 수 있는 권한을

같은 피조물 입장에 있는 상대를

하느님의 자격으로 판단하고 비판하는 그 일이 옳다고 생각 하느냐,

라는 뜻입니다.

 

 

※ 자기의 뜻대로 사는 세속적인 삶 ※

 

13 절

"오늘이나 내일쯤

아무 아무 도시로 가서 일 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어보겠다." 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합니다.

 

*가서...지내며...벌어보겠다

(아게 뉜....포류소메다...카이 케르데소멘)

세속적인 삶의 모습 속에 나타난 세인들의 삶의 모습과

주님의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켜 주려는 야고보 입니다.

 

아게 뉜: 자 들어 보아라, 입니다.

 

마치 죽지도 않고 영원히 살아 갈 것만같이 계획을 세우고 욕심을 내고 있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욕망으로 치닫고 있는 미련한 인간의 모습을 먼저 지적 합니다.

 

포류소메다: 우리가...가서,

엠페류소메다: 장사하여,

케르데소멘: 벌어보겠다,

 

시제가 직설법 미래 시제로

실패함이 없이 분명히 성공을 장담하는 계획 입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그들이 실패 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유는

그 계획속에 하느님의 인도 하심이 없고 하느님의 뜻이 배제 되었기

때문 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시간 이후에 일어 날 일도 모르면서

분수에 넘치게 1 년 이라는 세월을 장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전혀 기대 하거나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모든것을 결정하는 교만함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부인하고 인정치 않겠다는 것이며

큰 교만 이라는 것입니다.

 

미래를 위한 설계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 계획속에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넣으라는 것입니다.

 

▲잠 언 16:1-3

계획은 사람이 세우고 결정은 야훼께서 하신다.

사람의 일이 제 눈에는 모두 잘돼 보여도

야훼께서는 속생각을 헤아리신다.

무슨 일을 하든지 야훼께 맡기면 생각하는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주님을 믿는 교우라면

어떠한 계획을 세우더라도 그 계획속에

하느님의 은총을 포함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14 절

당신들은

내일 당신들의 생명이 어떻게 될는지 알지 못합니다.

당신들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일 당신들의 생명이 어떻게 될는지 알지 못합니다

(호이티네스 우크 에피스타스데 토 테스 아우리온)

주님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서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은 큰 교만의 마음 입니다.

 

▲잠 언 27:1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마라. 하루 사이에 무슨 변이 생길지 모른다.

 

야고보는

예수님이 부자 에게

말씀 하셨던 내용을 상기 하면서 말하고 있습니다.

 

▲루가 12:16-21

비유를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얻게 되어

'이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며 혼자 궁리하다가

 

'옳지! 좋은 수가 있다.

내 창고를 헐고 더 큰 것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산을 넣어두어야지.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리라.

영혼아, 많은 재산을 쌓아두었으니

너는 이제 몇 년 동안 걱정할 것 없다.

그러니 실컷 쉬고 먹고 마시며 즐겨라.' 하고 말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

그러니 네가 쌓아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하셨다.

 

이렇게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될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 배제된 모든 계획, 그것이

설사 성공을 한다 하더라도 곧 없어질 거품에 불과 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실적인 성공을 했어도 그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없고

살아있을 동안 사업을 해서 벌어논 재물이나,

월급을 받아 저축한 재물이나 벌어논 모든 재물은 지속성이 없고

단 1 전도 갖고 갈 수 없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말씀하신 계명을 지키면

가장 빈천한 자에게 냉수 한 그릇 준 것도 잊지 않으시고

우리의 명의로 적금을 하늘에 들어 놓으셨기 때문에

 

원금과 이자는 복리로 불어 날 것이며

도둑도 없고 좀도 슬지도 않는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모든 계획속에 하느님께 의뢰하고

의지하고 하느님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하늘에 쌓아놓는 우리의 보화는 계속 불어 날 것 이며

생을 마감하고 주님을 만나는 그날

우리가 상상 할 수 없는 상급을 우리앞에 내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지금 이 말을 우리에게 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트미스 가르 에스테 헤 프로스 올리곤 파이노메네 에페이카 카이 아파니조메네)

 

아트미스, 는 안개 라는 뜻이며

인간이 갖고 있는  짧은 생명과 그 짧은 생명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유한 한 인간의 모습을 뜻합니다.

 

프로스 올리곤: 잠시동안,

               덧없이 흘러가는 아주 짧은 개념 입니다.

 

이렇게 유한한 인간인데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을 배제한 채 독자적인 이기주의 와 욕망으로

본인의 장래를 설계 한다는 자체는

내일 이라는 시간을 통제 할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붙잡고 의지하며

모든 계획은 하느님의 관여 하심에 맡기는 의지의 삶을

교우들이 갖어야 할 삶의 기준 이라는 사실을 말 하려고하는 야고보 입니다.

 

▲시 편 39:5

아옵니다.

나의 세월을 한 뼘 길이로 만드셨고,

내 목숨, 당신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머리를 들어봤자 사람은 모두 한낱 입김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셀라)

 

▲시 편 102:11

나의 운명은 석양의 그림자, 풀잎처럼 시드는 이 몸이옵니다.

 

▲욥 기 14:1,2

사람이란 결국 여인에게서 태어나는 것,

그의 수명은 하루살이와 같은데도 괴로움으로만 가득 차 있습니다.

 

꽃처럼 피어났다가는 스러지고 그림자처럼 덧없이 지나갑니다.

 

▲1베드로 1:24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인간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 있다."

여러분에게 전해진 복음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 15 절

그러므로 당신들은

"만일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우리는 살아가며 이런 일 저런 일을 해보겠다." 하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하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안티 투 레게인)

안티: ~ 에 대항하여, ~ 에 반대하여, 라는 뜻으로

 

세상에 살면서 인생의 어떤 계획을 세울 때

하느님의 자녀들은

반듯이 하느님의 뜻을 고려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우선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지 않는것은

내게 향하신 하느님의 계획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하느님의 뜻에 대항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뜻에 반대를 하는것 이므로

미래의 계획을 세울 때 "주님의 뜻" 안에서 라는 대 전제가

선행 되어야 한다는 뜻과

 

항상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하느님이 원하시지 않으신다면", 이라는 자세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뜻의 단어가 안티, 입니다.

 

▲마태오 6: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초대교회 교우들은 서신을 주고 받을 때

D.V (DEO VOLENTE) 라는 약자를 서신 겉봉투에 명기를 하였습니다.

뜻은 "하느님의 뜻" 이라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18:19-21

일행과 함께 에페소에 이른 바울로는

두 사람과 헤어져 혼자 회당에 들어가 유다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바울로에게 좀더 오래 머물러 있어달라고 청하였으나

바울로는 거절하고

 

"하느님의 뜻이라면 다시 찾아오겠소." 하고

작별 인사를 남긴 뒤 배를 타고 에페소를 떠났다.

 

▲1고린토 16:7

나는 지금 지나는 길에 여러분을 잠깐 만나보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얼마 동안 여러분과 함께 지낼 생각입니다.

 

이와같이

주님을 믿는 교우들은

하느님의 뜻을 배제한 채

내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고 계획을 세우고 일을 추진 한다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의탁해서

하느님이 기뻐 하시고 좋아 하시는 일에 먼저 우선권을 두고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면 행하는 그 일에 하느님은 함께해 주시며

구하지 않은 다른 나의 필요한 모든것을 아울러 주신다는 것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우리는 살아가며 이런 일 저런 일을 해보겠다."

(에안 호 퀴리오스 델레세 카이 제소멘 카이 포이에소멘 투토 에 에케이노)

 

에안 호 퀴리오스 델레세: 만일 주께서 하려고 뜻하신다면,

카이 제소멘: 우리가 살기도 할 것입니다,

 

카이 포이에소멘 투토 에 에케이노,

이것을 또는 저것을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하느님의 섭리와

하느님의 계획과  

하느님의 인도 하심에 전적으로 의탁을 드리면서

 

내 이익을 우선시 하지않고

하느님의 선하심이 먼저 드러나는 것을 우선시 여기고

하느님이 기뻐 하시는 일을 모든 것에서 우선 하라는 뜻이며

하느님 앞에서의 반듯이 갖고 있어야 하는 지극한 겸손함 입니다.

 

16 절

그런데도 당신들은

지금 허영에 들떠서 장담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장담은 모두 악한 것입니다.

 

*허영에 들떠서 장담을 하고 있습니다

(뉜 데 카우카스데 엔 타이스 알라조네이아이스 휘몬)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들을 야고보는 결론을 내리려고 합니다.

 

엔 타이스 알라조네이아이스 휘몬,

너희들의 그 오만한 태도 로, 입니다.

 

미래에 대한 계획과 욕망은

하느님의 뜻을 배제한 오만한 태도에서 나오는 헛된 장담을 하게되는

방자한 태도를 뜻합니다.

 

공중에 날아 다니는 참새들도

하느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엔 타이스 알라조네이아이스 휘몬,

알라조네이아이스,(원형,알라조네이아)

허식, 겉치장, 과시, 주제 넘는 건방진 말, 이라는 뜻으로

 

하느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하는 겸손함이 없는 교만한

태도라는 것입니다.

 

*이런 장담은 모두 악한 것입니다

(파사 카우케시스 토이아우테 포네라 에스틴)

 

파사: (그런 방자한 인식과 교만한 태도는) 모두 다, 라는 뜻입니다.

포네라: 포악한, 마귀적인, 이라는 뜻으로

 

하느님의 뜻과 섭리를 배제하고

인간적인 욕심과 욕망을 챙기기 위하여 세우는 계획과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 행하는 모든 행동은 하느님의 섭리를 부인하고

자기적인 이익에만 눈이 어두운 사람이며

본질적인 속 뜻은

하느님을 무시하는 계획과 행동 이라는 뜻입니다.

 

▲이사야 14:12-17

웬일이냐, 너 새벽 여신의 아들 샛별아,

네가 하늘에서 떨어지다니!

민족들을 짓밟던 네가 찍혀서 땅에 넘어지다니!

 

네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아니하였더냐?

'내가 하늘에 오르리라.

나의 보좌를 저 높은 하느님의 별들 위에 두고

신들의 회의장이 있는 저 북극산에 자리잡으리라.

 

나는 저 구름 꼭대기에 올라가 가장 높으신 분처럼 되리라.'

그런데

네가 저승으로 떨어지고 저 깊은 구렁의 바닥으로 떨어졌구나!"

 

너를 만나는 사람마다

어이없는 눈초리로 너를 보고 또 보며 말하리라.

"이자가 바로 세상을 뒤흔들던 자인가?

나라들을 소란하게 하고

온 땅을 황무지로 만들며 도시를 헐고 포로를 가두어 두던 그자인가?"

 

▲계시록 20:1-3

나는 또 한 천사가 끝없이 깊은 구렁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늙은 뱀이며 악마이며 사탄인 그 용을 잡아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끝없이 깊은 구렁에 던져 가둔 다음

그 위에다 봉인을 하여

천 년이 끝나기까지는 나라들을 현혹시키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탄은 그 뒤에 잠시 동안 풀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라는 말씀 처럼

거만함과 교만함은 하느님 보다 높아지려 하고

하느님 위에 서려는 악독함 이므로

그 교만함과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반듯이 진노를 쏫으실 것이니

하느님을 대항하는 이런 교만함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17 절

사람이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착한 일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죄가 됩니다.

 

*사람이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착한 일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에이토이 운 칼론 포이에인 카이 메 포이운티)

하느님 앞에서의 교만함을 버리지 못하고,

교우로써 반듯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하느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이며 그의 신앙 생활은 헛된 믿음 이라는

결론을 야고보는 말 하려고 합니다.

 

하느님의 섭리를 내 인생에서 배제를 하고

내 욕망대로 세우는 계획은

하느님을 믿는 교우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신앙 생활은 삶의 한 악세사리 이고

내 이익을 위한 방편이고

거짖을 진실로 포장된 믿음은 외형적인 가식으로 표시만 되고

여차하면 내 이익을 위해 하느님을 버릴 수 있는 이기적인 신앙은

믿음이 아니고 신앙생활 하는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난한자, 고아, 과부, 등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내 이웃에게

말 로만 편안히 가라, 배 부르라, 따뜻이 입어라,

라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등등의 말만 한다면

그것이 어찌 주님을 사랑하는 교우라 할 수 있느냐 라는 것입니다.

 

에이도티 운,

그러한 내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외면과 배척은

하느님께 대항하는 마귀적인 것인데

 

그렇게 하고 있는 이러한 사람은 신앙인도 아니며

같은 형제 자매 나 교우도 아니고

하느님과 맞서는 마귀적인 행동 이기에 지극히 큰 죄 라는 것입니다.

 

하마르티아 아우토 에스틴,

반듯이 알고 있으면서도 고의적으로 하는 그 행위는

니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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