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레지오

2007년 2월호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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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마리애 [legio] 쪽지 캡슐

2007-01-31 ㅣ No.79

 

그리스도께서 제 안에서도 자라시게 해주소서


얼마 전 TV 뉴스를 통해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선서 모습을 보았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이 세계 정의와 평화를 위한 국제기구인 유엔의 최고 수장이 되었다는 것에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지금까지는 유엔 사무총장이 취임선서를 할 때 손도 들지 않고 유엔 헌장도 없이 취임선서문을 낭독했는데 반기문 신임 사무총장은 사무총장의 최대 임무가 헌장 준수이기 때문에 유엔 헌장에 손을 얹고 선서했다고 합니다.


우리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 역시 경건하고 자랑스러운 선서를 합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이 하는 선서는 하느님이신 성령께 자신을 봉헌하고 성모님께 온전히 의탁하여 이 세상에 사랑이신 예수님을 낳아드리는 또 하나의 성모 마리아가 되겠다는 엄숙한 선포입니다. 레지오 단원들은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 헌장에 손을 얹듯이 레지오 단기를 손에 쥐고 선서합니다. 레지오의 단기는 주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과 성모님께 대한 굳은 신뢰심을 나타내는 믿음의 깃발입니다. 레지오의 단기는 성모님께서 사랑으로 불타는 힘찬 믿음으로 이 세상의 모든 죄악과 싸워 이긴 승리의 깃발입니다. 레지오 단원들은 믿음의 깃발, 승리의 깃발을 손에 쥐고 하느님이신 성령께 선서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마리아의 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하신 생명의 하느님이십니다. 성령은 흙의 먼지로 만든 사람에게 숨을 불어넣으신 생명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죄악을 태워버리고 사랑으로 불타게 하시는 사랑의 하느님, 또한 성령은 어떠한 두려움과 시련 속에서도 용감하게 일어설 수 있게 하는 희망의 하느님이십니다.

마리아의 몸에서 생명을 잉태하게 하신 성령, 마리아의 마음에 사랑이 불타오르게 하신 성령, 그리고 마리아에게 어떠한 시련도 극복하게 하신 희망의 성령께서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시어 나 또한 성모님처럼 또 하나의 성령의 도구가 되게 해주시라고 간구합니다. 레지오 단원들은 자신이 성령의 도구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군사로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성령께 겸손하게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부족함을 성령께서 채워주시도록 간청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도구로서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께 완전히 하나되어 계시는 성모 마리아와 온전히 일치해야 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성령과 온전히 하나되어 계신 분이십니다. 성령과 완전히 하나되어 계시는 성모 마리아는 우리에게 성령의 은혜를 나누어 주는 은총의 분배자이십니다. 성령과 완전히 하나되어 계시는 성모 마리아는 우리를 성령께 안내하는 인도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과 온전히 하나된 마리아와 일치하여 충실히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서약합니다.


󰡒성령이시여, 당신은 저희에게 모든 재능과 성덕과 은총을 내려 주시나 …

당신께 완전히 하나 되어 계시는 성모 마리아와

온전히 일치하는 것임도 잘 알고 있나이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성령의 은혜로 원죄 없이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성령의 불 같은 사랑을 간직하신 분이십니다. 그리하여 성모 마리아께서는 이 세상에 사랑이신 예수님을 낳으신 분이십니다.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 마리아와 하나 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레지오 단원들은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 마리아처럼 이 세상에 사랑이신 예수님을 또다시 낳아드리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레지오 단원들은 성령의 은혜를 내려주시도록 또다시 이렇게 기도합니다.

󰡒거룩하신 성령이시여, 당신의 권능으로 저를 감싸주십시오. 사랑이신 성령이시여, 제 영혼 안에 사랑의 불을 놓아주십시오. 그리고 생명이신 성령이시여,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제 안에서도 자라시게 해주십시오.󰡓

_김양회․요한보스코 신부




성인들은 이 세상에서 이미 성인으로 사시어


그리스도 신앙인이라면 누구든지 세례 때 성인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부여받고 또한 매일같이 전례력에 따라 성인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인들의 장하고 고귀한 삶을 본받아 완덕(完德)의 길, 수덕(修德)의 길, 성화(聖化)의 길로 나아가고 있으며, 신앙의 길이란 바로 󰡐성인의 길󰡑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회를 마칠 때마다 󰡐한평생 싸움이 끝난 다음 저희 레지오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주님 사랑과 영광의 나라에 다시 모일 수 있도록󰡑 열망하며 간절한 기도를 바칩니다. 이 세상에서 투쟁교회(鬪爭敎會), 신전교회(神戰敎會)를 살며 하느님 나라를 향한 지상전투를 치르고 있는 우리들의 최종목표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는 누가 갈 수 있습니까. 반드시 성인(聖人)이라야 갑니다. 하느님은 만선(萬善)의 근원이시고 완전무결하신 분이기 때문에 성인이 되지 않고서는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룰 수 없으며 한 점의 허물이나 부족함이 있다면 반드시 정화(淨化, Purgatorium)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대체 성인이란 어떤 분들입니까. 성인들은 살아생전에 이미 성인으로 사셨습니까, 아니면 죽어서 성인이 되셨습니까. 그분들은 이 세상에서 이미 성인으로 사셨으며 성인다운 󰡐생각과 말과 행동󰡑을 보이셨고, 사후에 시복시성이 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후손된 우리들을 위해 표본이 되고 모범으로서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얼마나 은혜롭고 감사한 일입니까.

실로 성인이란 성덕(聖德)을 지닌 이들이며, 성덕은 두 가지 본질적 표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죄가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과 견고히 결합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신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죄 없는 생활󰡑이라야 합니다. 크리스천 생활이란 바로 은총생활을 가리키는 것이며 󰡐죄가 있는 곳에 하느님의 은총이 있을 수 없고 은총이 있는 곳에 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 없는 생활을 하기 위해 양심성찰을 하고 고해성사를 봅니다. 세례를 받고 은총생활을 지켜가고 키워가는 이는 하느님을 모시는 성전(聖殿)이며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앞당겨 산다고 할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과의 견고한 결합, 완전한 유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들 앞에 악마가 나타나고 원수가 나타나서 은총생활을 제대로 지켜가지 못하도록 아무리 방해하고 흔들지라도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교회생활을 하는 가운데 각종 신심단체와 사도직단체 활동을 하는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레지오 단원으로서 성모님을 사령관으로 모시며 출석의무에 충실하고 레지오 사도직 수행에 열과 성을 기울이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 누가 제아무리 사기를 치고 속임수를 쓰고 하느님과의 유대를 깨뜨리며 교회생활의 충실성을 방해한다고 할지라도 성모님 대전에 사랑받고 인정받는 모습으로 설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죄 없는 생활󰡑이고 더불어 하느님과의 관계를 굳건하게 하는 삶이며 스스로 성인이 되고자 하는 열망으로 우리들의 은총생활을 온전히 사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요 성모군 전사(聖母軍戰士)로서 평신도 사도직을 수행하는 가운데 성인의 길로 나아가는 우리들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과연 은혜롭고 소중하며 희망이 있습니까. 나의 발걸음은, 또한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까. 참으로 나는 이미 하느님 나라에 개선하신 성인들의 후예로서 그분들이 걸어가신 성화(聖化)의 길을 따라 차츰차츰 성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까.

무엇이 나로 하여금 세속(世俗)에 물들며 영신생활, 은총생활을 어렵고 힘들게 하는지 깊은 성찰(省察)에 잠겨봅니다. 천상영복을 누리고 계신 성모님과 성인성녀들의 도우심을 간절하고 겸손된 마음으로 청합니다.


티 없이 깨끗하신 마리아 모든 은총의 중재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으소서.

천상의 모든 성인성녀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으소서.

_최홍길․레오 신부



십자가의 희망


우리의 인생 속에서 알면서도 잘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뻔히 알고 있는 것이지만 생활 안에서 잘 지켜지지 않고 또 마음속에서는 그 길로 가야 함을 알기에 순간순간의 시간을 돌이켜 볼 때 갈등과 번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간적인 모습은 그런 갈등 속에서 영적인 갈증과 육적인 욕망이 충돌합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영적인 갈증에 허덕이고 세상의 삶에 휩쓸리게 되면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육적인 욕망에 휘둘립니다.

때로는 하느님을 따르는 길이 좋다고 생각하여 굳게 결심을 하고 열심히 노력을 합니다. 체계적으로 계획을 짜고 머리를 써서 자신의 신앙을 성숙시키고자 노력을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어느 순간 하느님의 사랑이 나에게서 멀어진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고 지금의 내 노력이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나의 노력이 물거품처럼 느껴지면서 나에게 다가오는 시련의 무게가 힘에 겨울 때가 있습니다. 점점 힘이 빠지고 아무런 희망조차 없는 듯한 허탈함에 빠져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때가 우리에게 󰡐십자가의 희망󰡑이라는 탈출구를 배우게 되는 시간입니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힘든 상황이야말로 우리가 십자가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인간적인 면에서는 피하고 싶고, 절대로 나에게는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상황이 나에게 다가올 때, 우리의 주님께서 가신 길이 바로 그런 길이었습니다.

막막하고 더 이상의 희망조차 생각할 수 없는 시간, 철저하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 십자가의 시간이 바로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주님은 절망적인 시간을 부활의 희망으로 바꾸신 분이십니다. 십자가의 절망과 좌절이야말로 하느님 아버지께 온전히 맡길 수밖에 없는 절실한 믿음이 꽃을 피우는 시간입니다.

그때야말로 우리는 진정한 겸손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때야말로 우리는 진정한 인내를 배울 수 있습니다.


 거룩한 십자가의 왕도(王道)(준주성범 2권 12장)

3. 보라, 모든 것이 십자가에 있고, 모든 것이 죽음에 있다. 거룩한 십자가의 길과 매일 극기하는 길밖에 생명을 주고 참다운 마음의 평화를 주는 길은 없다. 네 마음대로 어디든지 가보라. 그리고 또 무엇이든지 찾아보라. 십자가의 길보다 위로 더 고상하고 아래로 더 안전한 길이 또 없다. 네 뜻에 맞게 또 네 생각에 가장 적절히 모든 것을 정돈해 놓아도 좋든 싫든 괴로운 것이 있을 것이니 너는 언제나 십자가를 만나게 되리라. 네 몸이 괴롭든지 네 정신에 번민을 당하든지 할 것이다.


4. 때로는 하느님의 저버림을 느낄 것이고 때로는 네 이웃이 너를 괴롭힐 것이나 대개는 너 자신이 너를 못살게 굴 것이다. 너는 이런 고통을 면할 수 없고, 이런 고통을 경하게 할 방법도 없고, 무마할 길도 없다. 다만 하느님의 뜻이 그러한 때까지 너는 참아 견디어야 한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네가 위안 없이 고통을 받을 줄을 알고 너를 그에게 맡기고 고통을 당해서 좀 더 겸손해지는 법을 알게끔 배정하심이다. 자신이 고통을 받아보아야 그리스도의 수난을 참으로 마음 깊이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는 언제든지 놓여있고, 어디서나 너를 기다리고 있다. 네가 어디로 달아나도 십자가를 피하지 못하게 되니, 그것은 네가 어디를 가도 네 자신을 지고 다니고 언제나 네 자신을 피치 못하기 때문이다. 네가 위로 올라가보고 아래로 내려가보라. 안으로 들어가보고 밖으로 나가보라. 어디서나 십자가는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네가 마음에 평화를 도모하고 영원한 월계관을 얻으려면, 어디서나 필연적으로 참아나가야 한다.

_윤병길․세례자 요한 신부



에델 퀸의 영적 생활의 비밀


2007년에 우리는 가경자 에델 퀸의 탄생 백주년을 축하하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레지오 마리애와 보편적인 교회, 그리고 근대 세상을 위한 그분 생활의 중대한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될 것입니다. 레지오가 그분에게는 하느님의 크나큰 선물이었습니다. 그분은 첫 번째 쁘레시디움 주회를 마치고 나서 󰡐첫눈에 반한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오랫동안 자신의 소명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그녀의 간절한 소망인 관상수도회의 수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혼생활을 하겠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우연한 기회에, 물론 레지오에서 우연이란 있을 수 없고 모두 하느님의 신비한 섭리지만, 그녀는 새로이 사귀게 된 친구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였습니다. 그런데 모나 티에니라는 친구가 초대한 그날이 레지오 마리애 주회 날이라 가지 못하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에델 퀸은 󰡒레지오가 뭐냐?󰡓고 물었고, 한번 와서 보는 게 어떻겠냐면서 대화를 마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분의 영적이고 사도적인 생활 위대한 여정의 첫발을 내딛는 전기가 되었습니다. 에델 퀸은 여기서 인생에서 간절히 소망하였던 것을 찾게 되었습니다.

프랭크 더프는 새로운 레지오 단원을 위한 교본에서 󰡐레지오에 가입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고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모든 레지오 단원들은 에델 퀸이 레지오에 가입한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에델 퀸에게 레지오야말로 하느님의 귀중한 선물이었음을 확신합니다. 프랭크 더프나 레지오를 위해 큰일을 하신 많은 다른 분들처럼 에델 퀸의 영적 생활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영적 생활이 레지오 전체에 골고루 미치는 것을 볼 때 그것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레지오의 정신, 특히 교본에 쓰인 정신을 안다는 것은 바로 그분의 영적인 부분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훈화를 할 때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지 않습니다만 이번에는 한 가지 숙제를 내겠습니다. 제가 그분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쓰신 일기에서 중요한 한 구절을 읽어보겠는데, 교본에서 여러분이 같은 내용의 글을 얼마나 찾을 수 있는지 시도해 보십시오. 이 글을 잘 읽어보면 그분의 영적 생활의 비밀을 알게 되고 또한 여러분의 영적 생활에 새로운 힘을 북돋아주는 안내자가 될 것입니다.

 그분은 돌아가시기 전 예수님 수난의 성 목요일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성모님은 오늘 하루 온종일 내 안에서 예수님의 모든 상처들을 쓰다듬으시고, 측은히 여기면서 사랑해주셨습니다. 성모님은, 주님께는 성체 마련해주심을, 영원한 생명의 아버지께는 이러한 선물을 마련해주신 데 대하여 감사를 드렸습니다. 만약에 성체가 없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이 선물에 대하여 삼위일체께 아무리 거듭해서 감사를 드린다고 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께서 성체 안에 머무르시도록 해야겠습니다. 제자들도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묻고, 바로 그날 하루종일 주님과 함께 머물렀습니다.

비록 우리가 그분의 현존하심에 감사하며 그에 걸맞게 행동하는 데는 너무 부족하고 세상적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그곳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감사와 사랑과 공경 안에서 성모님을 통해 삼위일체께 그분을 드러내십시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온전히 그분께 바쳐 주님과 하나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성체 안에 계심을 믿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 어디엔가 주님이 계시다는 것을 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곳에 가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체대에서 매 순간마다 그분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하는 신비는 세상의 모든 책을 다 본다고 하여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에델 퀸이 쓴 것과 우리가 교본에서 찾은 것이 똑같은 단어와 문장의 표현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녀가 지니고 있는 성체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보면서 그분의 영적 생활의 비밀 중 중요한 한 가지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체에 대한 그러한 사랑을 우리 모든 레지오 단원들이 영적 생활에서 지녀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지난 한 세기 동안 하느님이 에델 퀸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선물에 감사하며 그분의 영적 삶의 다른 비밀도 더 밝혀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_맥그리거 신부 / 강용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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