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2동성당 게시판

작은 실수 큰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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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영 [chogloria] 쪽지 캡슐

2004-03-07 ㅣ No.3045

  

  어제 (3월 6일) 토요일이지만 늦게 퇴근하여, 눈이 내린 가운데 바람까지 세게 불어 쌀쌀한 영하의 기온이 더욱 춥게 느껴지던 저녁 무렵 집에 들어서니 시큼한 김치볶음 냄새와 생선튀기는 냄새가 온 집안에 차 있었다.  환풍기라도 틀라고 하니 아내(글로리아)는 주방 창문을 열었다. 한켠에서는 딸아이가 성당 간다고 옷을 챙겨 입고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 막 코트를 벗으려는 순간 현관문이 크게 닫히는 소리와 함께 “아이구”하는 글로리아의 놀란 비명 소리가 들렸다.

“왜 그래” 하며 내다보니 글로리아는 깜짝 놀란 표정에 성모님상과 고상이 창문 밖으로 떨어졌다는 것이 아닌가. 성당 가는 딸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맞바람이 치면서 열린 창문 바로 앞에 있던 성모님상과 고상이 넘어지면서 밖으로 떨어진 것이다. 사기로 만들어진 성모님상은 딸아이가 선물 받은 것이고, 동으로 만들어진 고상은 아들이 영세 받을 때 선물 받은 것으로 이사 오면서부터 싱크대 앞 창틀 위에 모셔 두고 글로리아가 설거지 하면서도 화살기도 드리면서 항상 마주 보았던 성모님과 예수님이 아니었던가.

 

  나는 벗으려던 코트를 다시 입고 밖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0층을 내려오는 시간이 다른 때 보다 무척이나 길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아파트 화단을 돌아 뒤편으로 갔다. 우선 아파트 밑으로 가서 위를 쳐다보고 대략 낙하 위치를 짐작하여 찾기 시작 했다. 3월 눈으로는 많이 내려 쌓여있는 눈 위가 조금 녹았다 얼어 있어 방금 떨어진 것이라면 표가 날것으로 보고 몸을 구부려 찬찬히 떨어진 흔적을 찾았다. 혹시나 눈 속에 있는 성모상이나 고상을 밟지나 않을까 염려되어 조심조심 눈 위를 주시했으나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분명 있을 터인데... 깨어진 조각이라도. 그사이 어둠이 덮이면서 눈 자국을 구별하기가 더욱 힘들어 졌다.

 

  다시 한번 처음부터 찾기로 하고 머리를 숙여 살피는데 아파트 벽과 지면사이의 흙 위에서 고상을 발견했다. 고상이 갈색 계통이라 벽 바로 옆 흙 위에 있는 고상이 쉽게 눈에 띠지 않은 것이다. 들어보니 온전한 상태였다. “주님 정말 죄송합니다. 무사하셔서 감사합니다.”하는 말을 되 뇌이며 두손으로 꼭 안고 성모상을 찾았으나 이제는 더 이상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과 추위로 무거운 마음을 억누르면서 집으로 들어왔다.

글로리아가 근심어린 소리를 한다.  어디서는 성모님상을 깨뜨려 좋지 아니한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서 내일은 자기가 찾겠다고 한다.

 

  일요일 아침 집사람은 바쁘게 성당 갈 준비를 마치고 나갔다.  나는 일요일인 오늘도 일어 있어 나가기 위해 준비를 하다 차나 한잔 하고 가겠다는 생각에 컵을 찾다가 씽크대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작은 그릇이 바닥에 떨어졌다. 급작스레 문을 열어서 그런지 대충 올려놓은 그릇이 떨어진 것이다.  떨어진 그릇은 두 조각이 났다. 단단한 물체 일수록 인장강도 이상의 충격이 가해지면 깨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물리법칙이다. 그 순간 어제 성모님상 못 찾은 것이 퍼뜩 생각나 깨진 그릇을 치우고 옷을 두껍게 챙겨 입고 아파트 뒤편으로 갔다. 오늘도 무척이나 추운데 그곳은 하루 종일 해가 안 드는 아파트의 북극이었다.

 

  조심스레 다시 찾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어제 이미 밟은 발자국만 밟고 고상 찾은 위치에서 차근차근 눈 흔적을 응시해나갔다. 그런데 없는 것이다. 그러면 바람에 밀려 약간 이동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범위를 넓혀 나갔다. 잠시 후 고상을 찾은 곳으로부터 몇m 정도 밖에 눈 속에 약간 묻혀 있는 성모님상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성모님은 아주 편안히 누워계셨다. 아 이제 찾았다. 얼른 들어올렸다. 그런데 형체가 온전했다. 묻은 눈을 닦고 자세히 살펴보아도 조금도 손상이 되지 않았다. 이럴 수가... 이것은 정말 기적이었다. 나도 모르게 “성모님 감사 합니다”하는 말과 함께 성모님상을 입에 대고 가슴에 안았다. 그 순간 정말 나는 무어라 할 수 없는 경이와 감격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 이런 불가사의한 일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일까. 20층 아파트라면 그 높이는 무려  50여m 에 이르는데 상상할 수도 없는, 굳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하는 과학적 판단은 차치하고라도 그것은 분명 나에게는 기적 그 자체였다. 벅찬 감동으로 원래의 자리에 모셔놓고 성모님상 뒤 창문은 다시는 그런 실수가 없도록 나사로 고정을 시켰다.

 

  글로리아도 성당에 가서 성모님상 생각에 미사 내내 마음이 언짢았다고 한다.  미사를 마치고 아파트에 도착하여 집에도 들리기 전 성모님상이 떨어져 있을 법한 곳을 샅샅이 뒤졌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깨어진 성모님상이라면 자기에게 보여주지 말 것을 기도하면서도 나중에 그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한참을 찾아 헤매다 침울한 기분으로 그냥 집으로 들어왔다. 작은 실수가 이렇게 마음 아프고, 너무나 죄송스럽기도 하고 무슨 나뿐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마음도 느끼면서 현관문을 들어서서 고상을 바라보았는데 거기에 성모님상이 함께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자기의 눈을 의심하며 성모님상을 들어 살펴보고 기적이라는 놀람과 함께 “성모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고 한다.

 

  내가 오후 늦게 집에 들어와 본 아내의 얼굴은 일찍이 보지 못했던 가장 감동어린 행복한 얼굴이었다. 우리는 성모님께 놀라운 기적을 가까이에서도 볼 수 있는 기쁨을 주심에 감사를 드렸다.  

“성모님 감사합니다. 이런 큰 기적을 보여주심에...”

 

  허 필립보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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