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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성당에 나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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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식 [bornfree] 쪽지 캡슐

2012-02-06 ㅣ No.7532

 

                     내가 왜 성당에 나가는가?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저는 제가 행복하기 위해섭니다.
2천5백 년 전 공자, 노자, 엘리야, 시절에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행복에 다섯 가지를 설파했습니다.  

 1.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2.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

 3. 자신이 자만하고 있는 것에서 사람들이 절반 정도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

 4. 겨루어서 한 사람에게 이기고 두 사람에게 질 정도의 체력.

 5. 연설을 듣고서 청중의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말솜씨. 

 플라톤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들은 완벽하고 만족할 만한 상태가 아닙니다.
조금은 부족하고 모자란 상태입니다. 재산이든 외모든 명예든 모자람이 없는 완벽한 상태에 있으면 바로 그것 때문에 근심과 불안과 긴장과 불행이 교차하는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적당히 모자란 가운데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나날의 삶 속에 행복이 있다고 플라톤은 생각했습니다. 

 저는 거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탠다면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구요?
 예수님! 일단 멋있지 않아요.

 예수님 자체가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다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당연이 멋있다는 말 가지고는 가당치도 않지요. 하지만 저는 신성은 차치하고 인간 냄새가 제일 좋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오셨음에도 낮은 자세로 세례를 받으시어 겸손의 미덕을 우리에게 모범으로 보이시고,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에게 해주는 것이 비로 나에게 해주는 것이라는 말씀 하나하나는 물론, 군중들로부터 창녀를 구출하시는 지혜는 또 얼마나 근사합니까.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요. 베드로는‘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신앙고백으로 예수님을 드러내셨는데 저는 불손하게도 예수님은 나의 친구이자 나의 가장 가까운 멘토라는 생각을 합니다. 얼마 전 성경공부 묵상시간 중에 내게 예수님을 증거 할 기회가 온다면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겠다는 만용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 만용으로 저는 가끔 심한 마음의 갈등을 겪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런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될까? 그에 대한 제 대답은 항상, 넌 틀림없이 배교하고 말 걸!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미약한 믿음에 괴롭기까지 하다가, 지난해 대림특강 때였습니다. 강사로 오신 수녀님께서‘피의 순교’만이 순교가 아니고 지금은‘일상의 순교’가 필요한 시대라는 말씀에 악몽에서 깨어난 듯한 해방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상의 순교!

 이 또한 저에게는 버거운 일입니다. 저로서는 감히‘순교’라는 말을 들먹일 자격도 없습니다. 하지만 다가가려는 노력은 해 볼만하다는 기특한 생각을 해봅니다. 하다 못한다고 해서, 안한다고 해서 누가 고소고발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일도 아니구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교우들도 그런 마음 한 구석 쯤 간직하리라 봅니다. 해서 조그만 것에서부터 나누며 봉사일선에 즐겁게 참여하는 게 아닐까요?

 연말이 되면 성당의 크고 작은 공동체의 장들이 새로 임명되거나 선임되어 교우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봉사를 기꺼이 수행합니다. 헌데 가장 기본이 되는 구역 소공동체에서는 많은 구역들이 인물난을 겪고 있습니다. 구역장, 총무, 반장을 서로 맡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유는 자명합니다. 열심히 노력해도 빛도 안 나고 욕이나 먹지 않으면 다행인데다 어느 정도 경제력이 뒷받침 돼야 구역활동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게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조용히 미사에 잘 참여해 은총이나 받으면 되지 뭘 구역에까지 신경을 쓰느냐는 이기심도 작용하구요.

 봉사로 인해 하느님이 갑자기 부자가 되게 하거나 병을 고쳐 주거나, 무슨 신비한 체험을 하게 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봉사를 통하여 이웃과 더불어 사는 기쁨을 맛보고 겸손을 배우며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고 봉사 자체가 기쁨일 때도 많습니다. 또 봉사를 통하여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도 기르게 됩니다.사도 바오로는, 내가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그것이 자랑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신자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그런 사도 바오로의 자세로, 교우라면 누구나 구역을 위해 한 번씩은 봉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 사람이 6,7년이나 내리 구역장 반장을 한다는 건 정말 개선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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