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성모신심미사 12 누가 내 어머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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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18-07-21 ㅣ No.3600

성모신심미사 12 누가 내 어머니냐

'18. 7. 21(토)

 

 

 

말씀  아들 예수에 대한 소문(마르 3,30-35)

3 30사람들이그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31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4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내 어머니

뒤돌아보면, 저를 걱정해주시는 어머니의 염려를 귀찮아하며 불평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입을 것, 먹을 것을 비롯하여, 제 생활의 거의 전부를 챙겨주시고 보듬어주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정성과 애정의 덕으로 살아가면서도, 분에 넘쳐서 부담스러워했던 기억이 송구스럽고 죄스럽기만 합니다. 감사하고 고마운 줄은 알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선 내 마음도 알아주셨으면 했나 봅니다.

 

 

 

우리 어머니

예수님의 일행은,

군중이 모여들어 음식을 들 수조차 없”(마르 3,20)을 정도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환우들을 치료하기에 바빴습니다. 이를 시기하고 질투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한편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그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마르 3,22)

사람들이 이렇게 예수를 가리켜

그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마르 3,30)

고 하자,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마르 3,21)

고 전합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예수가 사람들에게서 오해와 비난을 받자, 어서 빨리 쫓아가서 집으로 데려가고만 싶었는지 모릅니다.

허겁지겁 아들 예수를 찾아 온 어머니 마리아가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예수에게 전갈을 보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전했습니다,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마르 3,32)

 

이게 아닌데

다른 사람이 다 자신을 못 믿고 미워해도 부모님만은 자신을 이해해 주고 자신의 편을 들어주시리라고 믿었던 자식들은 실제로 그렇지 않은 반응을 내보이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내심 섭섭해 합니다. 마리아의 아들 예수도 반발합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마르 3,33)

 

카인이 동생을 죽이고 나서, 하느님께서 동생의 안부를 묻자 반발하며 외쳤던 볼멘소리가 갑자기 떠오릅니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창세 4,9)

 

아들 예수의 외침과 카인의 외침은 둘 다 부정과 반발의 표현입니다. 어쩌면 답답하고 씁쓸하지만 마주쳐야만 하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몸부림. 차이가 있다면, 예수님의 외침은 안타까움과 섭섭함의 표시였을 것이고, 카인의 외침은 자기 죄를 감추고 합리화하기 위한 표시였을 것입니다.

 

두 경우 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사람들의 반향에 대한 대응이었고, 가족과 정겨웠던 인간관계를 떼 내어야만 하는 아픔을 동반한 것이었습니다. 예수에게는 그동안 믿고 의지해왔던 가족을 떠나 새로운 가족을 만나고 형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카인은 가족과 형제들을 떠나야만 하는 추방의 처지가 되었습니다.

 

몰이해

예수의 기준은 아버지의 뜻입니다. 어머니와 친척 형제들에게는 오만불손한 배반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수 있었을 텐데 그에 굴하지 않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4-35)

예수님께서 굳이 버리지 않아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지 않는 이들이 떠나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떠난 또 다른 이들이 생각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장에서 하늘나라의 신비를 자신과생명의 빵에 비유하시면서 이야기 하셨을 때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27.33.35.40)

 

그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말씀대로 따라 살지 못할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66)

 

그 순간 당대의 지식과 경험과 상식에 어긋나며, 마치 저버리기라도 하는 듯한 예수님의 기준과 행동 때문에 몇몇은 이의를 제기하고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67)

하고 물으실 때의, 베드로처럼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68-69)

라고 답하며, 계속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주님의 뒤를 따를 이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준

마리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예수 아기를 낳은 후 여러 번 박해의 위기를 겪었던 때와는 또 다르게, 이번에는 정작 아들 예수에게서 괄시와 버림을 받았다고 느껴졌을 때의 기분이 어떠셨을까?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라는 시메온의 예언을 기억하게 됩니다.

 

가끔 눈에 보이고, 귀로 들리고, 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맛보며, 피부로 느끼는 우리의 감각이 정확치 않고 확실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오감으로 전달되어 내 안에 흡수된 정보가 내 가슴과 머리와 마음의 기관 안에서 인식하는 것과는 또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여러 사람들이 원하는 공통의 마음이라고 여기는 것, 상식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른 사고, 다른 말, 다른 행동을 할 때, 그것을 이해하거나 따르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결정을 내리면, 뭇사람들의 갖은 비난과 손가락질이 뒤따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그런 비난과 손가락질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기우들을 뒤로 하고, 다른 행동을 취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공통의 사유와 문화, 그 너머의 또 다른 의미를 지닌 무엇을 지향하고 염두에 두었을 때 나타나는 제 삼의 행위가 있다고나 할까! 예수님 사고와 행동의 결정 기준은 인간 사회의 상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선택은하느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이 순간에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은 무엇일까?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 순간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아버지의 뜻

예수님께서는 어쩌면 천륜과 인륜을 저버린다는 비난이라도 받을 수 있는 말을 던지십니다.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4-35)

그러시면서 예수님께서는 혈육의 어머니와 친척 형제자매들 대신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을 새로운 가족으로 선택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찍이 흔히 사회에서 평가하고 말하는좋지 않은 혈통에서 난 사람들좋은 혈통에서 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통념을 불식시키기라도 하듯이 말씀하신바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 군중 속에서 한 여자가 큰소리로당신을 낳아서 젖을 먹인 여인은 얼마나 행복합니까!’”(루카 11,27)

 

그 어머니의 아들이 되지 못한 이들의 처지는 자신들의 선택도 자신들의 탓도 아닙니다. 주어진 출생 관계를 아쉬워하고 섭섭해 하며 부정하고 싶기까지 한 이들을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이실까? 예수님께서는 가문이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남녀 성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우리 인간들을 위로라도 하시려는 듯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28)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네가 누구냐?’가 아니고, ‘어떻게 사느냐?’를 물으십니다. 누가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근거를 두고 있는 어느 가문의 누구에게서 났느냐 여부가 아니라, 누구든지 그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느냐 여부를 이야기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각자의 신분에 따라 차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원의를 가지고 실제로 하느님 말씀을 실현하는 열정을 가진 모든 이에게 희망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주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으로 이룰 수 있도록 함께하십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주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시어 이룰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이제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주실 성령 곧 그 협조자는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주실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모두 되새기게 하여주실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여 너희에게 보낼 협조자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분이 나를 증언할 것이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주실 것이다. 그분은 자기 생각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들은 대로 일러주실 것이며 앞으로 다가올 일들도 알려주실 것이다.”(요한 14,16; 15,26; 16,13)

 

마침내 우리를 통해 주님께서 몸소 이루어 내심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너희가 내게서 평화를 얻게 하려고 이 말을 한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기도

신분과 성별의 차별 없이 우리 모두를 주님의 가족으로 받아 주신 주님, 찬미와 영광을 받으소서. 아멘.’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현함으로써 하느님 나라에 들어올 수 있도록 초대해 주신 주님, 찬미와 영광을 받으소서. 아멘.’

 

주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문을 활짝 열어주신 주님, 찬미와 영광을 받으소서. 아멘.’

 

주님의 뜻을 찾고 이루려는 저희를 지지해 주시는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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