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강론]내가 나를 유혹합니다(사순제1주일)

인쇄

박성칠 [mpark] 쪽지 캡슐

2004-03-04 ㅣ No.4274

사순 제 1 주일                                                           2004. 2. 29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2월 19일에 교구 정기 인사 발령이 있었습니다.

이번 봄철 사제 인사에 유독 눈길이 머무는 대목이 있습니다.

결코 짧지 않은 20년 가까운 시간을 사제로 살아오신 두 분 신부님이 면직 처리되었습니다.

 

면직이란 더 이상 사제직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사제로 살던 분이 옷을 벗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두 분 중 한 분은 우리 중계동 성당에서 주임 신부를 역임했던 분입니다.

그래서 신자 입장에서, 그리고 같은 동료 입장에서 아주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 신부님이 왜 면직 처리 되었는 지 그 깊은 속사정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20년 가까이 사제로 살아왔던 사람이 옷을 벗을 정도로 세상의 유혹은 강하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참으로 온갖 유혹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끊임 없이 이런 저런 끈끈한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

그것이 우리 모두의 이름이요, 우리 모두의 운명입니다.

 

성서는 첫머리에서부터 유혹 이야기를 싣고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이브가 지음 받자마자 유혹자가 등장합니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역사는 또한 유혹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첫 사람 아담과 이브는 유혹자의 그럴듯한 말에 넘어가고 맙니다.

유혹은 항상 그럴듯한 모습으로 접근해 오는 것입니다.  

성서는 유혹에 떨어져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죄의 결과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유혹이 얼마나 강했으면 주님께서도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세례의 성령을 받자마자 유혹이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성령을 가득히 받고 돌아오신 뒤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가셔서 사십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하느님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다짐을 하자마자 유혹은 이미 시작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느님의 아들, 딸로 거듭 태어나는 세례와 함께

진정한 유혹은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견진과 함께 그 유혹은 더 강하게 작용합니다.

사제 서품과 함께 유혹은 더 무섭게, 더 매섭게 기승을 부립니다.

사탄의 제자들이 득실득실한 곳이 그래서 사제관이라는 우스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유혹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유혹은 수시로 찾아오고 호시탐탐 우리를 쓰러뜨리려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악마는 이렇게 여러 가지로 유혹해 본 끝에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예수를 떠나갔습니다."

 

우리들이 유혹 받고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도대체 어디 계신 걸까요?

아담과 이브가 유혹 받을 때, 예수님께서 유혹 받으실 때 하느님은 어디 계셨을까요?

우리들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매번 도와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자유 의지에 관한 한 아주 무능력하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유혹에 빠지는 우리들을 뒤에서 안타깝게 쳐다보실 뿐입니다.

유혹을 찾아가는 우리를 보며 뒤에서 안타깝게 한숨을 내쉴 뿐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들 뒤에 계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죄에서 돌아올 때는 아무 말 없이 사랑으로 안아주시는 분이십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건을 보면 그것을 갖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는 말이겠습니다.

견전생심, 돈을 보니 마음이 일어납니다.

견여자생심, 여자를 보니 마음이 일어납니다.

견권력생심, 권력이 눈 앞에 보이니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유혹이 도처에 깔려있으니 유혹에 빠지고 유혹을 찾아갈 마음이 생깁니다.

 

세상에 유혹 거리가 많다고 해서 우리들이 그 모든 유혹 다 없애버릴 순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잘 다스릴 수만 있다면 유혹에 빠져드는 기회를 줄일 수는 있겠습니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말은 성서적 의미에서 하느님을 선택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보여주신 자세가 바로 이것일 것입니다.

 

작고하신 동화작가 정채봉 선생님은 유혹에 관한 문제는 마음의 문제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선생님은 그래서 이런 글을 남기셨습니다.

 

나는 바깥의 유혹보다 내 안의 유혹이 더 무섭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10대 때는 유혹이 눈에 몰려 있는 듯했습니다.

보는 것, 그것에 대한 탐이 어느 때보다도 강했던 것입니다.

20대에 들어서는 유혹이 귀에 쏠리는 듯했습니다.

귀가 유난히 밝은 것 같았고 들리는 것마다에 호기심과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것이 30대에 들어서는 혀에 곤혹을 느꼈습니다.

입만 열면 교만과 모함이 쏟아져 나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40대에 이른 지금에야 나는 비로소

남이 나를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유혹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내 스스로가 그런 빌미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나태의 유혹을, 관습의 유혹을, 그리하여 핑계만 있으면

고통스러운 영혼의 의지를 떼어버리고

몸이 편하자는 대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대 뒷모습 중 나를 유혹하는 것은).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여 세상의 유혹에 승리하는 사순절 되시기를 바랍니다.

 



294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