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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신자들을 생각하면서(사목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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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zellot] 쪽지 캡슐

2001-02-19 ㅣ No.146

다들 세상 출세와

먹고 살겠다는 길을

하나씩 허물을 벗듯 떠나 가 버린

빈 들녁에 서서

우리끼리 비로서 조금은 서글퍼하고

조금은 여유를 가지면서

잔 속에 눈물처럼 술을 부으며

축배를 들고 싶지만

아직은 꼬리가 짤리는 끝이 아니라

반 반으로 남은 시간

늘 새로운 시작이었네.

 

혹 내 이름으로 하는

사랑과 한이

깨어진 사금파리로

가슴을 찌를지라도

나는 지금쯤 보따리 하나 챙기고

바람으로 바람으로 굴러

저 광야로 달리고 싶다.

 

진작 나는 죽어도 좋았고

너는 살아만 있어 더욱 반갑다.

나는 죽어도

너를 살리라는 간절함으로

 

언제나 이대로 홑으로 살 수 밖에

세월은 깃발만 찢지 않고

가슴도 찢었네

가락은 북만 찢지 않고 육신을 뭉그러지게 하였네

사람이 사람의 흉내 내기란

원숭이 한테 욕이면 욕이 될까.

 

우리는 목 마른

들판을 적시는 강물로 가서

노아 할아버지의 방주를 띄워 볼까 한다.

어차피 산 꼭대기까지 물이 차지 아니 하면

출렁이는 낙동강에라도 가야지

그러나 허망된 일이다.

그 배 속에는

평화를 물고 올

산비둘기 한 마리도 없다.

기껏 나는

고목에나 걸려있는 연줄

그 방위를 몰라 떠 날 줄 모르고

높은 공중에서 겁 없이 표류하고 있다.

 

반만 죽어도

반은 살아 있어

사람들은 나를 보고 웃고 있다.

모두들 신기한 듯 나를 뒤돌아 보고 간다.

네가 죽어도 따라 죽지 못하고

나만 아직 살아 숨 쉬는 것은

저 세월의 속살을 다 파 먹고

가랑 잎 가에

교활한 번데기 집을 지어 놓고

입술을 열어 줄 계절을 기다리며

거품으로 차 오르는 욕망을 먹고 산다.

 

거창한 인생을 말하고

꼼꼼한 철학을 배우는 동안

머리는 텅 비고 가슴은 차가운데

어느덧 황량한 영혼의 성곽에 앉아

남은 빛 살을 줏어 모운다.

양팔 쳐 들고

내 하느님께 기도하는 사제는

무당 춤의 율동으로 에덴의 문을 두드린다.

아직도 제 영혼 반쪽도 건지지 못하고

천하의 등신은 종신의 벌을 받고 있다.

 

................................

 

그런데 갑자기 나는 종강을 알리는 저 종소리가 듣고 싶다.

그것은 끝과 시작의 감동이었네.

 

 

  다음 주 수요일이면 사순절이 시작되는군요.  이 때가 되면 신자들은 나름대로의 사순절을 준비하며 긴 재계와 보속의 기간을 보낼 것을 다짐해 봅니다.  문득 충실함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충실함이란 항상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날이 가고 해가 가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 궁핍한 변명을 늘어 놓으며 숨거나 냉담하거나 도피하지 않는 것, 갈망하는 사랑을 받지 못할 때나, 받을 만한 존경을 받지 못할 때도, 또한 원하는 대로 실현이 되지 않았을 때조차도,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예전에 청소년 사목을 담당했을 때, 한창 복잡한 문제와 씨름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불쑥 찾아와 양을 그려달라던 어린 왕자들의 눈들을 떠올려 봅니다.  이제는 저희 본당에서도 막무가네로 양을 그려달라며 떼를 쓸 어린 왕자들이 그립군요.

 

 

  고된 주일미사를 마친 다음날 모처럼의 한가한 휴일에 본당 신자들을 생각하며 주임 신부가 글을 올려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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