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레지오

2006년 5월호 [특집]

인쇄

레지오마리애 [legio] 쪽지 캡슐

2006-04-19 ㅣ No.52

가정의 소중함

 

 

제가 좋아하는 한자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ꡒ恕ꡓ. ꡐ같을 如ꡑ자에 ꡐ마음心ꡑ자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다 아시겠지만 ꡐ용서할 서(恕)ꡑ입니다. 같은 마음이 되면 모든 것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같은 마음이 되는  것, 상대방의 마음이 되어주는 삶을 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특히 제일 가까운 이웃인 부부 관계 및 가족간에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요.


어느 피정에서, 수사님께서 부화장에서 깨어난 암탉과 농가의 암탉 구별법을 알고 있는지 질문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수사님께서는 닭에게 달걀을 품게 해보면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화장에서 깨어난 암탉은 달걀을 품긴 하는데 절대 병아리를 탄생시키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온종일 달걀을 품으며 때때로 발로 굴려주어야 하는데 부화장 닭은 달걀 시절에 그렇게 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여 달걀이 골게 만든다고 합니다. 반면 농가의 어미닭의 품속에서 깨어난 암탉은 사랑을 받고 깨어나 자라다보니 자기 새끼에게 그 사랑을 전하는 방법을 달걀 시절부터 병아리를 거쳐 어미닭이 될 때까지 배워 자신도 그렇게 달걀을 병아리로 부화시키고 돌보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가슴 깊이 느껴지는 바가 있었습니다. 미물인 닭도 달걀일 때의 환경과 병아리 시절의 환경에 따라 생애가 달라지는데, 하물며 사람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얼마 전, 서울구치소에 상담을 다니는 저의 안사람 조 데레사(순희)의 부탁으로 의왕의 서울구치소에 차량봉사를 가서 최고수(사형수) 형제들과 면담을 하고, 복음을 나누면서 그들 대부분이 결손가정 또는 시설에서 자란 형제들이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세상의 신자들보다 오히려 더 솔직하고 열린 마음으로 복음나누기에 임하는 것을 보고 감탄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아마도 사랑이 넘치는 따뜻한 가정이 너무나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도 구치소가 아닌 넓은 세상에서 복음나눔을 행할 수 있었겠지요.

그날 저녁 조 데레사와 저는 TV뉴스를 보고 있다가 미국 가정에 입양되어 성공한 30대 초반의 형제가 한국으로 와 친부모를 찾는다는 보도를 접하였습니다. 매년 2,000명 이상의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된다는 보도를 보면서 어떻게 저런 부끄럽고 슬픈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저희 부부는 아이들이 중학교에 가면 딸아이 하나를 마음으로 낳아 예쁘게 키우자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습니다. 그러한 소망이 있어서인지 일찍이 그 기회가 저희들에게 찾아왔습니다. 아들들이 초등학교 3학년, 5학년일 때 여자아기가 저희 가정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들들과 상의하여 신중히 결정한 일이었습니다.

아이를 데려오던 날은 화창한 봄날이었고 담장의 넝쿨장미도 활짝 피어 아이를 반가이 맞아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속명 로사, 세례명 로사를 붙여주었습니다. 로사가 집에 온 이후로 우리 집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오빠들은 평소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기까지 두 시간 이상씩 걸렸었는데, 하교 후 시장도 친구네 집에도 들르지 않고 10여 분 만에 집으로 뛰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남자아이 둘만 있다가 여동생이 생기니 보고싶어서 땀을 흘리며 뛰어오는 것입니다. 오빠들은 여동생이 너무 신기하고 예뻤나 봅니다.

그렇게 가족들의 사랑을 받은 로사는 무럭무럭 잘 자랐습니다. 하지만 밤만 되면 잠투정이 심해 엄마가 업어주기를 몇 시간씩 해야 잠이 들고,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면 잠이 잘 들기도 해서 밤 늦게 드라이브를 가다가 사고가 난 적도 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신호대기 중 뒷차가 추돌한 사고였는데, 다행히 우리는 괜찮았지만 상대방 차는 폐차를 할 지경이었으니까요. 다시 한번 예수, 마리아, 요셉께 감사드립니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로사가 다섯 살이 되었고 동생을 많이 원했습니다. 그때 로사는 엄마를 따라 매일 미사에 참례하였고 거양성체 때는 성당 중앙통로에 나와 ꡒ예수님 사랑해요!ꡓ를 외쳤습니다. 중학생인 오빠들도 로사의 소원을 들어주자고 하여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베드로와 바오로를 맞아들였습니다. 두 아이가 집에 오던 날 로사는 너무 기뻐하며 엄마의 심부름도 척척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한가족이 된 베드로와 바오로는 로사와는 달리 아주 개구쟁이, 말썽꾸러기여서 집안의 벽지는 성한 곳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 쌍둥이가 세 살이던 어느 날, 주회합에 참석하려고 바삐 나가는 나를 따라 뛰어오다가 출입문에 부딪쳐 유리가 깨지며 그 유리파편이 팔과 다리에 박혀 수십 바늘을 꿰매는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도 무럭무럭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고 또 동생타령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데레사가 어느 분의 입양 알선을 위해 시설에 들렀는데 입양되지 못한 아이들이 너무 많으니 입양을 부탁한다는 말을 전했지만, 저는 분명히 거절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저도 불혹을 넘겼기에 과연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제대로 뒷바라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제외한 모든 가족의 간절한 소망 때문에 야고보와 요한을 맞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ꡐ아름ꡑ이와 ꡐ다운ꡑ이라 지어주며 아이들이 아름답게 자라서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이 예쁜 아이들을 보면서 저는 아직도 걱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잠시 걱정은 접어두고 아름이와 다운이가 누나와 형들이 하던 대로 ꡒ아빠, 사랑해요ꡓ라고 외칠 날을 기다립니다. 로사, 베드로, 바오로가 말을 시작할 때 제가 배꼽에 손가락을 대면 ꡒ아빠, 사랑해요ꡓ라고 하였지요.

로사, 아가페, 베드로, 바오로, 야고보, 요한이가 서로 이해하며 사랑하는 ꡐ용서의 삶ꡑ을 살 수 있도록 예수․마리아․요셉께 기도합니다.

_김복중 요셉(서울대교구 흑석동성당 하자없으신 모후 Cu. 단장)




745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