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여동본당 게시판

내가 잘 나서 잘 사는가?

인쇄

김용대 [yongdae_kim] 쪽지 캡슐

2012-07-19 ㅣ No.709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로 가셨다. 그리고 산에 오르시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그러자 많은 군중이 다리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다. 그들을 그분 발치에 데려다 놓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그리하여 말못하는 이들이 말을 하고, 불구자들이 온전해지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눈먼 이들이 보게 되자, 군중이 이를 보고 놀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광야에서 이렇게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시자, 그들이 “일곱 개가 있고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마태
15,29-37)

오늘 복음에서는 육체적인 배고픔뿐 만 아니라 영적인 배고픔도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항상 물질적인 것에 굶주려 있다. 실제로 춥고 배고픈 사람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의호식(好衣好食)을 하지 못하고 더 나은 주거환경을 갖지 못하고 굶주림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영적인 배고픔이 더 큰 문제이다. 깨달음을 얻어 고통에서 벗어나 기쁘게 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명한 의학자인 조나스 솔크(Jonas Salk, 1914-1995) 박사는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후 가장 먼저 자신과 아내와 세 아들에게 실험을 했다. 이를 두고 기자가 질문을 하자 “두려움 없이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이 용기를 주었습니다. 경험에 의한 확신이었습니다.”하고 답하였다. 그리고 “이 백신의 특허권은 누가 갖고 있습니까?”하는 기자의 질문에 “특허권은 없습니다. 태양에 특허권을 신청할 수 있습니까?”
또 백신 개발의 공로로 상을 받으면서 “어떤 성과에 대한 가장 값진 보상은 더 많은 일을 할 기회를 갖는 것이라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우리에게는 어떤 물건이든 소유권은 없고 사용권만 있다. 특히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탤런트와 은총이 그러하다. 자신의 소유인양 불끈 손에 쥐고 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고는 자신이 잘 나서 잘 사는 줄 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아낌없이 베푸신 것을 자신의 소유라 생각하면 어떤 방법으로든 뺏어 가시는 것을 많이 본다. 하느님께서 주실 때에는 ‘향유하다(enjoy)’가 되돌려 주시기를 바라신다. ‘향유한다는 것’은 ‘갖고 즐기는 것’이지 ‘영원히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홉킨스(Gerard Manley Hopkins) 신부가 <물총새가 불을 잡듯이 잠자리가 불꽃을 끌고 가고 있다(As kingfishers catch fire, dragonflies draw flame)>에서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다.” “의로운 사람만이 의로운 일을 할 수 있다.”고 노래했듯이 소유만 하려고 하지 말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의로운 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의롭다는 것은 ‘하느님을 본 받는 것’으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뿌리고,
상처를 받으면 용서하고,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고,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주고,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주고,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주고,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병든 자들을 고쳐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입을 것을 주고 잠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의로운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로움(righteousness)’을 ‘정의(正義)’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justice’를 ‘정의(正義)’로 번역한 일본어 영어 사전을 번역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캠브리지 사전에서는 ‘justice’를 ‘fairness in the way people are dealt with(공정성)’로 풀이하고 있다.
 
인간은 무지(無知)하여 정의를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정의’를 ‘중용(中庸)’에 가까운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중용’으로 해석하고 있다. ‘중용’은 ‘과(過), 불급(不及)이 없는 것으로 어느 쪽의 말도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성령(聖靈)’을 ‘중재자’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자신의 말이 맞는다고 우기는 것이 예사이기 때문이다.
중용’은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보는 것이다. 악인(惡人)과 착한 사람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다 같이 윈윈(win-win)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정의를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
<물총새가 불을 잡듯이 잠자리가 불꽃을 끌고 가고 있다
(As kingfishers catch fire, dragonflies draw flame)>
                 
물총새가 불을 잡듯이
잠자리가 불꽃을 끌고 가고 있다.
둥근 우물 안으로 돌들이 굴러 떨어져 소리지르듯이
숨겨진 현악기의 줄이 각기 다른 소리를 내듯이,
풍경(風磬)마다 소리가 다르듯이,
시위를 떠나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도 각기 다른 소리를 낸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 안도 모두 다르다. 
사람들은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다!’ 하고
각기 다른 개성을 갖고 제 나름의 소리를 낸다.
 
내가 더 하고 싶은 말은,
의로운 사람만이 의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체통을 지켜라.
의로운 사람들이 지켰던 체통을 지켜라.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께서 보시는 가운데 행동하신 것처럼 행동하라. 
수많은 곳에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보시는 가운데서
사랑스런 손발로 그리고 사랑스런 눈으로 행동하신 그리스도처럼 행동하라.
.........................
미국의 리처드 로어(Richard Rohr) 신부가 말했다. 여러분이 죄라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여러분의 죄 때문이며 여러분이 의로웠다고 생각한 것은 모두 자기 합리화 때문이었으며 여러분이 정의(正義)라고 생각한 것은 모두 복수심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22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