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통진당 해산심판, 失機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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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4-01-07 ㅣ No.10133

홍정기/논설위원

2014년 올 한 해, 밝아올 저 앞 나날들… 그 가운데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을 주요 결정 특보로 띄울 그날은 언제일까. 언제가 되든, 또 결론이 어떻게 기울든 헌법재판의 연대기에 깊이 새겨질 것이다. 이를테면 ‘헌법재판 2014년의 그날’로….

지난해 11월 5일, 헌재는 1988년 창설 이후 처음으로 정당해산 심판 청구서를 접수한 사실을 전하면서 사건번호 ‘2013헌다1’을 공지하기도 전에 먼저 접수 연월일시부터 밝혔었다 - “2013. 11. 5.(화) 11시 57분….”

그러고는 진작부터 차근차근 대비해왔다고 덧붙였다 - “정당해산과 관련한 연구는 오래전부터 이루어져왔고, 2004년 ‘정당해산심판제도에 관한 연구’ 자료집도 발간된 바 있음….” 10년여 전부터 꾸준히 연구해왔다는 말이다. 듣기 나름으로는 기다리기도 해왔다는 자신감이기도 했다. 헌재가 자부한 2004년 12월의 그 자료 ‘헌법재판연구 제15권’은 A4 294매의 만만찮은 노작(勞作)이다. 그 자신감, 그 두께에 미뤄 이번 사건의 대미(大尾)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으로 믿어 기대할 수 있을까…, 글쎄.

헌재법 제38조는 ‘180일 이내 심판’을 못박고 있다. ‘180일 이내에 종국결정의 선고를 하여야 한다’고 말끝 자른 그 문언(文言)을 두고 헌재는 7인 재판관의 다수 의견으로 “지침을 제시하는 훈시적 규정”(2009.7.30, 2007헌마732)이라고 말을 돌려왔다 - “헌법재판이 국가작용 및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 등의 중대성에 비추어볼 때, 180일의 심판기간은 개별 사건의 특수성 및 현실적인 제반 여건을 불문하고 모든 사건에 있어서 공정하고 적정한 헌법재판을 하는 데 충분한 기간이라고 볼 수 없다.”

하긴, 바로 그 헌법소원의 청구일이 2007년 7월 2일이었다. 왜 ‘180일의 법’ 지키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2009년 7월 30일 대답을 듣기까지 2년여, 그러니까 180일의 4배 넘게 걸렸더랬다. 무슨 말 더 필요하랴.

무서울 만큼 신속한 결정례도 있다. 180일 이내 결정하지 않을 경우 왜 법으로 고지하거나 검색할 수 있게 해 주지 않느냐는 입법부작위 위헌 확인 사건은 지난해 5월 14일 청구, 6월 11일 지정재판부 각하까지 딱 4주 걸렸(을 뿐이)다.

결국 헌재가 결심·결단·결행하기 나름이다. 매사 때가 있는 법,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중차대한 심판이다. 실기(失機)해선 안된다. 만사를 잠시 제쳐놓더라도 신속, 더 신속히 정리해야 한다.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의 한마디는 그대로 가편(加鞭)이다 - “심리기간 180일은 중요사건에 있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대한언론’ 특별기고·2013.12.1).

헌재는 지난달 24일에야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바쁠 것 없는 통진당이 답변서 제출 마감 시한인 지난달 5일을 그 마지막 하루 다 채운 뒤에도 헌재는 닷새를 더 지나 법무부와 통진당에 대해 12·24 첫 준비절차 기일을 통보했던 것이다. 11월 5일 접수에서 12월 24일 첫 준비기일까지 하루하루 헤아려 50일 걸렸다. 10년 전 대통령(노무현) 탄핵사건 당시 3월 12일 접수하고 엿새 후인 3월 18일 준비기일을 열었던 그 시절 헌재와 너무 다르다. 헌재법 제30조에 따라 정당해산 심판도 탄핵 심판처럼 구두변론에 의해 심리해야 하는데 여태 시작의 시작쯤이니….

2개월+2일 만인 5월 14일 끝낸 2004년 탄핵사건의 그 속도였다면 내일 7일이 해산 심판일일 것, 10년 시차의 헌재 그 완·급(緩急)이 헌법수호 의지의 밀도 차이는 아닐테고… 그것 참.

정당해산 심판과 형사 재판의 동시 진행으로 헌재도 퍽 난감하긴 할 것이다.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문재인 민주당 의원처럼 통진당 해산심판 청구 자체를 두고 “유·무죄가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밀어붙인 반민주적 폭거”(‘1219/끝이 시작이다’, 바다출판사·2013.12.10)라면서 무죄추정의 원칙을 들먹이는 사람이 한둘 아니다. 헌법재판과 형사재판의 패를 어지러이 섞는 그들을 위해 “정당해산 심판제도는 과거의 행위에 대해 형사상 책임을 묻는 제도가 아니라 위헌 정당에 의한 헌법질서 파괴 행위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예방적 성격의 제도”라는 법무부의 입장 그 적실성 여하를 칼처럼 가를 책임은 역시 헌재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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