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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탈렌트의 비유 (마태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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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7-11-19 ㅣ No.64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탈렌트의 비유 (마태 25,14-30)

 

김옥순 수녀, 충직한 종, 2014.11.16. 성바오로딸수도회, 서울주보.jpg

 


잠언의 저자는, 우아함은 거짓이고 아름다움은 헛것이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은 칭송을 받는다고 한다. (잠언 31,10-13.19-20.30-31 )
10 훌륭한 아내를 누가 얻으리오? 그 가치는 산호보다 높다. 11 남편은 그를 마음으로 신뢰하고 소득이 모자라지 않는다.
12 그 아내는 한평생 남편에게 해 끼치는 일 없이 잘해 준다. 13 양모와 아마를 구해다가 제 손으로 즐거이 일한다.
19 한 손으로는 물레질하고 다른 손으로는 실을 잣는다. 20 가난한 이에게 손을 펼치고, 불쌍한 이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준다.
30 우아함은 거짓이고 아름다움은 헛것이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은 칭송을 받는다. 31 그 손이 거둔 결실을 그에게 돌리고, 그가 한 일을 성문에서 칭송하여라.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주님의 날이 도둑처럼 덮치지 않을 것이라며,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으라고 한다. (1테살 5,1-6)
1 형제 여러분, 그 시간과 그 때에 관해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습니다. 2 주님의 날이 마치 밤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3 사람들이 “평화롭다, 안전하다.” 할 때, 아기를 밴 여자에게 진통이 오는 것처럼 갑자기 그들에게 파멸이 닥치는데, 아무도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4 그러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그날이 여러분을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5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6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며, 탈렌트의 비유를 드신다. (마태 25,14-3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4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16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17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19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2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4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7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28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30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Solomon.jpg

 연중 제33주일(평신도주일)제1독서(잠언31,10-13,19-20.30-31)

 

'교훈적 말씀'을 뜻하는 잠언은 'Proverbia'(프로베르비아:불가타-라틴어 성경을 만든 예로니모 성인이 만든 단어)를 옮긴 것이다.

 

잠언은 다양한 시대의 이름 모를 수많은 현인들이 남긴 지혜를 모아 놓은 선집이다. 시편처럼 잠언도 지혜를 담은 모음집의 모음이어서 그 저자와 저작 연대를 규명하기 어렵다(BC20-BC3).

 

잠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부분은 입문(1-9장)이고, 둘째 부분은 솔로몬의 첫째 잠언집(10,1-22,16)과 현인들의 두 가지 잠언(22,17-24,34)이다. 그리고 셋째 부분은 솔로몬의 둘째 잠언집(25-29장)과 부록처럼 덧붙여진 잠언들(30-31)이다. 

 

솔로몬의 둘째 잠언집에 부록처럼 덧붙여진 잠언들을 세분하면, 아구르의 잠언(30,1-14),수(數), 잠언(30,15-33), 르무엘의 잠언(31,1-9), 그리고 훌륭한 아내를 칭송하는 알파벳 노래(31,15-33) 등이다. 이 잠언들도 통치자들에게 필요한 가르침을 전한다.

 

아구르와 르무엘은 둘 다 구약성경에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인물들로서, 이방인 임금들로 보인다. 그들은 마싸 사람으로 되어 있는데, 마싸는 아라비아 북족에 거주하는 이스마엘의 한 민족 이름이다.

 

이 잠언들이 강조하는 주제는,올바른 통치자들에게 필요한 겸허한 자세와 지혜로운 배우자이다(30,2-4).하느님 앞에서 취해야 할 겸허한 자세는, 정직과 절제에 바탕을 둔다.

 

"저는 당신께 두 가지를 간청합니다.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30,7-9)

 

절제와 관련하여 르무엘의 잠언에서는 특히 여자에게 빠지는 것과 과음을 경계한다 (31,3-5). 잠언의 마지막은 훌륭한 아내에 대한 칭송의 노래로 장식된다. 이 칭송가는 히브리어 자음 22자에 맞추어 지은 알파벳 노래이다.

 

르무엘의 잠언에서 이 대목은 지혜로운 배우자를 얻으라는 어머니의 충고에 해당하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훌륭한 아내는 지혜 그 자체를 뜻할 수 있다. 지혜를 뜻하는 그리스어 '소피아'(Sophia)가 여성 명사임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혜1,7과 연결되는 31,30의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은 칭송을 받는다."는 말씀에서 <여인>이라는 단어 혹은 <아내>라는 대신에 <지혜>를 넣어 묵상하면 좋은 것이다. 

 

한국 교회는 연중 마지막 주일의 전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내 오고 있다. 올 한 해를 마감하면서, 오늘 마태오 복음의 나에게 주어진 탈렌트를 땅에 묻어 두지 않고  하느님 나라의 건설과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얼마나 성실하게 잘 썼는지를 물어 보아야 한다.

 

1탈렌트는 6,000 데나리온(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일당)으로, 노동자가 안식일을 빼고 20 여년 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엄청난 액수이다.

이런 엄청난 탈렌트를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이것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물어서, 하느님과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아야, 잘 살았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래야만 우리가 1독서처럼 칭송받는 주님을 경외하는 자에 해당되고, 2 독서처럼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는 자, 밤이나 어둠에 속한 자가 아닌 빛과 낮의 자녀로서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얀 로이켄, 부정한 하인의 비유, Jan Luyken, The Parable of the Unjust Steward, Etching.jpg

 

 연중 제33주일(평신도주일) 복음 (마태25,14-30)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5~29)

 

한 탈렌트를 받은 이주인에 대한 잘못된 지식으로 주인을 두려워했다. 그는 받은 탈렌트에 대한 상실의 두려움과 투자로 인한 실패의 두려움을 가진 채, 주인에게서 받은 자본금을 투자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이러한 자세를 가진 그에게 남은 것은 자본금 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 돈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기라도 했더라면, 거기에서 이자라도 얻을 수 있었을텐데, 그는 이자 한 푼 얻을 수 없는 땅에 그 돈을 숨겨 두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원금을 보존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도 나중에 빼앗겨 버리고 만다.

 

그는 25절에서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라고 말한다. 여기서 '도로 받으십시오'로 번역된 '에케이스'(echeis; here you have)'가지다', '소유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에코'(echo)현재 2인칭 단수 동사로서 '당신이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당신의 것을 당신이 가지고 있는데, 무슨 불평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라는 뉘앙스를 주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주인이 결코 손해 본 것이 아니라는 변명을 통해 자신의 무책임과 잘못을 덮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주인의 기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마구 내뱉은 무책임하고 무례한 표현이다.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면서도 면책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악하고'로 번역된 '포네레'(ponere; wicked)원형 '포네로스'(poneros)'도덕적으로 사악한'이라는 의미외에도 '고통과 괴로움을 일으키는'이라는  의미(묵시16,2)를 지닌 형용사인데, 종이 나쁜 관리인 정신을 가졌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로 인해 주인에게 괴로움을 끼쳤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더군다나 그는 '게으른' 종이었다. 

 

여기서 '게으른'으로 번역된 '오크네레'(oknere; slothful; lazy)의 원형 '오크네로스'(okneros)진보가 늦고 지체되며 나태한 상태를 의미하는 형용사이다.

그러니까 이 게으른 종은 일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주인이 기대한 진보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여기서 '돈'으로 번역된 '아르귀리아'(argyria; money)의 원형 '아르귀리온'(argyrion)'은'(silver)을 의미하는 명사 '아르귀로스'(argyros)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은전', '은조각'을 의미한다(사도3,6; 루카19,23).

 

그 당시 화폐는 주로 은전이었는데, 주인은 그 은전으로 된 탈렌트를 '대금업자들에게' 맡겨두었다가 이자를 받게 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대금업자들'로 번역된 '트라페지타이스'(trapezitais)의 원형 '트라페지테스'(trapezites)수수료를 받고 돈을 교환해 주거나 고객의 예탁금을 보관한 후 이자를 지불하는 사람, 즉 '환전상'이나 '은행가'를 뜻한다.

 

또한, 여기서 '돈'으로 번역된 단어와 '대금업자들'로 번역된 단어 둘 다 복수형으로 쓰였으므로, 주인이 한 탈렌트나 되는 많은 돈을 여러 대금업자들에게 분산 투자했기를 내심 바랐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탈렌트'에 해당하는 '탈란타'(talanta; talents)의 원형 '탈란톤'(talanton)은 원래 중량을 다는 '천칭', '저울'이라는 뜻의 단어였지만, 중량의 측정 단위와 화폐 단위로 발전했다.

 

탈렌트는 무게로는 약 34kg에 해당하며(탈출38,25),  돈으로는 6,000 데나리온의 가치에 해당된다. 그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1 데나리온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1탈렌트는 노동자가 약 20년 동안 벌어야 하는 거액이었다.

그리고 영어에서 '재능'을 의미하는 'talent'라는 단어가 희랍어 '탈란타'에서 유래한 것이며, 여기서의 '탈란타''재능'보다는 '사명'과 관련해서 사용되었다.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이자'로 번역된 '토코'(toko; interest; usury)의 원형 '토코스'(tokos)는  '산출하다', '낳다'를 의미하는 동사 '티토'(tito)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원래 '출산된 것'이라는 뜻이다.

 

돈의 이자 '토코스'(tokos)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은 원금에서 증식되어 나온 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자율은 연리 8%에서 48%의 고리(高利)까지 다양했다.

 

구약의 율법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는 돈을 빌려주더라도 이자를 받지 못하게 규정했지만(신명23,19), 타국인과의 거래에서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 하였다(신명23,20). 

하지만 신약 시대에는 동족간의 거래에서도 이자를 받는 일이 거의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의 상황을 예로 들어 '이자' 이야기를 한 것이며, 동족간 돈 거래에 있어서 이자를 받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또한, '돌려받았을 것이다'로 번역된 '에코미사멘 안'(ekomisamen an)현재의 의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이루지 못한 과거의 사실에 대하여 아쉬워하는 의미로 '받았어야 했다'(should have received)는 뜻이다. 그러니까 실제는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자에게서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겠다' 

이 구절의 선언은 한 탈렌트를 받았던 종이 악하고 게을러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데 대한 응당의 결과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종 적극적으로 악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혹한 징계를 받게 된 것이다.

 

또한 이 구절은 주인이 원래 의도했던 목적이 악하고 게으른 종에 의해 실현되지 않았어도, 그 목적을 다른 방법을 통해 반드시 이루고야 만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자신의 사명을 성실하게 잘 완수한 자에게는 당연한 보상 외에 또 다른 기대치 않았던 보상을 더해 준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는 말씀이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이 구절은 주님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부조리한 현상 가운데 하나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옹호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28절 징계적 선언이 주인의 자의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영적인 원리에 입각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준다(마르4,25).

 

마태오 복음 25장 14~30절의 탈렌트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다. 

각 종들에게 맡겨진 탈렌트는 그들에게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적당한 양이었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하기에 알맞은 탈렌트를 맡기신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받은 사명과 재능과 은사가 다른 사람들의 그것에 비해 적든 많든, 자기비하나 열등감에 빠지거나 교만해질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1코린15,41). 

 

하지만, 우리는 때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능력 이상의 어떤 열매를 원하신다고 잘못 판단해 버리고, 하느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재능과 은사를 사용한번 해보지 못하고 묵혀두지는 않는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에게 능력 이상의 결과를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느님께서 주신 은사와 재능을 가지고 그에게 부여된 봉사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활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함으로써 지속적으로 그의 은혜가 넘쳐나며 그의 심령도 성령충만으로 부요해질 것이지만, 반대로 하느님께서 주신 은사와 재능을 가지고 그에게 주어진 봉사의 기회를 하찮은 것이라고 무시하며 활용하지 않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그 은사를 상실해 가며, 더 이상 영적인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전락해 간다는 것이다.

 

 

얀 로이켄, 텔런트의 비유, Jan Luyken, The Parable of the Talents, Etching.jpg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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