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17주일(가해) 마태 13,44-46; ’23/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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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3-07-15 ㅣ No.5464

연중 제17주일(가해) 마태 13,44-46; ’23/07/30

 

 

언젠가 한 번 은퇴하신 아버지 신부님을 찾아뵈온 적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아직 자기 멋대로 사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자기 하는 일 바쁘다고 자주 찾아 뵙지 못해 송구스러웠던 터라, 오랜만에 만난 신부님은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신부님께서 말씀하시는 동안 내내 졸음을 이겨내기 위해 고생했지만, 그래도 해묵은 숙제를 푼 것 같기도 했고, 짐을 덜어놓은 것만 같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제게도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의 최고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요즘 사람들은 어떤 것에 촉각을 기울이고, 무엇을 생각하며 삽니까? 사람들끼리 모이면 주로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일반적인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부자 될 수 있을까?’하는 것에 최고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듯싶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 시대의 부자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존재의 생활양식과 생애가, 우리 천주교 신앙 전통의 성인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존재의 생활양식과 생애와 어떻게 다릅니까?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데, 우리는 성인이 되고 싶으십니까? 혹시 부자도 되고 성인도 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둘 다 될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만, 꿈꿀 수 없는 허상이겠지요.

 

가끔 신문 지상이나 뉴스를 보면 유망주라는 단어를 보게 됩니다. 유망주, 우량주는 눈에 확 드러나 보일 정도로 성장 일변도의 곡선을 그리고 있고, 작전주가 아니라면, 그 내용이 데이터로 검증되는 결실을 바탕으로 평가되고 선정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제적인 흐름뿐만 아니라, 교육마저도 보다 높고, 보다 낳은 자리에 올라서서 최고의 수익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간주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치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식으로, 미래에 최고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는 가능성을 드러내는 소수의 이들만을 유망주라고 정하여 집중적으로 투자합니다. 마치 경제의 한계효용의 극대화 법칙이 교육, 사회, 문화 등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삶을 지배하는 듯싶어 심란합니다.

 

결과적으로 지금 우리 눈앞에서 객관적이라고 하는 데이터로 성장곡선을 드러내 보이지 못하고, 미래의 성장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것들은 모두 열등의 것으로, 차등의 것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결국 우리 사회는 계속 각박하고 삭막한 피라미드식 경쟁체제에 몰두하고 있고, 개인과 사회뿐만 아니라 국가도 세계 나라들 사이에서 무한 경쟁체제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닌가 싶어 아프기까지 합니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또 실현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투자가 요구되기 때문에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그리고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수익과 성장을 보장하는 데이터를 제공하지 못하는, 이른 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는 신앙처럼, 인생에서 보이지 않는 가치나 의미, 기쁨과 보람 등이라든지, 자녀나 문제아에 대해 기다려주고, 묵묵히 지지해 주면서, 자신을 소모적으로 헌신하는 부모님의 사랑과도 같은, 과거의 인본주의적이고 인격주의적인 전통적인 철학과 신학 및 그에 의거한 인간관계와 사회체제는 무너져 버리는 듯싶어 씁쓸합니다.

 

이러한 사회 안에서는 일등이 아닌 사람과 최고가 아닌 사회의 역할은 등한시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그리고 앞으로도 성장과 경제적 고액 수익을 가져오지 못하는 분야는 도태되고 고립되어 버립니다. 각 세대마다 대중들에게 각광 받는 자리와 역할이 있어왔고, 각광을 받지는 못하지만 꼭 있어야만 하는 사회의 공공부문이 천대받고 등한시 된다면, 그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노고로 혜택을 입고 있는 사회의 전분야가 다 함께 고통을 받지 않겠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한 사람은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마태 13,44-45)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 속에 숨겨 놓고 있는 보물은 무엇입니까?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여러분 만의 보물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생에서 그 누구와도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보물은 무엇입니까?

 

가끔 병고를 겪고 있는 신자들이 제게 말해줍니다. “신부님, 병이 나면 모든 것이 다 소용없어 집니다. 집도 돈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본인이 어떻게 해야지 가족도 도와줄 뿐 대신 아파해줄 수도 없고 어떻게 해 줄 수 없습니다. 신부님, 건강하셔야 합니다. 건강해야 하고 싶은 일도 합니다.” 맞는 말이고, 경쟁사회 속에서 늦게나마 철들은 현대인들의 자성적인 깨달음이기도 합니다.

 

저는 또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돈도 벌어야 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기 위해 건강도 지켜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기도도 많이 하고, 자기 희생도 많이 하고, 이웃을 위해 봉사도 하면서 성인성녀가 됩시다.” 현세를 떵떵거리다가도 하늘 나라에 들지 못하면 낭패가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최후에 웃는 사람이 승리하는 사람이라고들 합니다. 지금 우리 두 눈에 보이는 현실이라는 이 땅이 우리의 최후인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신앙 속에서 바라보는 하늘나라가 우리의 최후인지도 견주어보면서, 우리의 최후를 위해 무엇을 처분하고 무엇을 사야 할지 그려봅시다.

 

마치 숙제를 하나 더 짊어져야 하는 것 같이 부담스러워하는 우리에게, 성 바오로 사도는 오늘 두 번째 독서에서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무더운 여름 평안한 가운데, 우리 모두 성령께 의지하여 미래를 향한 좋은 선택과 좋은 실천을 이루어 나갑시다. 아멘.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마태 13,5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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