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님께 드리는 사랑의 편지

아녜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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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agneskim] 쪽지 캡슐

2000-01-17 ㅣ No.1035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원래 여자한테 묻지 말아야할 것 (즉, 감춰야 할 것)이 3가지가 있는데 나이몸무게 그리고, 허리둘레예요.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자꾸 제 나이를 궁금해하시니 어쩔 수 없이 제가 3가지 중 한가지는 포기해야 할 것 같아요 (아주 큰 결심!!) 저는 386 세대입니다. 으잉~ 넘 많다고요?

 

얼마 전 TV를 보니까 과연 아줌마의 나이는 몇 살부터일까? 하는 내용으로 특별 조사단(?)울 구성하여 여론 조사를 하던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줌마의 나이가 글쎄 32살인 거예요. (이런~ 말도 안되지... 벌써 내가 아줌마 나이를 바라보다니...)  

 

뭐 제가 친구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늘 농담처럼 첫사랑(뭐~ 제 첫사랑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습니다... 오호호)에 실패만 안 했어도 벌써 애가 둘이라는 말은 하지만 그래도 아줌마 나이를 32로 친다는 것은 좀~  (저의 욕심인가요?  할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래서 전 늘~ 결혼을 하면 아줌마! 안 하면 아가씨! 고로 "난 아가씨다"라고 하는데... 주위에 동의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

 

 

초등학교 때 소풍 가는날엔 늘 비가 왔는데 6학년 가을 소풍에는 날씨가 정말 좋았어요.  

너무  새파랗고 높은 하늘을 보며 ’야~ 예쁘다’고 말하는 사이 어느새 제 눈에 눈물이 (그 좋은 소풍날 울다니)...  

가끔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저는 제 스스로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랬다고 우기고 (절대 친구들은 인정을 안 하지만..) 친구들은 제가 해를 보고 눈이 부셔서 울었다고 해요.

 

사실 제가 원래 눈물이 좀 많거든요.  중학교 때는 미사 중 성가 부르다가 왠지 감동의 물결이 밀려오더니 눈물이 찔끔 했는데 주일학교 선생님이 "희정이 너 하품했지?" 하시는 거예요. 아니~ 선생님도 참! 소녀의 마음을 몰라 줘도 너무 몰라주신다~

 

그런데 어제도 성당 가는 길에 하늘을 보니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눈물이 죽~ 흐르는 거예요.  어릴 적 보았던 그 구름 한 점 없던 새파란 하늘도 아니고 그저 늘 보는 구름 조금 낀 그런 하늘인데 왜 갑자기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제는 길가에 떨어진 낙엽을 주워 책갈피에 곱게 끼워두던 소녀의 마음도 작은 것에도 기뻐하며 까르르 웃던 어릴 적 그 모습도 아닌 제가요.  

 

그러면서 늘 저희와 함께 하시는 주님께 "오늘도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했어요.  

아무래도 초등학교 때는 눈이 부셔서 그랬던 것 같지만 이제야 자연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 같아요.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늘 어린이들에게 주님께서 주신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에 대해 말하면서도 제 스스로는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제야 알았어요.

그 아름다움 속에 제가 같이 숨쉬고 있다는 것이 이토록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눈물로 표현되는 기쁨인지를....

 

가끔 제가 세상에 뿌린 나쁜 말과 행동이 주님께서 만드신 모든 아름다운 것들의 빛을 흐려놓은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또 살아가면서 어른이라는 이름에 알게 모르게 묻혀 온 온갖 먼지와 더러움을 이제 더 이상 묻히지 않도록 저 스스로와 약속하면서... 할아버지 오늘도 이만~

 

 

불광동에서 386 아녜스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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