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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필독] 번역 용어인 사랑하다(to love, amo) 라는 동사의 의미 [신학대전여행] [교리용어_사랑] 773_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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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2 ㅣ No.1647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질문 1: 신약 성경 본문에서 "사랑하다(to love, amo)"로 번역되는 동사의 의미가 무엇인지요?

 

질문 2: 그리스어 신약 성경 본문과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의 신약 성경 본문에서, "사랑" 을 나타내는, 적어도 두 개의 동일하지 아니한, 명사들 모두가 일부 영어본 성경들에서 처음으로 "love" 로 번역되기 시작한 시점, 동기 및 해당 영어본 성경은 무엇인지요?

 

질문 3: 그리스어 명사 "agape" 는, 동일한 어원을 가지는, 그 동사형 "agapao" 를 가지고 있는데, 이 그리스어 명사 "agape" 에 대응하는 라틴어 명사 "caritas"의, 동일한 어원을 가지는, 동사형은 무엇인지요?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에 라틴어 명사 "caritas"의, 동일한 어원을 가지는, 동사형은 없는 것 같은데, 이것이 사실인지요? 그리고 만약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성 예로니모(St. Jerome)가, 성 다마소 1세 교황님의 명에 의하여,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를 마련할 때에 어떠한 라틴어 동사를 그리스어 동사 "agapao" 에 대응하는 라틴어 동사로 선택하여 사용하였는지요?

 

질문 4: "하느님에 대한 사랑(the love of God)"이라는 차용(借用) 번역 표현과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the love of our neighbor)"이라는 차용(借用) 번역 표현에서 말하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사랑(love)"에 대응하는 교회 라틴어(Church Latin)의 단어는 무엇인지요? amor(love of concupiscence), amor(love of friendship), dllectio(dilection), 혹은 caritas(charity, 애덕) 이들 넷 중의 어느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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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 찬미 예수님!

 

 

 

  

질문 1: 신약 성경 본문에서 "사랑하다(to love, amo)"로 번역되는 동사의 의미가 무엇인지요?

 

질문 2: 그리스어 신약 성경 본문과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의 신약 성경 본문에서, "사랑" 을 나타내는, 적어도 두 개의 동일하지 아니한, 명사들 모두가 일부 영어본 성경들에서 처음으로 "love" 로 번역되기 시작한 시점, 동기 및 해당 영어본 성경은 무엇인지요?

 

질문 3: 그리스어 명사 "agape" 는, 동일한 어원을 가지는, 그 동사형 "agapao" 를 가지고 있는데, 이 그리스어 명사 "agape" 에 대응하는 라틴어 명사 "caritas"의, 동일한 어원을 가지는, 동사형은 무엇인지요?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에 라틴어 명사 "caritas"의, 동일한 어원을 가지는, 동사형은 없는 것 같은데, 이것이 사실인지요? 그리고 만약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성 예로니모(St. Jerome)가, 성 다마소 1세 교황님의 명에 의하여,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를 마련할 때에 어떠한 라틴어 동사를 그리스어 동사 "agapao" 에 대응하는 라틴어 동사로 선택하여 사용하였는지요?

 

질문 4: "하느님에 대한 사랑(the love of God)"이라는 차용(借用) 번역 표현과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the love of our neighbor)"이라는 차용(借用) 번역 표현에서 말하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사랑(love)"에 대응하는 교회 라틴어(Church Latin)의 단어는 무엇인지요? amor(love of concupiscence), amicitia(love of friendship), dllectio(dilection), 혹은 caritas(charity, 애덕), 이들 넷 중의 어느 것인지요?

 

1. 들어가면서

이 글은, 다음에 있는 글들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oncept_of_love.htm

 

이번 글에서는,

(i) 피물들인 인간들 사이의 한 관계를 나타내는 동사인 "to love(사랑하다)" 와

(ii) 인간들 쪽으로 하느님의 한 관계를 나타내는 동사인 "to love(사랑하다)" 의

차이점과 유사점 등에 대하여, 한 개의 삼각형(a triangle)을 연상하게 하는, 그것의 한 말단(a termination)이 하느님이신 한 개의 3자들 사이의 관계(a trinary/ternary/trinitarian relation)인, 하느님과 피조물들인 인간들 사이의 기본 설정(fundamental setting) 안에서,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게시자 주 1: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하여 도입되어 온 바로 이 3자들 사이의 관계(a trinary/ternary/trinitarian relation)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작성된 글들의 예들은 다음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799.htm [2008년 6월 8일자 졸글, 제목: 정의(justice)의 정의(definition)와 그 적용 예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49.htm [2013년 9월 27일자 졸글, 제목: piety 라는 윤리덕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13.htm [2015년 2월 11일자 졸글, 제목: 복음화의 방향은 새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 -에페소 1,10]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28.htm [2015년 4월 11일자 졸글, 제목: 민간의(popular)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의 성경 근거 외]

[이상, 게시자 주 1 끝]

 

2.

2-1. 2005년 12월 25일자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회칙 [제목: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 제3항은, "eros" 라는 단어가 그리스어본 신약 성경 본문에 전혀 사용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는데, 이것은 2009년 3월 12일자 다음의 졸글[제목: 사랑/애덕(charity)의 정의(definition) 외]제1-1항에서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35.htm

 

그리고 다음의 자료들에 주어진 요한 복음서 5,20에 대한 주석으로부터 우리는 그리스어 신약 성경 본문에, 그 안에 육체적 감각에 만족을 주는 정(sensual passion)의 관념(idea)이 우세한, 그리스어 "에로스(eros)" 라는 명사의 동사형인, "eρα?ω(erao)" 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음을 또한 구체적으로 확인합니다:

 

"Ερα?ω" site:biblehub.com

http://biblehub.com/commentaries/vws/john/5.htm

http://www.perseus.tufts.edu/hopper/morph?l=
%CE%95%CF%81%CE%B1%CC%81%CF%89&la=greek#lexicon

 

지금 말씀드린 바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검색 결과도 또한 참고 하십시오:

"erao" site:biblehub.com

 

다른 한편으로, 이 단어는 성경 밖에서 영어로 "사랑하다(to love)" 로 또한 번역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2-2. 질문 2: 그리스어 신약 성경 본문과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의 신약 성경 본문에서, "사랑하다" 를 나타내는, 적어도 두 개의 동일하지 아니한, 동사들 모두가 일부 영어본 성경들에서 처음으로 "to love" 로 번역되기 시작한 시점, 동기 및 해당 영어본 성경은 무엇인지요?

 

질문 2에 대한 답변 시작:

 

2-2-1. 우선적으로, 다음의 출처에 주어진 설명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http://www.etymonline.com/index.php?term=charity

(발췌 시작)

Wyclif and the Rhemish version regularly rendered the Vulgate dilectio by 'love,' caritas by 'charity.' But the 16th c. Eng. versions from Tindale to 1611, while rendering agape sometimes 'love,' sometimes 'charity,' did not follow the dilectio and caritas of the Vulgate, but used 'love' more often (about 86 times), confining 'charity' to 26 passages in the Pauline and certain of the Catholic Epistles (not in I John), and the Apocalypse .... In the Revised Version 1881, 'love' has been substituted in all these instances, so that it now stands as the uniform rendering of agape. [OED]

 

요한 위클리프(John Wyclif, 1331-1384년)(*1)Rhemish 본(version)(*2)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dilectio 를 'love' 로, caritas 를 'charity' 로 규칙적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윌리엄 틴덜(William Tyndale, 1494-1536년)(*3)로부터 1611년까지(*4) 16세기 영어본들은, 그리스어 단어 agape 를 때로는 'love' 로, 때로는 'charity' 로 옮기는 한편, 바오로 서간들과 가톨릭 서간들의 일부 (요한 1서에 있지 않는), 그리고 요한 묵시록에 있는, 26개의 단락들에 'charity' 를 한정함으로써, 대중 라틴말 성경의 dilectiocaritas 를 뒤따르지 않고, 'love' 를 더 자주 사용하였습니다(약 86번). Revised Version 1881(*5) 에서, 'love' 는 이들 경우들 모두에 있어 이미 대신으로 쓰여졌으며(substituted), 그리하여 그 결과 이 단어는 agape 의 획일적인 옮김으로서 이제 서 있습니다. [O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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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자 주: 영국에서 당시에 교회의 교도권에 격렬하게 반항하였던 평신도 요한 위클리프(John Wyclif, 1331-1384년)에 의한 대중 라틴말 성경의 영어본 번역 작업에 대한 언급은, 예를 들어, 다음의 개신교측의 Bible Dictionary에 주어진 "charity" 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에서도 읽을 수 있다: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2) 번역자 주: Rhemish 본은, 구약 성경 부분이 1609-1610년에 프랑스 Douay 에서 마련되었던 Douay Bible[즉, Douay-Rheims Bible]의 한 부분을 형성하는, 1582년에 프랑스 Rheims 에서 마련되었던, 영국의 로마 가톨릭들에 의하여 사용되었던 신약 성경의 영어 번역본을 말한다.

참고 자료: http://www.finedictionary.com/Rhemish%20version.html

 

(*3) 번역자 주: 그는, 가톨릭 교회 교도권을 거부하기 위하여, 영어본 성경을 자신이 마련할 때에, 예를 들어, 전통적으로 영어로 church, bishop, priest, charity 로 각각 번역되어 왔던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의 용어들을, 이들 대신에, congregation, overseers, elder, love 로 각각 번역하기 시작한 첫 번째 영어본 성경의 번역자로 알려져 있다.

참고 자료: https://en.wikipedia.org/wiki/William_Tyndale

 

(*4) 번역자 주: 1611년은 영국 성공회측의 영어본 성경인 King James Version의 초판이 발행되었던 해이다.

 

(*5) 번역자 주: 이것은 1881년에 초판 발행된, King James Version 1611 중의 신약 성경의 개정판을 말한다.

참고 자료: https://en.wikipedia.org/wiki/Revised_Version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바로 위의 설명에 의하면, 1881년에 이르면, 개신교측 영어본 신약 성경 본문에서, 그리스어 단어 agape가 모두 획일적으로 "love" 로 번역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한 개의 부산물(副産物, by-product)로서, 영어본 개신교측의 신약 성경들에서 그렇게 번역되기까지의 과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이상, 칠문 2에 대한 답변 끝)

 

2-2-2. 다른 한편으로, 예를 들어, 요한 복음서 21,15-17로부터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또한 영어 동사 "to love" 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단어 "phileo" 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동사의 명사형인 그리스어 명사 "philia" 의 자연법적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는, 다음의 주소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요한 복음서 21,15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 쪽으로 주어진 베드로의 첫 번째 답변에서, 이 명사의 동사형 "phileo" 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http://biblehub.com/lexicon/john/21-15.htm <----- 클릭하여 꼭 확인하십시오

http://biblehub.com/greek/5368.htm [phileo] <----- 클릭하여 꼭 확인하십시오

http://biblehub.com/greek/5384.htm [philos] <----- 클릭하여 꼭 확인하십시오

 

그리고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의 요한 복음서 21,15에서 "phileo"에 대응하는 동사가 "amo"인 것은 다음을 클릭하면 누구나 쉽게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www.newadvent.org/bible/joh021.htm

 

따라서, 근본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 하면, 그리스어 명사 "philia" 와는 달리, 그리스어 명사 "agape" 혹은 이 명사의 동사형의, 그리스도교 용어로 사용되기 이전 시기의, 불확실한 어원(of uncertain origin) 때문에, 그리스어 명사 "agape"의, 그리스도교 용어로 사용되기 이전 시기의, 자연법적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를 또한 잘 알지 못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한 복음서 21,15에 기록되어 있는 베드로 쪽으로 주어진 예수님의 첫 번째 질문에서 이 단어의 동사형 "agapas" 가 사용되고 있는데, 지금 지적한 바 또한, 바로 위에 안내해 드린, 다음의 주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biblehub.com/lexicon/john/21-15.htm <----- 클릭하여 꼭 확인하십시오

 

(중간 결론 1 및 이번 글의 작성 동기)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을 중간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i) 그리스어본 신약 성경 본문에서 서로 다른 종류의 "사랑" 들을 구분하여 나타내는 두 개의 고대 그리스어 단어들 모두가 영어권 개신교측의 신약 성경 본문에서 "love" 로 번역된 것은, 이들 원 단어들의 자구적 의미가, 번역 작업의 과정에서, 자의적/의도적이든 혹은 우발적이든지 간에, 온전하게 전달되지 못하도록 축소/왜곡 번역되었기에, 명백한 번역 오류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사랑(Christian's love)" 을, 예를 들어, 단순히 "희생의 사랑" 등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가페(agape)" 라는 그리스어 단어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가 결코 아닌, 단지 이 사랑에 대한 한 개의 부수적인 설명(an accidental explanation)일 뿐임을 알 수 있다.

 

(ii) 위의 제1항에서 말씀드린, 한 개의 삼각형(a triangle)을 연상하게 하는, 그것의 한 말단(a termination)이 하느님이신 한 개의 3자들 사이의 관계(a trinary/ternary/trinitarian relation)인, 하느님과 피조물들인 인간들 사이의 기본 설정(fundamental setting) 안에서, 영어 동사 "to love(사랑하다)" 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를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하여, 그 어원이 동일하지 않은 이들 두 개의 그리스어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는 그리스어본 신약 성경 본문과, 4세기 말 경에 성 에로니모(St. Jerome)에 의하여 마련된, 대응하는 라틴어본(즉, 대중 라틴말 성경)의 신약 성경 본문을 정밀하게 비교/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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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그리고 이러한 정밀한 비교/검토 시에,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이 이미 수용한 핵심 문헌인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에 주어진, "to love" 로 번역되는, 라틴어 용어들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s)들에 대한 가르침에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는 우선적으로 의존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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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중간 결론 1)

 

3.

질문 3: 그리스어 명사 "agape" 는, 동일한 어원을 가지는, 그 동사형 "agapao" 를 가지고 있는데, 이 그리스어 명사 "agape" 에 대응하는 라틴어 명사 "caritas"의, 동일한 어원을 가지는, 동사형은 무엇인지요?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에 라틴어 명사 "caritas"의, 동일한 어원을 가지는, 동사형은 없는 것 같은데, 이것이 사실인지요? 그리고 만약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성 예로니모(St. Jerome)가, 성 다마소 1세 교황님의 명에 의하여,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를 마련할 때에 어떠한 라틴어 동사를 그리스어 동사 "agapao" 에 대응하는 라틴어 동사로 선택하여 사용하였는지요?

 

질문 3에 대한 답변 시작:

 

3-1.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그동안 경험한 바에 비추어 보더라도, 라틴어 명사 "caritas" 의, 동일한 어원을 가지는, 동사형은 듣거나 혹은 읽은 적이 전혀 없습니다.

 

3-2.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A Flourishing Practice?" 라는 제목의 저서 제96쪽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발췌 시작)

But a curious feature of the translation of agape into Latin might give us a final clue as to how we might set about doing that. in Greek agape is a noun but it has a cognate verb - agapao. Latin however does not have a verb form of caritas - you either have to say some one 'has charity' or you use a different verb - diligo, diligere, dilexi, dilectum. The main meaning of this verb seems to be elect, to choose out, and by extension it means to value, to prize and to love. It has a broad range or meanings including care about, like, enjoy, hold care, esteem, value, have special regard for.31

 

그러나 라틴어로 [그리스어 명사] agape 의 번역에 있어서의 한 개의 기이한 특징은, 바로 그것을 행함에 어떻게 우리가 착수하여야 하는지에 관하여, 우리에게 어떤 최종적 단서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어에 있어 아가페(agape)는 한 개의 명사이며 그런데(but) 이 단어는 한 개의 동일한 어원의 동사(a cognate verb) 아가파오(agapao)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라틴어는 까리따스(caritas)의 어떤 동사형(a verb fom)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독자들께서 어떤 이가 '애덕(charity)를 가지고 있다(has charity)' 라고 말하여야 하거나 혹은 독자들께서 한 개의 다른 동사, diligo, diligere, dilexi, dilectum 를 사용하여야 하는, 이들 둘 중의 하나입니다. 바로 이 동사의 주된 의미는 택하다(elect), 선택하다(choose out) 인 것 같으며, 그리고 확장에 의하여(by extension), 이 단어는 높이 평가하다/존중하다(value), 상을 주다(prize) 그리고 사랑하다(love) 를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에 마음쓰다(care about), 좋아하다(like), 향유하다(enjoy), 돌봄을 유지하다(hold care), 존중하다/존경하다(esteem), 높이 평가하다/존중하다(value), ... 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지다(have special regard for)를 포함하여, 어떤 폭넓은 영역 혹은 의미들을 가집니다. (diligere, 즉, to value or esteem highly[높게 존중하거나 혹은 존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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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www.latinwordlist.com/latin-words/diligo-8063308.htm [accessed 6, May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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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3.

3-3-1. 바로 위의 제3-1항제3-2항에서 말씀드린 바는, 예를 들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I, IIae, q27, a2, sc 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출처: http://www.logicmuseum.com/authors/aquinas/summa/Summa-IIb-27-33.htm#q27a2sc

(발췌 시작)

Ergo benevolentia non est idem quod dilectio, quae est caritatis actus.

 

Therefore goodwill is not the same as to love considered as an act of charity.

 

그러므로 선의(goodwill)는 애덕의 한 행위로서 간주되는 "dilection"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3-2. 다른 한편으로, 다음은 프랑스어 사전에 주어진 "dilection"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1: http://www.wordreference.com/fren/dilection

출처 2: "dilection" "amour pieux"

(출처 1에서 발췌 시작)

dilection

 

théologie(신학)                      dilection

(amour pieux) (theology)

[pious love,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충실이라는 관계 안에 있는 사랑(amor) (신학)]

(이삳,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3-3. 그러므로, 제3-3-1항제3-3-2항으로부터 우리는, 선의(goodwill)가, 애덕의 한 행위(an act of charity, caritatis actus)로서 간주되는,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충실에 기인하는 사랑(to love, dilectio)과 동일하지 않음을 확인 하였습니다.

 

3-4. 

3-4-1. 다른 한편으로, amor(amicitia, friendship)은,

 

(i) 다음의 글의 제2-1항에 발췌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 Ia, IIae, q26, a4, co에서 그 출처가 제시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가 말하는 우의, 즉, "당사자인 양자들 사이의 상호호혜적 사랑", 즉, 2자들 사이에서 직접 주고 받는 상호호혜적 사랑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36.htm <----- 필독 권고

 

(ii) 혹은, 예를 들어, 어머니가 자신의 유익을 기대하지 않고, 오로지 상대방의 선의 회복/증진, 즉, 유익만을 바라는(wish) 사랑인,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이타(利他)적(altruistic)/인격주의적(personalistic) 사랑(amor)처럼, 2자 간의 우의라는 관계 안에 있는 사랑에서, 이 관계의 한 말단인 자신의 유익을 기대하지 않고, 또다른 한 말단인 상대방의 선의 회복, 즉, 유익을 바라는(wish) 이타(利他)(altruistic)/인격주의(personalistic)적 사랑(amor),

 

이렇게 둘로 구분뒬 것입니다.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이 두 번째 사랑, 즉, "2자들 사이에 있는 인격주의적(personalistic) 사랑(amor)"은, 2자들 사이에서 "감각 인상(sense impressions)에 반응하는 순서 안에 있는 어떤 사욕편정(私慾偏情, concupiscence, 즉, 私慾)에 의하여 동기가 부여되는 욕구(a concupiscible appetite)"가 배제된, 따라서 오로지 주체(subject)의 의지(will) 안에만 있는, 상대방의 선의 회복/증진, 즉, 유익을 바라는(wish), 따라서 주는 자와 받는 자들 둘 사이의 직접적 상호호혜를 전제로 하지 않고 상대방의 선의 회복을 주체(subject)의 의지(will)가 사전 선택적으로 욕망하는(*1) 2자들 사이의 인격주의적(personalistic)적(*2) 우의(friendship)라는 관계 안에 있는 사랑(amor)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사랑도 또한 자연적/본성적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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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바로 이 욕망함에는, 상대방에 있어 선의 회복/증진을 위하여(즉, 그 원인이 "하느님의 의지"인 "원초적 사랑"을, 하느님을 위하여, 충족시키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주체(subject)의 의지가 자신에 있어 선의 회복/증진을 위하여(즉, 그 원인이 "하느님의 의지"인 "원초적 사랑"을, 하느님을 위하여, 충족시키기 위하어) 욕망하여야 함을 포함하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2) 게시자 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St. John Paul, Pope)께서 설명하시는 "인격주의(personalism)"에 대한 글은 다음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31_personalism.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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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3-4-2-1. 다른 한편으로, "한 말단(a terminal)이 하느님이신, 적어도 3자들 사이의 dilection"이라는 사랑은, 최소한도로 3자들 사이에서 "감각 인상(sense impressions)에 반응하는 순서 안에 있는 어떤 사욕편정(私慾偏情, concupiscence, 즉, 私慾)에 의하여 동기가 부여되는 욕구(a concupiscible appetite)"가 배제된, 따라서 오로지 주체(subject)의 의지(will) 안에만 있는, 상대방의 선의 회복, 즉, 유익만을 바라는, 따라서 "한 말단(a terminal)이 하느님이신, 적어도 3자들 사이"에서, 주는 자와 받는 자들 둘 사이의 직접적 상호호혜를 전제로 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의도하시는 바 대로의 상대방의 선(good)의 회복을 위하여 주체(subject)의 의지(will)가 사전 선택적으로 욕망하는(*1) 인격주의적(personalistic) 우의(friendship)라는 관계 안에 있는 사랑(amor)(*2)인데, 여기에다 추가적으로, 이 사랑의 대상들이 한 명이 아니고 적어도 두 명 이상인 여건 아래에서, 바로 이 인격주의적(personalistic) 사랑(amor)에 있어서의 차이/불평등이 또한 주체(subject)의 의지(will)의 사전 선택에 의하여 존재하고 있는, 바로 그러한 사랑, 즉, 하느님이 한 말단(a terminal)이신 적어도 3자들 사이의, 따라서 주체(subject)의 심장(heart) 안쪽에 있는, 불평등한 인격주의적(personalistic) 우의(friendship)라는 관계 안에 있는 사랑(amor)을 말하는데, 이 사랑을, 통상적으로, dilection[편애(偏愛)/애모(愛慕)/사전 선호(選好)]라는 단어로 표현한다는 생각입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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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바로 이 욕망함에는, 상대방에 있어 선의 회복/증진을 위하여(즉, 그 원인이 "하느님의 의지"인 "원초적 사랑"을, 하느님을 위하여, 충족시키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주체(subject)의 의지가 자신에 있어 선의 회복/증진을 위하여(즉, 그 원인이 "하느님의 의지"인 "원초적 사랑"을, 하느님을 위하여, 충족시키기 위하어) 욕망하여야 함을 포함하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2) 게시자 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St. John Paul, Pope)께서 설명하시는 "인격주의(personalism)"에 대한 글은 다음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31_personalism.htm <----- 필독 권고

 

(*3) 게시자 주:  

(1) 예를 들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a, q20, a3에서 발췌 되고 있는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가 말한 바는 다음과 같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70.htm <----- 전체 본문 필독 권고

(발췌 시작)

On the contrary, Augustine says (Tract. in Joan. cx): "God loves(diligit) all things that He has made, and amongst them rational creatures more, and of these especially those who are members of His only-begotten Son Himself."

 

이와는 달리, 아우구스티노(Augustine)(Tract. in Joan. cx)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느님은 당신께서 이미 만드셨던 모든 사물들을 사랑하시고(loves, diligit)(diligit, 즉, to value or esteem highly[높게 존중하거나 혹은 존경하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이성적 피조물들을 더 사랑하시며(loves, diligit), 그리고 이들 중에서 특별히(especially) 당신의 유일한 독생자 그분 자신의 구성원/지체인 자들을 더 사랑하십니다(loves, diligit). 

(이상, 발췌 끝)

 

(2) 더 나아가, 바로 위의 출처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a, q20의 본문 전체에 걸쳐,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라틴어 명사 dilectio의 동사형 파생어들의 사용에 대한 구체적인 용례 분석은 확실하게 지금 말씀드린 바를 뒷받침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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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2. 그리고, 왜냐 하면,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가 정의하는 우의(friendship)[즉, 위의 제3-4-1항에서 "당상자인 양자들 사이의 상호호혜적 우의"라고 표현된 우의]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의지(will)에 의한 사전 선택 "선의(goodwill)"에 포함되기 때문에, dilection[편애(偏愛)/애모(愛慕)/사전 선호(選好)]이라고 불리는, "한 말단(a terminal)이 하느님이신, 적어도 3자들 사이"에서, 주는 자와 받는 자들 둘 사이의 직접적 상호호혜를 전제로 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의도하시는 바 대로의 상대방의 선(good)의 회복을 위하여 주체(subject)의 의지(will)가 사전 선택적으로 욕망하는(*1) 인격주의적(personalistic) 우의(friendship)라는 관계 안에 있는 사랑(amor)(*2)에 있어 또한 추가적으로 주체(subject)의 의지(will)의 사전 선택에 의한, 따라서 주체(subject)의 심장(heart) 안쪽에 있는, 불평등한 인격주의적(personalistic) 우의(friendship)라는 관계 안에 있는 사랑은, 위의 제3-3-2항에 주어진 설명에 의하여,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충실이라는 관계 안에 있는 사랑(pious love, love of piety)"과 동일한 사랑임에 주목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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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바로 이 욕망함에는, 상대방에 있어 선의 회복/증진을 위하여(즉, 그 원인이 "하느님의 의지"인 "원초적 사랑"을, 하느님을 위하여, 충족시키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주체(subject)의 의지가 자신에 있어 선의 회복/증진을 위하여(즉, 그 원인이 "하느님의 의지"인 "원초적 사랑"을, 하느님을 위하여, 충족시키기 위하어) 욕망하여야 함을 포함하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2) 게시자 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St. John Paul, Pope)께서 설명하시는 "인격주의(personalism)"에 대한 글은 다음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31_personalism.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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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말하여,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충실한 사랑(pious love, love of piety)"이란, 위의 제3-3-2항에 안내된 프랑스어 사전들의 정의(definition)에 의하여, "한 말단(a terminal)이 하느님이신, 적어도 3자들 사이"에서, 주는 자와 받는 자들 둘 사이의 상호호혜를 전제로 하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께서 의도하시는 바 대로의 상대방의 선(good)의 회복만을 위하여 주체(subject)의 의지(will)가 사전 선택적으로 욕망하는 인격주의적(personalistic) 우의(friendship)라는 관계 안에 있는 사랑(amor)에 있어 또한 추가적으로 주체(subject)의 의지(will)의 사전 선택에 의한, 따라서 주체(subject)의 심장(heart) 안쪽에 있는, 불평등한 사랑은, 위의 제3-3-2항에서 그러하다고 설명하고 있듯이,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충실이라는 관계 안에 있는 사랑(pious love, love of piety)"을 말합니다. 

 

3-4-2-3. 그리고 이 사랑은 자연적/본성적 윤리덕(moral virtue)인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충실"이라는 덕(the virtue of piety)의 심장(heart) 바깥쪽으로 실천 행위(act)에 의하여 종(種)적으로(specially) 구현되는 사랑을 말합니다. 따라서, the love of piety[즉, dilectio(dilection)]the virtue of piety[즉, pietas(piety)]는 동일한 개념을 나타내는 표현들이 아닙니다.

 

3-4-2-4. 지금 말씀드린 바와 관련하여, 특히, "윤리덕인'piety(pietas)'가 초자연덕인 '애덕(charity)'의 선언(protestation)"이라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신학 대전, IIa, IIae, q101, a3  Reply to Objection 1에 주어진 다음의 설명에 또한 주목합니다:

 

출처: http://www.newadvent.org/summa/3101.htm#article3

(발췌 시작)

On the contrary, It is accounted by Tully (De Invent. Rhet. ii) as a part of justice.

 

이와는 달리,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충실(piety)"은 Tully (De Invent. Rhet. ii)에 의하여 정의(justice)의 한 부분으로서 설명됩니다.

 

I answer that, A special virtue is one that regards an object under a special aspect. Since, then, the nature of justice consists in rendering another person his due, wherever there is a special aspect of something due to a person, there is a special virtue. Now a thing is indebted in a special way to that which is its connatural principle of being and government. And piety regards this principle, inasmuch as it pays duty and homage to our parents and country, and to those who are related thereto. Therefore piety is a special virtue.

 

저는 다음과 같이 답변합니다. 한 개의 종(種)적 덕(a special virtue)은 한 개의 종(種)적 양상(a special aspect) 아래에서 한 개의 대상에 관련한 바로 그 덕을 말합니다. 게다가(then), 정의(justice)의 본성이 다른 인격에게 그자의 몫을 주는 것을 주된 부분으로 가지고 있으므로, 한 인격(a person)에 기인하는 그 무엇(something)이라는 어떤 종(種)적 양상이 있을 때에는 언제든지 한 개의 종(種)적 덕(a special virtue)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사물은 있음(being)과 통치(government)에 있어서의 태생적/타고난 원리(connatural principle)인 바로 그것 쪽으로 어떤 종(種)적 방식으로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충실(piety)"은, 이 덕이 우리의 부모들과 나라에 대하여, 그리고 거기에 관련된 자들에 대하여, 의무(duty)와 경의/존경(homage)를 표하는 한, 바로 이러한 원리에 관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충실(piety)"은 한 개의 종(種)적 덕(a special virtue)입니다.

 

Reply to Objection 1. Just as religion is a protestation of faith, hope and charity, whereby man is primarily directed to God, so again piety is a protestation of the charity we bear towards our parents and country.

 

반대 1에 대한 답변. 경신덕(religion)이, 바로 그것에 의하여 사람이 하느님 쪽으로 첫째로(primarily) 향하게 되는, 신덕(faith), 망덕(hope), 그리고 애덕(charity)에 대한 한 개의 선언(a protestation)인 것과 꼭 마찬가지로, 또한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충실(piety)"[이라는 윤리덕]은, 우리의 부모들과 나라 쪽으로 향하여 우리가 분담하는(bear) 애덕(charity)에 대한 한 개의 선언(a protestatio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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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1) 바로 이 설명에 의하여, "경신덕(religion)"이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충실(piety)"이라는 윤리덕에 포함됨을 우리는 또한 알 수 있다.

 

(2) 여기서 말하는 "우리의 부모들과 나라 쪽으로 향하여 우리가 분담하는(bear) 애덕(charity)"이라는 자연적/본성적 사랑이, 바로 위의 제3-4-2-1항에서 말하는, 자연적/본성적 사랑인 dilection[편애(偏愛)/애모(愛慕)/사전 선호(選好)]와 동일한 사랑임에 반드시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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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4-3. 또 다른 한편으로, "한 말단(a terminal)이 하느님이신, 적어도 3자들 사이"에서, 주는 자와 받는 자들 둘 사이의 상호호혜를 전제로 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의도하시는 바 대로의 상대방의 선(good)의 회복을 위하여 주체(subject)의 의지(will)가 사전 선택적으로 욕망하는(*1) 인격주의적(personalistic) 우의(friendship)라는 관계 안에 있는 사랑(amor)(*2)에 있어 또한 추가적으로 주체(subject)의 의지(will)의 사전 선택에 의한, 따라서 주체(subject)의 심장(heart) 안쪽에 있는, 불평등한 사랑인, dilection[편애(偏愛)/애모(愛慕)/사전 선호(選好)], 즉,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충실이라는 관계 안에 있는 사랑(pious love, love of piety)"의 완미(perfection)(*3) 바로 caritas(charity, 애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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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바로 이 욕망함에는, 상대방에 있어 선의 회복/증진을 위하여(즉, 그 원인이 "하느님의 의지"인 "원초적 사랑"을, 하느님을 위하여, 충족시키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주체(subject)의 의지가 자신에 있어 선의 회복/증진을 위하여(즉, 그 원인이 "하느님의 의지"인 "원초적 사랑"을, 하느님을 위하여, 충족시키기 위하어) 욕망하여야 함을 포함하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2) 게시자 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St. John Paul, Pope)께서 설명하시는 "인격주의(personalism)"에 대한 글은 다음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31_personalism.htm <----- 필독 권고

 

[내용 추가 일자: 2016년 3월 2일]

(*3) 게시자 주: 그리스도교 신학적으로, "완전한(complete)"와 "완미한(perfect, 즉, 완전하고 결함이 없는)"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글은 다음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94.htm <----- 필독 권고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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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말하여, 하느님께서 우리들 쪽으로 하고 계시는, 따라서 초자연적인(supernatural)"한 말단(a terminal)이 하느님이신, 적어도 3자들 사이"에서, 주는 자와 받는 자들 둘 사이의 상호호혜를 전제로 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의도하시는 바 대로의 상대방의 선(good)의 회복을 위하여 주체(subject)의 의지(will)가 사전 선택적으로 욕망하는 인격주의적(personalistic) 우의(friendship)라는 관계 안에 있는 사랑(amor)에 있어 또한 추가적으로 주체(subject)의 의지(will)의 사전 선택에 의한, 따라서 주체(subject)의 심장(heart) 안쪽에 있는, 불평등한 사랑, 즉, dilection[편애(偏愛)/애모(愛慕)/사전 선호(選好)], 즉,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충실이라는 관계 안에 있는 사랑(pious love, love of piety)"은, 초자연적이기 때문에caritas(charity, 애덕)와 동일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자구적 어의(literal sense) 때문에, 4세기 말에 성 예로니모(St. Jerome)가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할 때에, 라틴어 명사 "caritas(charity, 애덕)"에 대응하는 그리스어 명사 "agape"의 동사형을, "dilectio"의 동사형인, "diligo, diligere, dilexi, dilectum "(diligere, 즉, to value or esteem highly[높게 존중하거나 혹은 존경하다])로 번역하였다는 생각이며, 그리고 이것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생각에, 위의 제3-2항에서 지적하고 있는 지적 혹은 의문에 대한 답변이라는 생각입니다.

 

3-4-4. 그리고 피조물인 인간들에게 있어, 바로 이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충실이라는 관계 안에 있는 사랑(pious love, love of piety)"의 완미(perfection)의 소유는, 그리스도교 세례에서 세례를 받는 자의 의지[will, 즉, 이성적 욕구(rational appetite)] 안 하느님에 의한, 초자연덕인 애덕(charity, caritas)의, 주입(infusion)에 의하여, 세례를 받는 자에게, 비로소 처음으로, 가능할 수 있게 됩니다.

(이상, 질문 3에 대한 답변 끝)

 

4.

질문 4: "하느님에 대한 사랑(the love of God)"이라는 차용(借用) 번역 표현과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the love of our neighbor)"이라는 차용(借用) 번역 표현에서 말하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사랑(love)"에 대응하는 교회 라틴어(Church Latin)의 단어는 무엇인지요? amor(love of concupiscence), amicitia(love of friendship), dllectio(dilection), 혹은 caritas(charity, 애덕), 이들 넷 중의 어느 것인지요?

 

질문 4에 대한 답변 시작:

 

4-1. 바로 위의 제3항에서 상당히 자세하게 말씀드린, dllectio[dilection, 편애(偏愛)/애모(愛慕)/사전 선호(選好)]입니다. 즉,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충실이라는 관계 안에 있는 사랑(pious love, love of piety)"입니다.

 

독자들께서는 다음을 클릭하여 라틴어 본문과 영어본 본문에 대하여 직접 정밀하게 비교/검토하시기 바랍니다:

"neighbor" "dilection" "dilectio" site:logicmuseum.com/authors/aquinas/summa <-- 필히 직접 확인 요망

 

바로 위의 주소를 클릭한 후에, 직접 확인을 쉽게 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i) 바로 위의 주소를 클릭한다.

(ii) 가지게 되는 새 화면에서, 예를 들어, 첫 번째 검색 결과 바로 아래에 있는 주소의 오른쪽 끝에 있는 "역삼각형" 메뉴을 클릭한 후에 "저장된 페이지"를 클릭한다.

(iii) 가지게 되는 새 화면에서, 자판기에서 "Shift + F"를 클릭한 후, "love" 라는 단어로 이 화면을 검색한다.

(iv) 라틴어 원문과 영어 번역문을 정밀하게 비교/검토한다.

 

4-2. 그리고 사랑(love, amor)을, amor(love of concupiscence), amicitia(love of friendship), dilectio(dilection), 혹은 caritas(charity, 애덕), 이렇게 넷으로 구분하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a IIae, q26에 주어진 설명 전문(우리말 번역문 포함)은 다음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74.htm [우리말 번역문 포함] <---- 또한 필독 권고

 

4-3.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글에서 우리는, 특히, 이들 넷 중에서 amor(love of concupiscence)dilectio(dilection)사랑의 행위(act)를 나타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영어로 "the love of God"로 번역되고 "the love of our neighbor"로 번역되는 표현들은, 왜냐하면 여기서 "love(사랑)""dilectio(dilection)"이기 때문에, 우리말로 각각 "하느님에 대한 사랑 행위(dilectio)" 그리고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 행위(dilectio)"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이 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사랑 행위(act)"라는 표현에 있어서의 "사랑"은 이 행위와 동일한 바를 말하는 것이 아니므로 때로는, 명확한 구분을 위하여, "원초적 사랑(primal love/primordial love)"라고 불린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원초적 사랑(primal love/primordial love)"에 대하여서는, 이 글에 이어지는 글인,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원초적 사랑과 그 결과들]을 또한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78.htm <----- 필독 권고

 

그리고 여기서의 "dilectio(dilection, 사랑 행위)"은 위의 제3-2항에서의 설명과 위의 제3-4-3항에 의하여, 바로 "애덕(charity)의 실천"이라는 행위(act)를 말함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이상, 질문 4에 대한 답변 끝)

 

5.

바로 위의 제4항에 이어서, 이번 글의 마지막으로,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i) 나해 연중 제31주일 복음 말씀(마르코  12,28ㄴ-34), 

(ii) 매년 사순 제3주간 금요일, 그리고

(iii) 매년 연중 제9주간 목욕일,

미사 중 말씀 전례에서 봉독되는 복음 말씀(마르코  12,28ㄴ-34)에 포함되는, 마르코 복음서 12,30에 대한 해설이기도 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Ia, IIae, q44, a5를 전달해드리고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의 제6항을 또한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32.htm [이 글의 제6항] <----- 필독 권고

http://www.logicmuseum.com/authors/aquinas/summa/Summa-IIb-44-46.htm#q44a5arg1

(이상, 이번 글 끝)

 

기타 참고 자료들: 

"love" "latin words" "amor" "caritas" "dilectio"

http://www.newadvent.org/fathers/120114.htm 제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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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지금까지 약100시간 (여기에는 자료 조사 및 분석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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