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明洞聖堂) 농성 관련 게시판

8월 16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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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환 [franco2] 쪽지 캡슐

1999-08-17 ㅣ No.150

10:00 - 아침부터 찜통 더위다.

      축협 천막 3동에는 10여명의 축협노조원들이 지쳐 잠들어 있다.

      어제 소식에 의하면 서울대에서의 다른 단체원들의 대규모 연행 때문에

      축협이 장소를 구하기 힘들게 됐다는데 어덯게 할지 걱정이다.

        재외동포 특별법은 이제 대통령의 거부를 얻어내기 위해 마지막

      안간힘이다. 조선족 동포들과 함께 우리민족 서로돕기운동본부

      관계자들도 너무 더운지 꼼짝도 못하고 있다.

 

11:00 - 보안법 철폐를 위한 천주교 연대위원회의 전국순회 발대식이 진행

      중이다. 40여명의 지방학생들과 사제1명, 수녀 1명이 보인다. 잠시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지금부터 시작해서 100만인 서명운동을 위해 각 지방

      천주교 연대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이제 출발하겠다는 것이다. 무더위에

      몸 조심 하라고 말하고 뒤로 했다. 왜 저들은 천막을 친다는 소리를

      안할까?

 

14:00 - 축협노조원들이 서서히 모습이 모이기 시작한다.

      급히 홍보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걱정했던

      대로 장소를 구하지 못해 할 수 없이 성당으로 장소를 정했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따지기도 싫다. 규찰대 60여명을 구성했고, 성당마당에서

      절대로 음주는 하지 않겠으며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겠다고 다짐한다.

      내일 17일(화) 민주노총의 금속연맹, 공공연맹, 의료노조, 사무금융노련

      등과 함께 혜화동 마로니에 집회를 마치고 명동성당에서 정리집회로

      10.000여명이 모이면 파업철회를 하고 모두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벌써들

      자리를 잡고 있다. 여하튼 지금한 약속 꼭 지키라고 신신당부했다.

 

15:00 - 민노총 유덕상 수석부위원장이 찾아왔다.

      그간 40여일간의 구류와 보석으로 풀려났다고 말한다. 축하해 주고 다른

      노조원 특히 지하철 노조위원장과 부위원장등 많은 다른 노조원들이 현재

      사면에서 제외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그들에 대해 서로의 걱정을 이야기

      했으며, 민노총 방북 이후의 정부조취에 대해 당당하게 조사받겠다는

      입장을 전해 들었다. 방북문제로 민가협, 전국연합, 범민련, 민노총 등

      6개 단체가 함께 모여 공동대응책을 마련하고 정부와 대처하기 위해 기자

      회견을 끝내고 인사차 왔다는 것이다. 8월 15일을 전후한 하반기

      천막농성이 또 이렇게 시작되는 모양이다.

 

17:00 - 축협노조원 2,000여명이 집결해 투쟁가를 부르며 구호를 외친다.

      1,000여명은 아직도 도착하지 못했다고 알린다. 이곳저곳에서 쉬는 사람,

      안주와 술병을 사들고 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홍보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자, 모두 압수하겠다고 말한다. 또 한 가지 더,

      지금 영안실에는 상 중이니 그 앞은 비워두고 늦게까지 차들이 왕래하니,

      그 사람들에게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고 말했다.

 

18:10 -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소속 학생들과 인사들이 보인다.

      어쩐일일까? 5-60여명의 사람들이 성당마당에 앉아 무엇인가를 듣고있다.

      전국연합 사무국장을 불렀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사무국장은 어제

      서울대에서의 일을 설명한다. 전국단위 소속 단위대들이 범민족대회로

      인한 정부의 탄압에 대응하기 위해 서울대로 집결하고 대회를 마치고

      귀가하는데 경찰들이 느닷없이 479명을 연행해갔고, 계속 연행하려해

      긴급히 이곳으로 피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오늘은 일단 해산하고 내일 다시 집결하자고 설명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어이가 없다.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 분명히 그런일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하지 않았나? 여하튼 오늘은 철수하고 내일 다시 논의하자고

      한 후, 그동안의 경과에 대해 묻자, 8.15 범민족대회를 위해 중국 뻬이징

      에서 남북 대표자 대화를 갖고, 3명이 밀입북 했으며, 이들 모두에게

      수배령이 내렸고, 조사해 배후세력 모두에게 똑같이 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들었다고 말한다.

        이 일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작년 8.15범민족대회를 위해 입북한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허가를 받고 입북한 정의구현사제단 중 사제2명이

      돌아와 구속된 사실이 있다. 따라서 입북한 일에 대한 것은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일로 인해 천막농성을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이 입장을 전해달라고 한 후,

      헤어졌다.

 

20:00 - 언덕을 내려가려다 전국연합이 천막을 치는 모습을 보았다.

      사무국장이 열심히 치고 있다. "이게 무슨 짖이냐? 아까 분명히 오늘은

      안돼고 내일 다시 이야기 하자고 했는데.. 당장 걷으라"고 소리쳤다.

      이런 북새통에 어떻게 차도 한 복판에 천막을 치려고 생각했을까?

      청년 한명이 인상을 쓰며 째려본다. 화가 치밀기 시작했지만 참았다.

      사무국장은 "지금 연로하신 목사님 1분과 노인 4명이 수배령이 내려져

      오늘부터 여기서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자 않았나? 아니면 향린교회로 가라!

      그러나 언덕을 내려가면 당장 연행되기에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민족 서로돕기 서경석 목사에게 협조를 구할 테니 그 천막

      에서 지내도록 하고 당장 천막을 걷으라고 말한 후, 서경석 목사를 찾았

      다. 서경석 목사는 우리도 힘들지만 우리가 향린교회로 가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다.

 

        지금까지 이곳 농성을 담당하면서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그러나 서경석 목사처럼 이야기가 상식적으로 통하는 사람은 더무도

      드물었다. 서경석 목사는 정말로 어려운 처지에서도 희생할 줄 알고

      인내할 줄도 알며, 다른 이들에 대해 배려할 줄도 아는 사람이다.

      모두가 이랬으면 좋겠다.

 

        서경석 목사는 가려는 나를 붙들고 한 마디한다.

      "신부님! 여긴 매일 이러나요? 전 정말 놀랬고, 전 다시는 이곳을 찾지

      않으렵니다. 이런 줄 몰랐습니다. 성당측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몇일

      지내 보았지만 그야말로 이건 무법천지입니다. 신부님은 어떻게 화도

      안내고 그렇게 인내할 수 있습니까? 미안합니다. 이제 이해를 합니다."

      "고맙습니다. 이해를 해 주신다니... 또 왜 제가 화를 안냅니까?

      저도 무척 애를 쓰고 있지만 어떨 땐 아주 힘들어요. 여기 온다고 해결

      돼는 것도 아닌데...." 쓴 웃음만 나올뿐이다.

 

00:30 -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사람으로 가득차 있는, 그래서 더 더워 보인다. 여기저기 잠든 모습,

      수박을 잘라먹는 모습, 무언가 열심히 먹으며 마시며 열틴 토론을 벌이는

      모습, 그러나 냄새는 나지만 병은 보이지 않는다. 물병에다 담은

      모양이다. 규찰대가 아무리 질서를 유지한다고는 하지만 다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너무도 달라진 모습은 보여준다.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은

      아직없다. 막무가내로 떼쓰는 모습도 없다. 저 정도로 질서를 유지하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빨리 오늘이 갔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휴~~~~  하느님!

      용서하세요. 너무 더워 저도 힘들어서 자꾸 짜증만 나는군요.

      그래도 조금은 대견하죠? 화장실이 어딘지도 구분하고 있는 저 사람들요.

      저 사람들 미워하지 않도록 제 마음을 다스려 주세요.

      내일은 10,000여명이랍니다. 이제 3,000여명쯤은 ....

      아! 모르겠습니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라구요? 그럴께요.

      저 사람들 무더위에 탈없도록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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