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울성당 게시판

내가 믿지 않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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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민 [adonai] 쪽지 캡슐

2000-05-12 ㅣ No.1000

내가 믿지 않는 하느님

 

 

나는 이러한 하느님은 결코 믿지 않는다 :

나약이라는 죄악 안에 인간을 '붙들어 매놓는' 하느님.

"나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울먹이며 말하는

정직하고 신실한 한 인간이 시달리고 있는 문제에 대하여 해답을 주지 못하는 하느님.

물질을 죄악시하는 하느님.

고통을 사랑하는 하느님.

인간의 기쁨을 시기하여 중단시키는 하느님.

인간의 이성을 빈약하게 만드는 하느님.

카인의 새 후예를 계속 축복하는 하느님.

마술사와 요술장이인 하느님.

스스로 공포의 대상의 되는 하느님.

자신을 '당신'이라 부르지 못하게 하는 하느님.

특정한 종교, 특정한 종목, 특정 문화, 특정 계층이 독점하도록 허용하는 하느님.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하느님.

복권 추첨에 의해서만 승리할 수 있게 하는 하느님.

손에 쥐고 있는 법조문에 따라 항상 판결을 내리는 심판관 하느님.

고독한 하느님.

사람들의 서툰 실수를 보고 미소짓지 못하는 하느님.

단죄하기를 '즐기는' 하느님.

지옥에 '보내는' 하느님.

기다릴 줄 모르는 하느님.

시험때 항상 만점만을 요구하는 하느님.

철학에 의하여 설명될 수 있는 하느님.

인간을 처벌할 능력이 있는 이들을 사랑하는 하느님.

많은 사람들이 멸시하는 것을 사랑할 줄 모르는 하느님.

비참에서 인간을 구제하지 못하는 하느님.

사람들이 단죄하는 수많은 것을 용서해주지 못하는 하느님.

'어린아이'들이 자신을 더럽힐 수 있고 곧잘 부주의를 범하였음을 이해할 줄 모르는 하느님.

 

인간이 성장하고 쟁취하고 변화되고 심지어

'거의 하느님과 같은 존재'가 될 정도로 높은 경지에 오르지 못하게 방해하는 하느님.

인간이 믿음을 가지려면 인간이기를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하느님.

우리 인간이 벌이는 축제에 전혀 참석하지 않으려는 하느님.

사려깊은 사람, 총명한 사람, 조리정연한 이론에 밝은 사람들에 의해서만 이해되는 하느님.

자기 집 문밖에서는 굶주림과 비참이 심한데

집안에서는 포식하는 부자들로부터 흠숭을받는 하느님.

욕심장이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하느님.

계속 약탈하고 비방을 일삼으면서도 미사참여하러 가는 이들에게 흠숭을 받는 하느님.

오염되지 않도록 장치된 과학 연구실 안에서

수많은 신학자와 교회법 학자들에 의하여 연구의 대상이 되는 하느님.

저지른 실수에 대한 사랑이 감도는 곳에서

당신의 선과 본질에서 나오는 어떤 것을 발견해 낼 줄 모르는 하느님.

정의를 실천하지 않는 이들의 선심을 흡족하게 여기는 하느님.

여인의 아름다운 두 다리를 흘깃 쳐다보는 것,

분심잡념 중에 기도하는 것, 이웃을 비방하는 것,

노동자들의 봉급을 횡령하는 것이나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똑같은 죄로 간주하는 하느님.

성욕을 단죄하는 하느님.

"나에게 대가를 치르라"고 명령하는 하느님.

인간에게 자유를 선사한 데 대하여 가끔 후회하는 하느님.

무질서보다도 불의를 더 원하시는 하느님.

인간이 일하지 않더라도 자기 앞에 무릎 꿇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는 하느님.

역사 안에서 고통당하는 인류의 벅찬 문제를 본체만체하고

그 문제에 입을 다물고 있는 하느님.

사람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영혼에게만 관심을 쏟는 하느님.

미래의 삶에 대한 희망만을 불러일으키고

현세 삶의 혁신에 대하여는 전혀 개의치 않는 하느님.

세상을 위한 임무를 포기하고 자기 형제들의 역사에 무관심한 제자들을 양성하는 하느님.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려고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믿고 있는 이들의 하느님.

손이 더러워질까봐 염려하여 창밖으로 손을 절대로 내밀지 않고

물속에 한 번도 담가보지 않은 이들에 둘어싸여 보호받는 하느님.

"만사가 순조롭습니다"라고 항상 말하는 이들을 좋아하는 하느님.

 

사제는 자기들의 추잡한 계략으로 회칠한 무덤에

성수를 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하느님.

지옥은 만원이고 천당은 거의 공석이라고 믿고 선교하는 사제들의 하느님.

자기 편에 있지 않은 바깥 모든 것과 사람들을 자기가 비판할 수 있다고 자처하는

사제들의 하느님.

전쟁을 정당화시키는 하느님.

양심보다 법을 더 중요시하는 하느님.

정화되지도, 완전해지지도, 성장될 수도 없는 정적이고 정체된 교회를 짖하는 하느님.

모든 것을 위하여 일률적으로 미리 짜여진 해답을 가진 사제들의 하느님.

인간에게 죄지을 수 있는 자유를 절대 허용하지 않는 하느님.

바리사이파의 새로운 후예를 파문하지 않고 계속 내버려두는 하느님.

어떤 죄에 대해서는 용서를 베풀 줄 모르는 하느님.

부자들을 더 좋아하는 하느님.

암을 '발생케 하고', 백혈병을 '보내고', 여자를 '불임시키고'

가장으로 하여금 불쌍한 다섯 자녀를 비참하게 방치해두고 가정을 '버리게 하는' 하느님.

무릎을 꿇고 바치는 기도만을 원하고 교회 안에서만 만날 수 있는 하느님.

우리 사제들이 당신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면

모두 다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주는 하느님.

당신을 몰랐지만 열렬히 원하였거나 찾던 이들을 구원하지 않는 하느님.

어린아이가 처음 죄를 지은 후에 그를 지옥에 '보내는' 하느님.

스스로 멸망을 자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간에게 주지 않는 하느님.

인간을 모든 피조물의 척도로 삼지 않는 하느님.

당신을 배신한 이를 만나러 가지 않는 하느님.

모든 것을 새롭게 하지 못하는 하느님.

각 개인에 따라 그에게 적합하고 개성있는 다른 말을 들려줄 줄 모르는 하느님.

사람들을 위하여 눈물을 한번도 흘려본 적이 없는 하느님.

빛이 되어주지 못하는 하느님.

사랑보다 순결을 더 좋아하는 하느님.

장미꽃 앞에서 향기나 아름다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하느님.

한 어린이나 한 아름다운 여인이나 울고 있는 한 어머니의 눈동자에서

당신 모습을 나타내지 못하는 하느님.

인간이 서로 사랑하는 곳에 현존하지 않는 하느님.

정치와 결탁하는 하느님.

다른 이들이 수고하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이들의 하느님.

해변가에서 기도하는 것을 심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하느님.

당신을 진지하게 원하는 이에게 가끔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하느님.

인간이 사랑하는 세상과 사물을 변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파괴시키려는 하느님.

우리보다도 더 위대하지도 신비롭지도 않은 하느님.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명분하에 우리의 인간 본성과 전혀 다른 행복을 주려는 하느님.

우리의 몸을 부활시키기보다는 영원히 말살시켜버리는 하느님.

사람들을 그 인간 존재 자체로보다는

그들이 소유하는 것이나 주장하는 것으로 평가하는 하느님.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면서 세상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한 이를 친구로 받아들이는 하느님

꽃과 비료, 모든 것을 어루만지고 감싸주는 태양의 풍요로움을 지니지 않은 하느님.

인간을 당신 식탁에 앉히고 그에게 유산을 물려줌으로써

그를 신적 존재가 되게 해주지 못하는 하느님.

우리가 그 안에서 형제들임을 깨닫고 빛이 태양과 별들뿐만 아니라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낙원을 마련해주지 못하는 하느님.

사랑이 아니며 또한

당신의 손길이 닿는 모든 것은 무엇이든지 다 사랑으로 변화시킬 줄 모르는 하느님.

이 땅에서 인간을 애정으로 받아들이고 또 인간의 모든 사랑을 한데 결합시킴으로써

맛보게 되는 희열, 달콤한 감흥, 기쁨, 만족을 그에게 건네줄 줄 모르는 하느님.

인간과 사랑에 빠질 줄 모르는 하느님.

강생의 모든 결과를 수락하면서 참 인간이 되지 않은 하느님.

한 여인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은 하느님.

자신의 모친을 사람들에게 어머니로 기꺼이 내어주지 않는 하느님.

온갖 절망 속에서 내가 희망할 수 없는 하느님을 우리는 믿지 않는다.

그렇다. 우리의 하느님은 전혀 다른 하느님이시다.

 

"수많은 무신론자들이 믿는 하느님은 나도 믿지 않는다."

                                            (동방교회의 총대주교 막시모스 4세)

 

 

<후안 아리아스, 내가 믿지 않는 하느님, 서울(성바오로), 1988, 24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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