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성당 게시판

아직과 이미사이에서...

인쇄

김진국 [yangup] 쪽지 캡슐

1999-11-27 ㅣ No.1181

                                ’아직’과 ’이미’사이

 

                                  ’아직’에 절망할 때

                                     ’이미’를 보아

                             문제 속에 들어있는 답안처럼                 

                              겨울 속에 들어찬 햇봄처럼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 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먼저 허리를 굽혀 흙과 뿌리를 보살피듯

                          우리의 곁의 이미를 품고 길러야 해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

                           하루하루 성실하게 몸으로 생활로

                            내가 먼저 좋은 세상을 살아내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고덕동 신학생입니다.

제가 항상 맘에 품고 가장 좋아하는 시라고 스스럼없이 말 할 수 있는 시들 중 하나인,

박노해 님의 시 "아직과 이미사이"입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죠?

 

2학년 2학기가 20일도 채 남지 않았고,

군대에 갈 날짜도 어느새 2개월여 밖엔 남지 않은 탓인지,

저는 요즘 많은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동료들이 어디 아프냐고 물을 정도로,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기도 하고,

묵상기도 하는 시간도 점점 많아집니다.

괜히 작년에 보던 책이나, 묵상 노트를 뒤적이기도 하고 방을 온통 뒤지기도 합니다.

마치 시한부인생을 사는 말기의 암환자라도 된 듯 합니다.

그러던 중에 이 박노해 님의 시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1학년 때 썼었던 노트도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과 같이 나눠 볼까 합니다.

 

"아직"과 "이미" 라 한다면, 완전하게 서로 반대되는 말이라 흔히들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말들은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정신세계 속에서,

 

왜 그렇게도 같은 의미로, 혹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아직은 아냐."하는 순간에 왜 그렇게도 많은 것들이

 

"이미" 시작되었고 이뤄져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들 중 누군가가 "난 아직 어른이 아니라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책임질 수 없어"할 때

 

그 사람은 왜 이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또 누군가가 "난 아직은 저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있어, 아직 XXX가 없으니까."

 

라고 말 할 때, 왜 은근하게 마음속으로는, 이미 그 누군가를 향해 가고 있는지...

 

또, 또, 모신학생이 "나는 아직 신학생일 뿐이니까, 그럭저럭 지내도 뭐 어떨라구" 할 때,

 

왜 다들 "저 사람은 신학생이니까, 이미 신부님들 같이 정말 거룩하고 성실한 사람이야."

 

하는 것인지...

 

또,또,또 왜 다들 "주님의 나라가 임하소서, 어서 오소서."하며 아직 오시지 않고 계신

 

주님을 기다릴 때,

 

그 때, 왜 주님은 이미 오셔서는 빙그레 웃음 짓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전부 모르겠습니다. 무슨 이유입니까?

 

참! 또 하나 모르는 것,

 

왜 나는 이 모든 질문들을 아직 모르겠다고 하면서,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많은 것들에 대해 쉽게도 ’아직’하며 절망하려 하지만

 

그 속에 ’이미’ 감춰진 희망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는 것,

 

작은 것 속에 감춰진, 이상하리 만큼 큰 속뜻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제는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렸던 생각에서 나온 말장난으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고작 1년 전인데도 말이죠.

그러나, 좋습니다. 지나버린 생각을 다시 추스릴 수 있어서 좋습니다.

주님의 나라...

이미 와 있는 거라 믿습니다.

아직 눈이 뜨이질 않았을 뿐입니다.

이제 눈만 크게 뜨면 주님의 나라를 바라 볼 수 있습니다.

저기 계신 주님께, 눈을 뜨게 해 달라고 빌어야겠습니다.

그 분의 옷자락이라도 잡아야겠습니다.

 

 

찌이익--- 앗!!! 죄송해요...TT

히히히



70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