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주님 수난 성지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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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옥 [yimariaogi] 쪽지 캡슐

2008-03-18 ㅣ No.7956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우리는 가끔 살면서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릴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오해와 
    시기질투에 시달릴 때도 있다. 
    
    그래서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내가 한 것처럼 소문이 날 때가 있고, 
    내가 하고자 했던 방향과는 정반대로 
    사건과 상황이 흘러가기도 하고, 
    사람들의 의심과 질투 속에서 
    내가 하려는 일이 아주 힘들게 
    진행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그동안 자신이 
    헌신적으로 일해 왔던 노고가 억울하고, 
    지금까지 자신이 쏟아왔던 
    정열과 애정이 아깝고 후회스럽기 
    짝이 없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다시는 보고도 싶지 않고, 
    다시는 함께 일하고 싶지 않고, 
    그런 일엔 끼고도 싶지 않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끊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약해지고 지쳐서 
    자기 자신을 자책하고 자학하게 된다. 
    
    이러한 자기 폐쇄의 경우에는 
    자폐아처럼 사람들을 피해 숨거나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고 
    자기 홀로만의 세계로 들어가 
    스스로를 격리하고 은폐된 삶을 살게 된다. 
    아니면, 복수심에 불타게 된다. 
    
    
    결국 어둠의 세력에 
    자신을 빼앗기고 만다. 
    이런 모습은 우리 자신과 
    우리가 기대하고 의지했던 사람들이 
    빛을 향해 걸어가면서 겪을 수 있는 
    최고의 유혹이요 함정이다.
    
    
    ‘마더 데레사’라는 영화에서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거라고 
    비난받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해라.
    
    
    당신이 성실하면 
    거짓된 친구들과 
    참된 적을 만날 것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받을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당신이 여러 해 동안 
    만든 것이 하룻밤에 
    무너질지 모른다. 
    그래도 만들라.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와주면 공격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도와줘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면 
    당신은 발길로 차일 것이다. 
    그래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어라.”
    
    
    오늘 예수님은 
    예수님께서 베푼 기적과 
    사랑의 대상인 인간들로부터 
    철저히 버림 받으신다. 
    그들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셨을까?
    
    
    어떻게든 하느님의 율법의 본 뜻을 
    깨우치도록 하기 위해 가르치며 
    설득했던 종교지도자들...
    
    어떻게든 하느님의 감추어진 
    진리와 사랑을 깨우치도록 가르치며 
    몸소 양성했던 제자들...
    
    어떻게든 하느님의 사랑을 
    기적으로 드러내면서까지 가르쳐주고 
    고쳐주려고 했던 백성들...
    
    
    그들 모두 
    예수님께 등을 돌리며 
    죽이려고 덤벼드는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겪으셨던 
    고통과 좌절은 얼마나 컸을까? 
    
    
    그리고 그 고통 앞에서 
    예수님의 선택은 무엇이었는가?
    우리는 힘이 없어 포기하고 만다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 모두를 벌하고도 
    남을만한 힘이 있으면서도, 
    그들을 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의 손아귀에 자기를 맡기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실패와도 같은 
    현실 앞에서 자신의 사명을 
    포기하지도 않으셨고, 
    예수님의 사명을 억지로 이루기 위해 
    기적의 힘을 사용하지도 않으셨다. 
    아니 그 사명은 인간을 구하기 위해 
    인간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줌으로써 
    죽고 마는 사랑이었기에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을 선택하셨다.
    
    
    악마는 예수님께서 
    사명을 포기하고 실패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시기와 
    질투와 원망으로 들끓게 했고, 
    예수님께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모욕을 안겨주었다. 
    
    
    악마는 예수님께서 
    백성들에게 실망하고 분노해서 
    그 사명을 포기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실망하고 분노하여 
    보복하고 벌하기 보다는 
    백성들이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너그럽게 헤아려주시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버지 하느님께 대신 용서를 청하신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루가 23, 34)
    
    
    
    악마에게는 승리도 
    승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실패에 가까웠다. 
    미움과 과오로 예수님에게 
    죽음을 선고한 악의 세력에게 
    예수님께서는 악으로 대항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받아주셨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사랑 안에 
    악마의 계략이 녹아난 것이다. 
    악마의 계략대로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실패로 끝나지 않고 
    구원을 위한 거룩한 희생으로 승화된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예수님 안에서 
    구원의 희망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54)
    
    
    죽음으로 그치지 않는 신앙,
    죽음으로 꺼지지 않는 희망,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예수님의 사명이 
    오늘 우리 교회에 맡겨져 있다.
    
    오늘,
    주님께서 나에게 
    커다란 사랑을 심어주시어
    내가 분노와 실망과 포기와 
    죽음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주님께 나를 봉헌하며
    주님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하면서
    주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우리도 구원을 향한 
    희생의 길을 따라가기로 하자.
    
    
    
    - 심흥보 신부님의 강론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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