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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대축일]부활.부활시기♬Monastery Be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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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4-04-10 ㅣ No.1706

 

[이콘] 예수 고성소(古聖所)에 내려가심-부활. 러시아.16세기.레크링 하우젠 미술관 소장

 

구세주여, 당신은 고성소에까지 내려가시어

전능자로서 그 자물쇠를 부수시고

창조자로서 당신 자신과 함께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어,

죽음의 가시를 꺾으시고 저주에서 아담을 구원하셨나이다.

주여, 우리들은 간절히 원하나이다. 우리를 구원하소서.

 

부활제 성무 조과 트리파리온 중

 

 

예수 부활대축일

EASTER SUNDAY

Great and Holy Pascha

Pasqua di Risurrezione del Signore

celebrazione mobile-Solennita (2004.4.11,2005.3.2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원 역사의 절정이며,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온갖 죄악과 죽음의 사슬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이날은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

오늘은 바로 우리의 완전한 해방을 경축하는 참다운 해방절입니다.

 

 

[이콘]요한복음서에 의한 이콘.러시아.노브고로드화파.

102.4x79.1cm.15세기말-16세기초.트레챠코프 미술관

 

네 복음서가 각기 다르게 전해 주는 예수의 부활의 신비를

서방교회에서는 주로 찬란한 광채에 싸여 무덤에서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오시는 그리스도로 묘사한다.

반면에 동방 교회에서는 아무도 자기가 예수 부활을 목격했노라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 따라 기록된 복음서의 부활 신앙을 이콘에 담는다.

그래서 ’향료를 들고 무덤으로 간 여인들’과

외경의 묘사에 따라 죽은 이들의 세계인 ’하데스(임보,고성소)로 내려가시는 그리스도’가

부활 이콘의 전형이 되었다.

 

*이콘.신비의 미(교회미술 아카데미 장긍선신부 편저)에서

 

 

요한20,1-12

1 안식일 다음 날 이른 새벽의 일이었다.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무덤에 가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이미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달음질을 하여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에게 가서

"누군가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알려 주었다.

3 이 말을 듣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곧 떠나 무덤으로 향하였다.

4 두 사람이 같이 달음질쳐 갔지만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 가 먼저 무덤에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수의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으나 안에 들어 가지는 않았다.

6 곧 뒤따라온 시몬 베드로가 무덤 안에 들어 가 그도 역시 수의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7 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수의와 함께 흩어져 있지 않고 따로 한 곳에 잘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 가서 보고 믿었다.

9 그들은 그 때까지도 예수께서 죽었다가 반드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성서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10 두 제자는 숙소로 다시 돌아 갔다.

11 한편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던 마리아가 몸을 굽혀 무덤 속을 들여다 보니

12 흰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의 시체를 모셨던 자리 머리맡에 있었고 또 한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 이 날이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

   이 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

 

○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이스라엘 가문아, 일컬어라, "영원하신 그 사랑." ◎

 

○ "주님의 오른손이 큰 일을 하셨도다.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일으키셨도다."

   나는 죽지 않으리라. 살아 보리라,

   주님의 장하신 일을 이야기하고자. ◎

 

○ 집 짓는 자들 내버렸던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이다.

   주님께서 이루신 일이옵기에,

   저희 눈에 놀랍게만 보이나이다. ◎

 

 

[이콘]마르코복음서에 의한 이콘.러시아.16세기경

 

주님 부활 대축일

초기 교회의 파스카 대축일은 거룩한 밤(성토요일)에 시작하여 새벽이 되기 전에 끝마쳤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향료를 가지고 간 여인들에게 전한 천사의 말로부터 시작하여

저녁 무렵에 사도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사건에 이르는 수많은 사건에 대한 기억을 파스카 주일 전체에 걸쳐 되새기기를 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4세기 예루살렘에서는 오후에 거행하는 전례가 생겨납니다.

 

또 7세기에 이르러서는 로마 교회에서 파스카 저녁기도를 거행하였다고 합니다.

오후에 새 영세자들과 신자들은 라떼란 대성전으로 모여 ’기리에 엘레이손’을 부르는 가운데 성직자가 행렬을 지어 입당함으로써 저녁기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후 중세기에 수많은 예절들이 생겨나고 이 예절들은 부활절 아침의 특징적인 전례로 자리잡게 됩니다.

9세기에는 파스카 전야의 마지막 전례에 참여한 사람들이 서로 친교의 표시를 하며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최근까지도 동방 전례에서는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한 두 번은 본 영화「부활」에는 이러한 장면이 있습니다.

 

이날 새벽에 드리는 미사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빈 무덤을 발견하는 부분을 읽습니다.

이 복음 구절은 전야에 읽었던 천사가 여인들에게 발현하는 기사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발현한 기사 사이에서 시간적으로 중간에 해당하는 대목입니다.

말씀의 전례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파스카를 증언하는 부분(사도 10, 34-43)으로 시작합니다.

이 구절을 시작으로 성령 강림 때까지 사도행전은 계속해서 읽혀집니다.

이어서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유다인의 파스카와 비교하는 바오로의 글(1고린 5, 6-8)이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람답게 살 것을 촉구하는 글(골로 3, 1-4) 가운데 하나를 읽기도 합니다.

 

 

부활 후 축제  

부활후 8부가 1급 축일로 되어 있다.

몇 세기를 두고 8부가 다 공휴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부활 8부 동안 같은 사상을 가지고 미사를 지내면서, 순회 미사를 봉헌했다. (초대교회)

이때 새로 영세한 모든 사람들이 참석했다.

오후에는 그들이 모여 자신이 영세한 성당을 방문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리고 한 주간동안, 영세 때 입었던 흰옷을 입고 다녔다.

이 축제 구간의 맺음을 Dominica in albis(사백주일) 이라고 했다.

이는 새로 영세한 자가 마지막으로 흰옷을 입는 날이라는 의미이다.

 

후대에는 토요일로 부활전야 미사가 넘어가게 됨에 따라 토요일에 8부가 끝나게 되었다.

그래서 사백주일도 흰옷을 벗어버리고 참례하는 첫 미사가 되었다.

그 전에 영세한 사람들이 자신의 영세 기념일을 이 8부 동안 중 하루를 정해 지내고자 했었다.

이것은 Pascha annotinum이라 하여, 부활 월요일에 지내는 것이 보통이었고, 이것이 영세 기념 축제일로 되었다.

 

부활 후 7주간을 모두 축제의 시기로 지내왔다.

이것을 50일제(Pentecostes)라는 말로 명칭을 붙였다.

유대인의 축제를 본따서 만든 축제의 시기인 것이다. 이 50일 동안은 재를 지키지 않고, 무릎을 꿇지 않으며, 기도할 때 서서 기도한다.

이것의 영향이 부활 주간의 삼종 때에 서서 기도하는 것이고, 사제는 기쁨의 상징인 흰색 제의를 입는 것이다.

 

요한 복음서를 보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만남,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만나시는 승천이 50일 기간 중에 표현되어 있다.

4세기부터 50일 기간 중에서도, 2개의 축일을 특별하게 지냈다.

그것은 예수 승천 대축일과 성령 강림 축일이었다.

이 축일들은 그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보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새로운 차원에서 밝혀 주는 축제이다.

이것은 우리 구원을 위한 축제이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회홈에서)

 

 

[Russian ICON] The Resurrection.  XVI c., State Museum


부활 시기

부활 팔일축제 내 월요일 ~ 성령 강림 대축일

 

부활 팔일축제가 끝날 때까지 파견 때에 "미사가 끝났으니 ……"에 "알렐루야"를 두 번 덧붙인다.

성야 미사는 부활 주일의 미사이다.

이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 성야 미사를 드린 사제들도 부활 둘째 미사를 혼자 또는 공동으로 다시 드릴 수 있으며,

각각 미사 예물을 받을 수 있다.

영성체는 미사 중에만 허락된다. 성야 미사에 영성체한 교우들도 부활 당일의 미사에 다시 영성체할 수 있다.

부활초는 성령 강림 주일까지 제대나 독서대 곁에 둔다.   

 

주일과 부활 팔일축제 내에는 다른 모든 축제 거행이 금지된다.

대축일은 옮겨 지내고 축일과 기념일은 올해에는 생략된다.

주일이 아닌 다른 날에는 모든 축제 거행이 허용된다.

 

주일과 부활 팔일축제 내에는 여러 가지 기원 미사와 신심 미사는 금지된다.

부활 팔일축제 후 평일에는 매우 중대한 사목적 필요나 선익이 있을 때에만 허용된다.

보통 위령 미사는 언제나 금지된다.

입당송과 영성체송에는, 말마디의 뜻이 잘 맞지 않는 경우가 아니면, 언제나 "알렐루야"를 붙인다.

(가톨릭홈에서)

 

 

Supper at Emmaus-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48.Oil on canvas, 42 x 60 cm.Musee du Louvre, Paris

 

루가24,13-35

13 바로 그 날 거기 모였던 사람들 중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한 삼십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엠마오라는 동네로 걸어가면서

14 이 즈음에 일어난 모든 사건에 대하여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15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토론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가가서 나란히 걸어가셨다.

16 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려져서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하였다.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길을 걸으면서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하고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인 채 걸음을 멈추었다.

18 그리고 글레오파라는 사람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사람으로서 요새 며칠 동안에 거기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다니, 그런 사람이 당신말고 어디 또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께서 "무슨 일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에 관한 일이오. 그분은 하느님과 모든 백성들 앞에서 그 하신 일과 말씀에 큰 능력을 보이신 예언자였습니다.

20 그런데 대사제들과 우리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분을 관헌에게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형을 당하게 하였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분이라고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미 처형을 당하셨고, 더구나 그 일이 있은 지도 벌써 사흘째나 됩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인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을 찾아가 보았더니

23 그분의 시체가 없어졌더랍니다. 그뿐만 아니라 천사들이 나타나 그분은 살아 계시다고 일러주더라는 것이었습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보았으나 과연 그 여자들의 말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25 그 때에 예수께서 "너희는 어리석기도 하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그렇게도 믿기가 어려우냐?

26 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하시며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하여 성서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동네에 거의 다다랐을 때에 예수께서 더 멀리 가시려는 듯이 보이자

29 그들은 "이젠 날도 저물어 저녁이 다 되었으니 여기서 우리와 함께 묵어가십시오." 하고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집으로 들어가셨다.

30 예수께서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주셨다.

31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는데 예수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32 그들은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 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33 그들은 곧 그 곳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가보았더니 거기에 열한 제자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34 주께서 확실히 다시 살아나셔서 시몬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35 그 두 사람도 길에서 당한 일과 빵을 떼어주실 때에야 비로소 그분이 예수시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활  復活

라틴어 Resurrectio Christi

영어 Resurrection of christ

 

인간은 죽더라도 그 죽음을 넘어서 부분적으로나마 살아 남는다는 통념과 "나 자신도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우리의 염원이다.

종교인들이나 철학가들은, 육신과 영원을 구별하는 이원론적인 인간학에 따라,

인간의 장래에 있어서 흙으로 돌아갈 육신은 땅에 묻히지만 영혼은 불멸하다고 가르쳐 왔다.

그리고 성교회는 인간의 사후생명에 대하여 반신반의하는 인류 앞에서 "하느님께서는 나자렛 출신 예수란 분을 부활시키셨다는 기막힌 소식,

즉 예수께서 몸을 포함해서 온전한 인간으로 영원히 살아계신다"는 것을 믿고 또 선포하고 있다.

사실 이 교리는 인간의 갈망을 채워주기보다는 오히려 현대인들을 당황케 만든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부활하신 순간부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진면목이 드러났으며, 인간의 본성 및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새로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이 부활이 그들 신앙의 원천이며 핵심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존망이 걸린 중요한 교리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고 …………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장 가련한 사람일 것입니다"(1고린 15:17­19).

 

 

1. 예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어나셨다 :

부활교리를 이해하려면 우선 신약성서에 산재해 있는 초기 교회의 신앙고백문들을 살펴보는 길밖에 없다.

바울로 사도가 서간들을 작성하기 전에 이미 교회는 유태인들과 외교인들을 상대로 예수의 부활을 선포하고

(로마 1:3­4, 8:11, 10:9, 갈라 1:1, 데살 1:10, 사도 17:30­31)설명할 때(1고린 15, 로마 6:1­11),

또는 전례를 거행하는 도중에 찬송가를 부를 때(필립 2:6­11, 디모 3:16, 베드 3:18­22)에 고정된 용어로 예수의 부활을 고백하고 이었다.

 

부활하신 예수께 대한 체험을 겪은 첫 증인들(증인들의 명단 1고린 15:5­8)은 구약성서에서 발췌된 귀절들

(특히 2사무 7:12­14, 이사 53:1­12, 시편 2, 12, 110)을 재해석하면서 독특한 표현들을 선택하였다.

 

예를들면, ’일어났다’는 동사(1데살 4:14, 로마 1:3­4, 사도 2:24·32)나 죽음에서 ’깨어났다’는 동사(1고린 15:4·12­14, 2고린 5:15, 로마 4:25)는

이미 사무엘 후서 7:12­14에 나온 말이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대당적(對當的)인 표현(고린 5:5, 로마 6:9, 4:10, 1데살 5:14)은 신명기 32:39

(또는 2:6, 2열왕 10:7)에서 이미 사용되었던 용어다.

또한 ’올림을 받았다’는 표현(필립 2:9, 요한 8:28, 사도 2:33, 5:31)은 다니엘서 7:13과 이사야서 52:13에서 이미 나왔다.

 

요약해서 말하면,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계신다"는 신비는 처음부터 서로 보완하는 두 개념, 즉 ’부활’과 ’현양’으로 표현되었다.

부활은 "하느님께서 충실한 의인(義人)을 일으켜 주시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보다 나은 상태로 회복시킨다"는 뜻이며,

현양은 묵시문학적 의미에 따라 비하 상태와 대조적인 ’의인의 높임’을 말하고 있다.

 

나자렛 출신 예수의 지상생활을 전해 주는 복음서에 의하면, 그분은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마르 1:15) 당신 자신에 대한 신앙을 요구하셨고

(마르 5:34, 9:23, 10:52) 당신을 통해서 하느님의 나라가 구현되리라고 주장하셨다(마르 4:1-34).

또한 그분은 하느님의 권리를 되찾으셨고(마르 11:17-18)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부르시며(마르 14:36) 부자관계를 주장하셨다.

 

유태교의 장상들을 당황케 하는 전례없는 주장과 해방을 기다리던 대중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활동 때문에 예수께서는 죽음을 대면하게 되었다.

그래서 유태교의 장상들이, 그분을 하느님께 대한 모독자라고 단죄하며(마르 2:7, 요한 19:7) 로마제국의 힘을 빌어 사형에 처하였다.

결국 예수께서는 십자가 형틀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시고 묻히셨다(마르 15:44-46).

그러나 예수께서 처형되신 지 며칠 뒤에 그분의 제자들이 나서서, "살아 있는 자들의 하느님께서는(마르 12:27) 당신의 성신을 통해서(로마 1:3-4, 8:11)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그 예수를 위해’(사도 2:32­36) 몸소 개입하시어 그 분을 살리셨다"고 주장하였다(사도 4:20).

이 개입으로써 "예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어나셨다"(1고린 15:20, 로마 6:4·9, 7:4, 1데살 1:10, 갈라 1:1, 골로 2:12, 에페 1:20)는 사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충실한 증인이신 예수께 존재와 생명을 되돌려 주심으로써 죽음에 대한 주권을 드러내시며 한 인간을 새롭게 창조하셨다는 뜻이다.

곧 하느님께서는 당신 증인을 회복시키시고 복권시키셨는데(1디모 3:16), 이는 증언의 타당성을 드러내실 뿐만 아니라

증인을 인격적으로, 즉 몸을 비롯하여 인간 전체를 보다 나은 상태로 옮겨 주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한 원리로 구성되어 있다는 단원론적인 성서의 인간학(人間學)뿐 이니라, 현대 인간학의 요구에 따라 몸이 곧 인간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이원론적인 인간학에서도 육신과 관계없는 영혼이란 있을 수 없고, 또한 영혼이 없는 육신도 있을 수 없다

(영혼불멸의 교리는 죽은 뒤에 영혼이 독립된 존재로 존재한다는 뜻보다는 현세와 후세의 연관성을 뜻한다).

그러나 부활하신 인간 예수께서는 이제 생리학적인 생기(生氣)로 사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생명인 성신의 힘으로 살아 계신다(로마 8:11, 1고린 15:45).

이런 의미에서 부활은, 우리의 현세계로 돌아오는 단순한 귀환도 아니며 더구나 소생도 아니다.

그분은 새로운 형태로, 새 차원에서 물질계와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간들을 되찾아 주셨다(마태28:20).

바울로 사도는 믿는 이들의 부활문제를 언급할 때마다(1데살 4:13-18, 1고린 15:1-58) 부활한 몸의 실재성과 동시에 몸의 변화를 강조한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죽음에서 벗어나신 동시에 높임을 받으시고 하늘에 올라가셨다"

(필립 2:9, 사도 2:33, 5:31, 로마 10:6-9, 에페 4:8-10)는 명제도 의미가 있다.

하느님께서 그분을 위하여 개입하신 것은, 예수의 주장과 죽음의 상황을 가만해 볼 때,

그분이 처음부터 하느님과 특수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말해 주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한낱 인간에 불과한 존재로서 하느님의 아들 신분을 자칭하던 모독자를 살리실 이유가 없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늘에 올라가셨다는 말과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으셨다는 상징적인 표현들은, 실제로 예수의 신성을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과 공동으로 소유하시는 이 유일한 신성을 부자관계를 통해서 누리신다.

초기 교회는 예수의 신성을 고백하기 위하여 하느님께 국한되었던 주님이란 존칭을 예수께 그대로 적용하였다(1고린 1:2-3, 2고린 1:2, 1데살 1:1).

유태계 출신의 예루살렘 초대 신자들은, 시편 110:2에 따라 예수를 ’마레’ 즉 주님이라고 불렀다.

’마라나타’(’주여, 오소서’ 또는 ’주님이 오신다’는 뜻)라는 전례용어는 고린토 전서 16:22와 묵시록 22:20(디다 10:6 참조)에 전수되었다.

 

그리고 그리스 언어권 출신의 예루살렘 신자들이 사용하던 ’주님이신 예수’란 표현은, 그들의 첫 신앙고백문이라고 할 수 있다(1고린 12:3, 로마 10:9, 필립 2:11).

요약해서 말하면, 하느님의 아드님은 신성에 따라 영원토록 계시고, 인간이 되신 순간부터는 신성과 인간성에 따라 살으셨다.

하느님의 아드님은 죽음으로 인하여 파괴되었던 인간성을 부활을 통해서 되찾으셨기에 이제 두 본성에 따라 한 주체로 살아계신다.

신성과 인간성을 같은 차원에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아드님은 두 양상으로 시신다.

 

하느님의 아드님은, 잠시 인간으로서 사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부활은 항구적인 몸되심(인간화)을 말한다.

삼위일체에 관한 교리뿐 아니라 아드님의 인간화의 신비까지도 부활 신비에서 연역되었다.

아드님의 인성은 신비를 계시해 주는 수단이었고, 부활하신 몸은 계시의 내용을 보장해 준다(사도 13:33, 로마 1:4).

 

 

2. 부활 신비에 접근하는 길, 증인 등의 체험 :

"예수께서 죽음을 넘어서 살아 계신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예수의 죽음으로 실망하던 제자들이 불과 며칠 사이에 태도를 바꾸어 예수의 부활을 용감하게 선포했는데,

이는 어떤 획기적인 사건이 없는 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사태이다.

만일 그들이 살아 계신 예수를 체험하지 않았다면 감히 나서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체험한 부활이 역사성을 띤 사건인가.

우선 역사성이란 말은, 우리 인간 세계에 속해있는 사건을 두고 쓰는 말이다.

그런데 부활은 현세와 후세 사이에 위치하는 사건이며 후세에 가서 인간이 누릴 상태를 말하고 있으니만큼 이런 의미에서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이라 할 수 없다

(곧 초자연적 사건이다).

또한 역사성이란, 현대 사학이 요구하는 바와 같이 문헌에 입각하여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을 뜻하는데

- 부활에 대한 선포활동은 역사적인 사건일지라도 - 이런 의미에서도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다.

그러나 그 결과를 볼 때, 부활은 실재성있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또 다른 한편, 부활은 하느님이 개입하시는 행위이며 예수께서 천상세계에 계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역사성을 부정하는 것은 부활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부활의 성격을 살리는 태도라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 세상에 개입하실 때 항상 표징을 남겨 주신다.

표징이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과 관련된 역사적인 사건으로서 하느님을 향하여 시선을 돌리게 하는 구체적인 사실이나 사물이다.

 

예수의 부활과 관련된 표징들을 본다면, 빈 무덤의 발견, 예수의 발현,

예수를 거부하던 유태인들의 회개와 입교(入敎), 성령의 활동에 뒤따르는 기적들 등을 들 수 있다.

이 모든 표징들을 수렴하여 종합 분석해 보면, 이 표징들은 자연과학자들이 요구하는 증거가 못 된다.

 

이 표징들은 무시할 수 없는 근거는 되지만 다만 신앙에 의해 해석해야 한다.

요약해서 말하면, 하느님의 행위인 부활은 역사를 초월하긴 하지만 우리 인간 세계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행위가 아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표징들이 다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행위에 접근하는 데는 신앙이 필요하다.

 

신앙이란 예수의 부활을 믿는 행위로서 하느님의 순수한 선물, 곧 은총이다.

예수를 부활시킨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아드님과 성령을 통해서(사도2:33­34) 우리가 믿도록 하신다.

이 점에서 볼 때 사도들의 입장과 오늘의 우리 입장은 같다. 그리고 신앙이란 믿을 내용을 뜻하기도 한다.

 

"예수께서 죽음을 넘어서 살아 계신다"는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로 부활에 대한 증인들의 체험에서 나왔다.

사도들의 체험과 증언은 신앙의 내용을 밝히는 데 있어서 필수요건이다. 이 체험은 주로 예수의 발현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체험은 표징에 불과하다.

둘째로는 지상에 계실 때 예수께서 남기신 언행 역시 필수적인 것이다(요한 2:22, 루가 24:44, 마르 16:7과 14:28).

예수께서는 죽으시기 전에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 부르셨고 당신의 훗날을 아버지께 맡기셨으니, 이로써 부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의 언행을 전수하는 첫 증인들의 역할도 결정적인 요건이다(사도 1:21­22).

셋째로 구약성서도 부활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예수와 사도들의 해석에 따라, 구약성서가 하느님께서 인간 역사에 개입하시는 사실과 그 방법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루가 24:27, 44, 1고린 15:3­4 ’성서에 따라’).

그래서 초대 교회는 예수의 부활을 설명하기 위하여 구약성서를 골고루 인용하였다.

복음사가들은 복음서를 끝맺으면서 부활교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부활에 대한 첫 증인들의 체험, 즉 빈 무덤 이야기와 예수의 발현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바울로의 체험담(1고린 15:8, 필립 3:12, 갈라 1:15)을 제외하고는 제자들의 체험이 비교적 늦게 기록된 셈이다.

초기교회가 빈 무덤의 발견 사실을 알면서도(사도 2:25-32, 13:35-37) 강조하지 않았고, 나아가 예수의 발현 내용보다도 사도들의 증언에 역점을 두었다.

 

바로 그 때문에 증인들의 명단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베드로와 11제자 1고린 15:5, 마르 16:17, 루가 24:34-36, 요한 20:19-20, 21:2, 예수의 형제와 사도들 1고린 15:7, 루가 24:18, 여자들 마르 16:1, 마태 28:9-10, 요한 20:1).

 

무덤이 열려 있고 비어 있었다는 전승은 여자들과 베드로가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간단한 점검으로 끝났다.

무덤이 비어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예수께서 부활하셨음을 증명한다고 결론짓는 일은 금물이지만, 이는 부활의 신비를 암시해 주는 표징이라고 볼 수 있다.

나중에 천사의 입을 빌어 교회의 신앙고백문을 첨가하고 난 뒤에 예수의 부활에 대하여 유태인들과의 논쟁이 심해지자 호교론적(護敎論的)인 요소도 다시 첨가되었다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치지 못했다 마태 27:62-66, 28:11-15, 요한 20:6-7, 마리아가 예수를 동산지기와 혼동하지 않았다 요한 20:15-16).

 

마지막으로 마태오 복음사가는 신학적 요소까지 상술하였다(마태 28:2-4).

발현의 시기와 장소 문제를 제쳐놓고서 그 내용상 확인의 발현과 파견의 발현 이야기만 보아도 예수 발현에 관한 전승들은 다양하다.

그러나 이 전승들의 공통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증인들이 하나같이 예수를 봤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예수께서 증인들에게 보이셨다"(1고린 15:5-7, 루가 24:34, 사도 13:31, 디모 3:16).

그 외에 ’본다’를 뜻하는 여러 동사가 많이 사용되어 있다(루가 24:24, 요한 20:14, 마르 16:11).

’본다’는 말은 성서적인 표현이며(출애 3:2, 루가 1:11, 마르 9:4, 마태 17:9),

이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셔서 실제적이고도 불가시적인 천상 세계에 속해 있는 인물이나 사물을 시각으로 인지하는 행위를 뜻한다.

 

다시 말해서 이 감각은 환상도 아니고 환각도 아니다. 그러나 증인들이 살아 계신 예수의 모습을 보았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주신 신앙과 예수께서 지상에서 하시던 말씀 없이는, 인간으로서 부활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의 정체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의 발현은 표징이다.

 

 

3. 부활의 결과, 새 생활 :

신약성서를 훑어보면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 계신다"고 선포하고 고백하는 초기 교회의 최초의 신앙고백문을 발견할 수 있다.

각 복음서들의 뒷부분에서 복음사가들은 부활교리를 소개하면서 첫 증인들이 어떻게 부활 신비에 접근했는지에 대하여 그들의 체험을 묘사해 주었다.

예수의 지상생활을 전수하는 복음서를 비롯하여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대전제하에 기록된 신약성서 전체는 한마디로 말해서 부활의 효과를 부연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예수의 부활을 통해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최종적인 계시가 이루어졌고 아울러 하느님을 모시는 신앙생활도 가능하게 되었다.

인간이 되신 아드님이신 예수를 부활시키신 아버지께서 성령을 통해서 부활을 믿게 하셨으니(1고린 12:3, 요한 15:26) 이제 부활은 우리 신앙의 원천이며 그 대상이다.

인간이 이러한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하느님께 신앙으로 응답하고 있기 때문에, 죄와 온갖 악에서 인간을 구제하는 구원도 이루어졌다.

죄의 육체를 취하시고(로마 8:3) 죄인이 아니신데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신’(2고린 5:21) 아드님이 십자가 위에서는 아버지의 용서를 드러내셨고,

부활을 통해서는 우리 구원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이셨다.

 

아버지께서는 죄인들이 빼앗아 간 생명을 아드님께 되돌려 주심으로써 아드님을 통해서 죄인들을 살리시는 의도를 밝히셨다(로마 5:8-11).

구원은 단지 죄의 용서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아빠’, 아버지를 부르는 성령의 현존(로마 8:15, 갈라 4:6)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으로써 완성된다.

변함없는 계획에 따라 인간들을 창조하시고 살리시는 생명의 하느님께서는 부활하신 몸을 화해와 생명의 매개체로 삼으시고(로마 7:4)

인간으로서 부활하신 아드님을 통해서 인간들이 누릴 영복을 보장해 주신다(로마 8:17-30, 1고린 2:6-16, 에페 2:4-10).

 

예수께서는 많은 형제들의 맏아들이시고(로마 8:29), 죽은 이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최초의 분이시며, 만물의 맏물이시다(골로 1:18, 사도 26:23, 묵시 1:5).

이로써 구원이 온 인류에게 확대되었다(사도 15:7-11).

신앙생활은 부활한 생활이며(에페 2:6, 골로 3:1) 몸의 부활을 향하는 생활이다(로마 8:11, 요한 5:29).

지금 그분을 믿는 이들은 온갖 좋은 일을 행하여 열매를 맺으며(골로 1:10),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닮아 가면서(갈라 2:20)

죄의 죽음에서 일어나(에페 5:14) 영생을 향하고 있다(로마 5:21, 14:9, 2고린 5:15, 요한 6:40-48).

 

신앙생활은 부활하신 예수의 몸에서 솟아났고 그리스도의 몸을 모시고(1고린 10:16-17)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생활이다(1고린 12:12-27).

왜냐하면 부활하신 몸, 성체이신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오늘의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며 산다(마태 26:26, 1고린 11:24-29).

성령께서 빵과 포도주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시기 때문에 오늘날도 그리스도께서 인간들과 물질세계를 떠나지 않고 깊은 관계를 유지하신다.

이 깊은 관계는 몸의 부활로써 완성된다(로마 8:11, 1데살 4:14, 1고린 6:14, 15:12-22, 2고린 4:14).

그때에야 인간 전체 - 육신을 포함해서 - 는 하느님의 것이 되고 구원이 완성될 것이다(로마 8:23, 2고린 5:2-5).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다"(필립 2:11). (文世華)

(가톨릭대사전에서)

 

♬Monastery Bells

 

 

 

 

 

 

 

 

 

 

Pasqua di Risurrezione del Signore
8 aprile (celebrazione mobile)


Se il Natale è la festività che raccoglie la famiglia, riunisce i parenti lontani, che più fa sentire il calore di una casa, degli affetti familiari, condividendoli con chi è solo, nello struggente ricordo del Dio Bambino; la Pasqua invece è la festa della gioia, dell’esplosione della natura che rifiorisce in Primavera, ma soprattutto del sollievo, del gaudio che si prova, come dopo il passare di un dolore e di una mestizia che creava angoscia, perché per noi cristiani questa è la Pasqua, la dimostrazione reale che la Resurrezione di Gesù non era una vana promessa, di un uomo creduto un esaltato dai contemporanei o un Maestro (Rabbi) da un certo numero di persone, fra i quali i disorientati discepoli.
La Risurrezione è la dimostrazione massima della divinità di Gesù, non uno dei numerosi miracoli fatti nel corso della sua vita pubblica, a beneficio di tante persone che credettero in Lui; questa volta è Gesù stesso, in prima persona che indica il valore della sofferenza, comune a tutti gli uomini, che trasfigurata dalla speranza, conduce alla Vita Eterna, per i meriti della Morte e Resurrezione di Cristo.
La Pasqua è una forza, una energia d’amore immessa nel Creato, che viene posta come lievito nella vita degli uomini ed è una energia incredibile, perché alimenta e sorregge la nostra speranza di risorgere anche noi, perché le membra devono seguire la sorte del capo; ci dà la certezza della Redenzione, perché Cristo morendo ci ha liberati dai peccati, ma risorgendo ci ha restituito quei preziosi beni che avevamo perduto con la colpa.

Racconto evangelico

Esaminiamo adesso la cronologia degli avvenimenti che seguirono alla morte e sepoltura di Gesù. La sepoltura fu una operazione provvisoria, in quando essendo ormai un’ora serale e si approssimava con il tramonto il Sabato ebraico, in cui è noto era proibita qualsiasi attività, il corpo di Gesù fu avvolto in un lenzuolo candido e deposto nel sepolcro nuovo scavato nella roccia, appartenente a Giuseppe d’Arimatea, membro del Sinedrio, ma ormai seguace delle idee del giovane “Rabbi” della Galilea.
Le operazioni necessarie per questo tipo di sepoltura, che non era l’inumazione nel terreno, e cioè il cospargere il corpo con profumi ed unguenti conservativi e l’avvolgimento dello stesso corpo con fasce o bende (ne abbiamo l’esempio nel racconto di Lazzaro risuscitato dallo stesso Gesù); queste operazioni, dicevamo, furono rimandate a dopo il Sabato dalle pie donne, le quali dopo aver preparato gli aromi e visto dove era stato deposto il corpo di Gesù, alla fine si allontanarono.
Dopo la Parasceve (vigilia del Sabato) quindi appena dopo sepolto Gesù, i sacerdoti ed i Farisei si recarono da Pilato dicendogli che si erano ricordati “che quell’impostore quando era ancora in vita, disse: Dopo tre giorni risorgerò. Ordina dunque che sia vigilato il sepolcro fino al terzo giorno, perché non vengano i discepoli, lo rubino e poi dicano al popolo: È risorto dai morti. Così quest’ultima impostura sarebbe peggiore della prima!”.
E Pilato, secondo il solo Vangelo di Matteo, autorizzò il sigillo del sepolcro e dispose alcune guardie per controllarlo.
Trascorso il Sabato, in cui tutti osservarono il riposo, Maria di Magdala, Maria di Cleofa e Salome, completarono la preparazione dei profumi e si recarono al sepolcro di buon’ora per completare le unzioni del corpo e la fasciatura; lungo la strada dicevano tra loro, chi poteva aiutarle a spostare la pesante pietra circolare, che chiudeva la bassa apertura del sepolcro, che era composto da due ambienti scavati nella roccia, consistenti in un piccolo atrio e nella cella sepolcrale; quest’ultima contenente una specie di rialzo in pietra, su cui veniva deposto il cadavere.
Quando arrivarono, secondo i Vangeli, vi fu un terremoto, un angelo sfolgorante scese dal cielo, si accostò al sepolcro fece rotolare la pietra e si pose a sedere su di essa; le guardie prese da grande spavento caddero svenute. Ma l’Angelo si rivolse alle donne sgomente, dicendo loro: “Non abbiate paura, voi! So che cercate Gesù il crocifisso. Non è qui. È risorto dai morti, ed ecco, vi precede in Galilea; là lo vedrete”.
Proseguendo con il racconto del Vangelo di Matteo, le donne si allontanarono di corsa per dare l’annunzio ai discepoli. Piace ricordare che anche l’annunzio della nascita di Gesù avvenne tramite un Angelo a dei semplici pastori, così anche la Sua Risurrezione viene annunciata da un Angelo a delle umili donne, che secondo l’antico Diritto ebraico, erano inabilitate a testimoniare, quindi con questo evento che le vede messaggere e testimoni, viene anche ad inserirsi un evento storico nella socialità ebraica.
Lungo la strada lo stesso Gesù apparve loro, che prese dalla gioia si prostrarono ad adorarlo e il Risorto disse loro: “Non temete, andate ad annunziare ai miei fratelli che vadano in Galilea e là mi vedranno”.
Proseguendo nella lettura del Vangelo di Matteo (che è l’unico ad indicare l’esistenza di un drappello di guardie), mentre le donne proseguirono veloci alla ricerca degli apostoli per avvisarli, alcuni dei soldati di guardia, rinvenuti dallo spavento provato, si recarono in città a riferire ai sommi sacerdoti l’accaduto.
Questi allora, riunitasi con gli anziani, decisero di dare una cospicua somma di denaro ai soldati, affinché dichiarassero che erano venuti i discepoli di Gesù di notte, mentre dormivano e ne avevano rubato il corpo, promettendo di intervenire in loro favore presso il governatore, se avessero avuto delle punizioni per questo.
Questa diceria, propagata dai soldati, si è diffusa fra i Giudei fino ad oggi. Se colpa si potrebbe attribuire alle autorità religiose ebraiche dell’epoca, questa riguarda l’ostinazione nello sbagliare anche di fronte all’evidenza, pur di non ammettere l’errore commesso; “quel timore che venga rubato il corpo, quelle guardie al sepolcro, quel sigillo apposto per loro richiesta, sono la testimonianza della loro follia ed ostinazione” (s. Ilario); in realtà tutto ciò servì soltanto a rendere più certa ed incontestabile la Resurrezione.
Quando le donne raggiunsero gli apostoli e riferirono l’accaduto, essi corsero verso il sepolcro, ma Pietro e Giovanni corsero avanti, al sepolcro arrivò per primo Giovanni più giovane e veloce, ma sulla soglia si fermò dopo aver visto il lenzuolo (Sindone) a terra, Pietro sopraggiunto, entrò per primo e constatò che il lenzuolo era per terra, mentre il sudario, usato per poggiarlo sul capo dei defunti, era ripiegato in un angolo, poi entrò anche Giovanni e ambedue capirono e credettero a quanto lo stesso Gesù, aveva detto in precedenza riguardo la sua Risurrezione.
A questo punto, con gli apostoli che se ne ritornano tutti meravigliati e gioiosi verso la loro dimora, riempiti di certezza e nuova forza, termina il racconto evangelico del giorno di Pasqua; Gesù comparirà altre volte alla Maddalena, agli Apostoli, ai discepoli di Emmaus, a sua madre, finché non si avrà la sua Ascensione al cielo; gli Evangelisti raccontano in modo diverso questi avvenimenti connessi con la Resurrezione, ma in sostanza simili nell’insegnamento.

Liturgia e Veglia Pasquale

Adesso è utile descrivere l’aspetto liturgico della Pasqua, che è bene ricordare è il culmine della Settimana Santa, è festa di grande solennità per il mondo cristiano, prosegue con l’Ottava di Pasqua e con il Tempo liturgico di Pasqua che dura 50 giorni, inglobando la festività dell’Ascensione, fino all’altra solennità della Pentecoste.
Dopo il silenzio, penitenza e meditazione del Sabato Santo, la liturgia prevede la grande Veglia pasquale, che è la celebrazione più importante dell’anno liturgico e quella che più esprime la gioia della fede in Gesù Cristo risorto e Salvatore dell’uomo.
La notte nella quale il Signore passa dalla morte alla vita, segna il punto più alto della storia religiosa dell’umanità; fin dai primi secoli, i cristiani l’hanno celebrata con la più grande solennità. Sant’Agostino la chiama “la madre di tutte le veglie sante, durante la quale il mondo intero è rimasto sveglio”.
Nel corso di questa notte, la Chiesa celebrava e celebra la Resurrezione di Cristo, battezzando nuovi cristiani e domandando a coloro che già lo sono, di rinnovare tutti insieme gl’impegni del loro Battesimo.
La Veglia pasquale è una celebrazione complessa ed unitaria, che si svolge in momenti successivi: 1) Liturgia della Luce; 2) Liturgia della Parola; 3) Liturgia Battesimale; 4) Liturgia Eucaristica.
Il rito si svolge nella notte, simbolo della vita, che senza Cristo, è immersa nelle tenebre dell’ignoranza e dell’errore, del peccato e della morte.

LITURGIA DELLA LUCE – Benedizione del nuovo fuoco
La cerimonia si svolge all’esterno della chiesa, tutta oscurata; il celebrante benedice il fuoco nuovo in un braciere, simbolo dello Spirito Santo e della virtù teologale della Carità, infusa in noi nel Battesimo.
Benedizione del cero pasquale
Segue la benedizione del cero pasquale, grande cero che rimarrà acceso durante le cerimonie liturgiche, per tutto il Tempo Pasquale e che verrà spento il giorno di Pentecoste, dopo la lettura del Vangelo; la sua origine sembra risalire al IV secolo.
Il cero viene ornato da cinque grossi grani d’incenso, disposti a forma di croce e dalle lettere dell’alfabeto greco Alfa e Omega, che sono rispettivamente la prima e l’ultima, che alludono a Cristo, principio e fine di tutta la realtà.
Per la benedizione il sacerdote usa questa formula: “Il Cristo ieri e oggi / Principio e fine / Alfa e Omega. A lui appartengono il tempo ed i secoli. A lui la gloria e il potere / per tutti i secoli in eterno. Per mezzo delle sue sante piaghe gloriose, ci protegga e ci custodisca il Cristo Signore”.
Poi il celebrante attinge dal fuoco benedetto, la fiamma per accendere il cero pasquale, mentre pronunzia. “La luce del Cristo che risorge glorioso, disperda le tenebre del cuore e dello spirito”. Il cero rappresenta anche la virtù teologale della Fede, che illumina il cammino di santificazione del cristiano.
Processione d’ingresso
Guidati dalla fiamma del cero pasquale, la processione avanza nella chiesa oscurata, mentre il sacerdote canta per tre volte con tonalità crescenti, le parole: “Lumen Christi” o “Cristo luce del mondo” a cui i fedeli rispondono “Deo gratias” o “Rendiamo grazie a Dio”; ad ogni sosta si accendono progressivamente le candele dei ministri e poi quelle di tutta la chiesa.
Man mano la luce vince le tenebre in un suggestivo simbolismo; la processione è simbolo della virtù teologale della Speranza, del cammino del popolo di Dio nella via della santificazione.
L’annuncio pasquale
Davanti a tutta l’Assemblea cristiana, che tiene la candela accesa in mano, il celebrante o il diacono canta l’Exultet o annuncio pasquale, in cui invita la Chiesa ad innalzare un inno di ringraziamento e di lode al Signore misericordioso, che ha redento l’umanità dal peccato.
Sono note due versioni dell’Exultet, la romana e l’ambrosiana, la cui attribuzione è dubbia, forse fra i probabili autori è compreso anche s. Ambrogio; anche se se ne ha prova fin dal IV secolo a Roma, nella liturgia fu introdotto più tardi, fra il VI e VIII secolo. Al termine, spente le candele e sedutasi, l’assemblea ascolta il canto del ‘Preconio’ da parte del diacono.

LITURGIA DELLA PAROLA
Vengono letti sette brani del Vecchio Testamento, narranti la creazione del mondo, il sacrificio di Abramo, l’esodo dall’Egitto, il passaggio del Mar Rosso e alcune profezie dei profeti biblici; il filo conduttore che unisce queste letture è la notte, sia dell’atmosfera sia del cuore, ma Dio vegliava e dall’oscurità si accese improvvisamente la luce.
Poi viene intonato il canto del ‘Gloria’, con il suono delle campane, l’illuminazione completa della chiesa, il suono dell’organo, tutto simboleggiante l’avvenuta Resurrezione di Cristo e del significato e beneficio che ne è scaturito per gli uomini. Segue il canto dell’Alleluia, che per tutto il periodo della Quaresima era stato omesso nella liturgia, in segno di mestizia per la Passione di Gesù. Infine c’è la lettura del brano evangelico secondo Luca (24, 1-12) che narra la scoperta da parte delle donne e poi degli Apostoli dell’avvenuta Resurrezione.

LITURGIA BATTESIMALE
Viene posto a vista dei fedeli un catino con l’acqua che sarà utilizzata per i futuri Battesimi, compresi quelli, se ve ne sono, di questa santa notte. L’acqua viene benedetta dal celebrante (essa è simbolo del dono della Grazia e della Vita nuova, comunicata da Cristo) dopo la recita delle Litanie dei Santi; la benedizione effettuata con l’immersione del cero pasquale, una o tre volte, è accompagnata da bellissime preghiere del celebrante, che per motivi di spazio non riportiamo, essendo un po’ lunghe.
Seguono le promesse battesimali rinnovate dall’Assemblea, dopo se vi sono dei battezzandi si procede con il Battesimo di essi e al termine tutti i presenti, a ricordo del proprio battesimo, vengono aspersi con l’acqua benedetta. Terminato questo rito, il sacerdote e il lettore recitano la preghiera dei fedeli, omettendo in questa occasione la recita del Credo.

LITURGIA EUCARISTICA
A questo punto la liturgia diventa quella solita della celebrazione della Messa, con Prefazio, preghiere, antifone proprie della festività di Pasqua e si conclude con la solenne benedizione del celebrante.
Durante il giorno della Domenica di Pasqua le celebrazioni delle Messe sono come al solito, ma caratterizzate di solennità.

Storia della Festa – Tradizioni
La datazione della Pasqua, nel mondo cristiano fu motivo di gravi controversie fra le Chiese d’Oriente e d’Occidente, la prima era composta da ebrei convertiti e la celebrava subito dopo la Pasqua ebraica e cioè nella sera della luna piena, il 14 Nisan, primo mese dell’anno ebraico; quindi sempre in giorni diversi della settimana.
Mentre i cristiani convertiti dal paganesimo, la celebravano nel primo giorno della settimana, cioè la Domenica (il Sabato ebraico), questo criterio fu adottato dalla Chiesa d’Occidente. La controversia durò parecchio, coinvolgendo sante ed autorevoli figure di vescovi di ambo le parti, come Policarpo, Ireneo e papi come Aniceto e Vittore I; solo con il Concilio di Nicea del 325, si ottenne che fosse celebrata nello stesso giorno in tutta la cristianità e cioè adottando il rito Occidentale, fissandola nella domenica che seguiva il plenilunio di primavera.
Tralasciamo tutte le successive controversie su questo problema; oggi la celebrazione cade tra il 22 marzo e il 25 aprile denominandola così Pasqua bassa o alta, secondo il periodo in cui capita. Essendo una festa mobile, determina la data di altre celebrazioni ad essa collegate, come la Quaresima, la Settimana Santa, l’Ascensione, la Pentecoste.
La Chiesa contempla per i cattolici l’obbligo del Precetto Pasquale, cioè confessarsi e ricevere l’Eucaristia almeno una volta nel periodo pasquale. Legata alla celebrazione della Pasqua, vi sono alcune tradizioni come ‘l’uovo di Pasqua’; l’uovo è da sempre il simbolo della vita; per i cristiani l’uovo di Pasqua è simbolo del sepolcro, vuoto all’interno, ma che contiene in sé la più grande sorpresa: la Resurrezione, simbolicamente nell’uovo di cioccolato che si regala, si trova perciò una sorpresa.
Nel pranzo pasquale viene aspersa la tavola imbandita, intingendo nell’acqua benedetta un rametto di ulivo, distribuito nella Domenica delle Palme.
Il Papa da antichissima data impartisce la solenne benedizione “Urbe et Orbe”, cioè a Roma ed al Mondo. Fra le tantissime manifestazioni civili e folcloristiche, che si effettuano nel mondo in questo giorno di festa, citiamo per concludere, solo lo ‘scoppio del carro’ a Firenze, con tutto il contorno di corteo in costumi d’epoca.

Autore: Antonio Borre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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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giunto il 29-Mar-2004
Letto da 4972 pers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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