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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영 [petrusoh] 쪽지 캡슐

2003-09-29 ㅣ No.1693

작년 봄 전주 군산 마라톤에서 하프코스를 뛴고 난 후 적은 소회에서 저는 목표의 70~80% 정도 되는 거리에서 가장 어려움을 느끼게 되더라는 이야기와 함께 사람 살아가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로 50을 전후한 나이대에 가장 헉헉대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의견을 적은 바 있습니다. 오늘 저는 제 의견을 다소 수정하여 마라톤 참가 후기를 전할까 합니다.

 

어제 저는 금년 들어 두 번째로 공주에서 열린 백제큰길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였습니다. 금강 변을 끼고 새롭게 단장한 백제 큰길은 적당한 언덕과 길고 고른 평지가 어울려 있으며 차량 통행이 전혀 없어 맑은 공기가 가슴 속으로 깊이 들어차 상쾌함을 더해 주고 코스 주변 마을의 소박한 주민들께서 흥겨운 응원을 해주는 등 그야말로 서울 근교에서는 볼 수 없는 환상적인 코스였던 것 같습니다.

 

아침 6시 반에 기상하여 7시쯤 미리 사 둔 인절미로 아침을 대신 한 후 7시 30분에 집사람을 태우고 출발하여 경부, 천안-논산 고속도로를 경유, 공주에 도착한 시간은 9시 정도였습니다. 집사람을 운동장 옆 유황온천에 밀어 넣고 가볍게 몸을 푼 후 출발 신호를 기다렸습니다. 대회측 발표로 7,500명이 참가한 백제큰길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공주 공설운동장 앞은 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달리기 동호회나 직장 이름으로 단체 참석한 분들이었고 저처럼 혼자서 개인으로 참석한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안 보임으로해서 내내 입을 다물고 있어야만 하는 침묵의 시간은 오히려 이번에 대학 시험을 앞둔 작은 딸과 이제 막 공부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해 보이는 큰 딸을 위한 기도의 시간으로 생각하자고 마음 먹으니 더 이상 혼자라는 것이 불편하지도 외롭지도 않았습니다. 또, 잘하면 달리는 동안에 아주 멋진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기대도 가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하프주자 선두 그룹에서 출발한 저는 약 7Km를 지나면서 4분 정도 앞서 출발한 풀코스 주자들을 만날 수 있었읍니다. 풀코스 5시간 페이스 메이커, 4시간 30분 페이스 메이커를 추월하여 멀리 500 M 전방에 풀코스 4시간 페이스 메이커가 달고 뛰는 풍선을 보면서, 순간 이대로라면 풀코스 <서브-4>도 가능할텐데 괜히 하프에 참가한 것 아닌가 하는 방자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결국은 4시간 페이스 메이커를 따라잡지 못한 채 반환점을 돌고 말았습니다. 이번 코스는 중간지점이 아니라 13 Km(?) 정도 지점을 반환점으로 정하여 고대하는 반환점까지의 거리가 꽤 멀게 느껴졌습니다. 반환점을 지나 15Km 되는 지점은 그 동안 하프 코스를 뛸 때 마다 힘에 벅차 오기 시작하던 지점이었습니다. 특히 이번 코스는 15 Km 지점부터 언덕이 시작되어 그 어려움이 더하리라고 예상했던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제는 그다지 힘에 겹다는 생각을 안하고 결승점까지 들어왔습니다. 물론 힘들지 않다고 해서 초반 스피드로 달릴 수 있을 정도였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17 Km 지점에서 남은 거리와 속도를 계산해 보니 그 정도의 속도를 유지하면 두시간안에 들어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기록을 의식하지 않고 완주가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순간은 하프를 두 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기록을 갖고픈 욕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약간의 경사를 올라 설치된 결승점을 통과하면서 내 손목시계로 잰 시간이  1시간 55분 32초. 결국 하프 마라톤 <Sub-2>를 달성하였고 결승점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집사람에게 멋진 포즈를 취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 너 댓번 참가했던 하프 마라톤에서 2시간 5분 정도에 뛴 기록에 비하면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기록이었습니다. 게다가 달리는 동안 내내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바치던 묵주기도 15단을 마치고 다시 시작한 영광의 신비 5단을 합쳐 20단이 끝남과 동시에 결승선을 밟으면서 뭔가 아이들, 특히 작은 아이가 이번 수능에서 좋은 결과가 있지 않으려나 하는 유쾌한 예감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돌아오면서 왜 그 동안 힘에 겨워했던 15 Km 지점이 예전처럼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지난 대회 때와는 달리 11월에 있을 풀코스를 준비하느라 7월부터 꾸준히 연습을 해왔었습니다. 비록 그 사이에 술을 마시는 바람에 일주일에 단 하루도 뛰지 못한 날도 있었고 추석 연휴 동안 달리기를 못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좀더 많은 연습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 고질적인 음주 습관을 달리기 일주일 전에는 최대한 억제했다는 것과 달리는 동안 내내 묵주를 돌리고 있었다는 것도 힘들다는 생각을 옆으로 떨쳐 버리게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작년에 올린 글에서 어느 경우라도 목표의 70~80 % 지점에서는 힘이 들다고 했던 제 의견을 이번에 저는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즉, 준비된 이들에게는 힘든 것은 없다. 묵주를 손에 쥐고 높으신 분께 의지할 때는 어려운 것이 없다고 말입니다.

 

이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총과 평화를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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