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빚진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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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신부 [jpatrick] 쪽지 캡슐

2000-03-01 ㅣ No.41

빚진 인생

 

 

우리는 'IMF'(국제통화기금)라는 단어 - 얼마전까지만 해도 듣도 보도 못했던 말 - 가 최고의 유행어(?)가 되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나라의 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상황에서 IMF는 이제 생활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이런 시대 상황을 반영하듯 온통 IMF라는 말뿐이고, 오죽하면 'Overcome IMF'라는 옷상표까지 등장했다고 합니다. 'IMF 시대', 달리 표현하자면 '빚진 인생'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사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면 '또다른 빚진 인생'을 발견하게 됩니다. 몇 년전 진천 배티로 성지순례를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성지를 순례하고 오는 길에 이천 성지를 찾았는데, 그곳에는 윤유일 순교자와 그 집안 순교자들의 묘소가 있었습니다. 마침 80세가 다된 윤유일 순교자의 6대손을 만나 그간 성지개발과 관리를 위해 애써온 과정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오로지 성지를 개발하고 관리하기 위해 편안한 가족들의 품을 떠나 성지 근처에서 홀로 사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어린 시절 할머니로부터 순교자 집안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극심한 가난과 오랜 객지 생활로 인해 마흔이 다 되도록 선조에 대해 특별한 관심조차 갖지 못했다는 말씀을 듣고 이런저런 상념들이 스쳐갔습니다.

 

한국 교회는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와 땀 위에 세워졌다고 우리는 알고 있고 또 자랑스러운 역사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 본당 또한 최경환 프란치스코 순교성인을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죠? 신앙 때문에 현실적인 모든 부와 지위를 잃고,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하나뿐인 목숨마저 기꺼이 희생하신 순교자들을 생각하면 한국 교회는 신앙의 선조들로부터 과분한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정작 순교자들의 후손들은 무엇을 물려받았을까요? 한순간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몰락한 가문의 후손이 되버린 그들은, 과연 신앙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왔을까요? 미처 신앙의 진리를 깨닫기도 전에 부모를 잃고 가문에서마저 버림받아 졸지에 고아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버린 순교자의 후손들에게 신앙은 과연 목숨마저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최고의 가치가 될 수 있었을까요? 물론 많은 순교자의 후손들이 대대로 신앙을 지켜오며 하느님께 충실하고자 노력해 왔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1984년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를 맞아 순교선조들의 발자취를 조사하면서 많은이들이 자신들이 순교자들의 후손임을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현실적으로 순교자들의 후손들의 삶이 얼마나 힘겨웠는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는 찢어질듯한 가난뿐"이었다는 그 노인의 말씀에 깊이 동감하며, 나는 그동안 너무도 많은 빚을 지고 살면서도 그 빚을 갚으려는 노력을 외면하고 살아왔다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2년 전 인도 교회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인도 남부의 코타르, 트리반드룸 두 교구를 돌아보며 그들이 복음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트리반드룸 교구의 한 본당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 본당에서는 다양한 사회문제, 예를들면 알콜중독, 전염병 및 보건위생, 문맹, 가난 등을 본당 공동체가 함께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인도에 가서 처음에는 대개 힌두교나 이슬람교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리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인도 남부에는 천주교 신자들도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인도 전체로는 약 1,200백만명, 그러니까 우리 나라의 약 4배 정도). 많은 본당들이 교우촌을 이루고 있었고, 오히려 힌두교나 이슬람교 사람들이 소수인 곳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그 본당에 속한 몇 개의 공소를 방문하는 일정중 마지막 공소를 방문했을 때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순교자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공소는 이슬람교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인 지역에 자리해 있었고, 약 백여명의 신자들이 힘겹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천주교 신자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취직과 자녀교육에서 철저히 소외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물리적 위협까지 받으며 하루하루를 불안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아주었고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앙을 지켜가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그동안 제가 너무나 피상적으로 생각하던 순교자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신앙 때문에 현실의 모든 부와 미래에 대한 최소한의 기회(교육)마저도 박탈당하며 살아야 하는 철저히 반대받는 표적이었습니다. 우리가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이 결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님이 확실했습니다. 2천 년 교회의 역사 속에서, 그리고 오늘도 계속되는 박해속에서 신앙을 지켜가는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사랑의 산물이 바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신앙의 유산'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빚진 인생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빚을 언제 어떻게 다 갚아야 할 지 그저 부끄럽고 두려울 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역삼동 학생 여러분, 과중한 나라빚 때문에 여러모로 위축되었을 모습을 생각하면 참 부끄럽고 또 한편 안쓰럽습니다. 어떻게든 내일의 희망인 여러분이 '기죽지' 않도록 모두가 더 노력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또다른 빚을 지고 살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신앙의 유산, 상속세 한 푼 내지 않고 마음껏 누리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보다 앞서 살아간 선배 신앙인들이 몸소 피까지 흘려가며 미리 다 내준 것은 아닐까요?

 

# 몇 년전 역삼동 성당 중고등부 학생문집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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