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교회음악

라틴어로 부를까? 한국어로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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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재 [musecom1] 쪽지 캡슐

2001-04-09 ㅣ No.373

(신형제님께서 보내주신 메일을 보고 일부 수정합니다.)

때때로 라틴어 성가는 부르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신부님들이 계십니다.

또 신자 분들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심지어 성가대원 중에서도 라틴어 성가를 부르면 '뜯도 모르는데 궂이 라틴어로 노래를 하느냐?'

하는 볼맨소리를 하시는 분도 계시구요.

그래서 저의 생각을 적어 봅니다.

물론 저의 전공이 '작곡'은 아니기 때문에 정답은 아니겠지만 나름대로의 제 생각입니다.

 

외국에서 작곡된 음악을 원어로 부르느냐,  자국어로 부르느냐의 문제는 우리나라 뿐아니라

서양음악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독일에서도 아직 논의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그들의 자랑이기도 한 작곡가 모차르트의 이태리어로 된 오페라를 원어로 부를것인가

아니면 독일어로 만들어 부를것인가에 대하여 많이 고민하고 있고 때때로 독일어로 번역하여

부르기도 하고 또 때때로 이태리어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독일의 경우와 같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즉 그들 두언어는 어차피 '라틴어' 언어권에 있지만 '한국어'는 그렇지 못하니까요.

 

서양언어에는 '악센트'라는게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악센트'에 따라서 억양이 이루어 집니다.

 

중세의 성전에는 당연히 스피커같은 것은 없었겠지요.

그러면 신부님들은 많은 신자들 앞에서 어떻게 미사경문을 전달 했을까요?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서? ^^ (물론 아니겠지요.)

그랬다간 천주교회 신부님들의 목소리도 모두 지금 개신교 목사님들 같아 졌을 거예요.

 

가장 좋은 방법이 음가를 주어서 억양을 확실히 해 줌으로서 뜻을 전달하는 것이 겠지요.

이렇게 해서 그레고리안 찬트가 만들어 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것은 천주교 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음악의 탄생 방법이지요.

(우리나라도 제사 경문을 '유세차 모년........' 하고 멜로디를 붙여 읽지요.)

 

그리고 이 음가를 붙이는 방법은 점점 발전을 합니다.

위대한 작곡가일 수록 음악의 강박과 가사의 악센트 부분이 맞아 떨어지지요.

또 가사의 발음에서 오는 뉘앙스와 멜로디가 맞아 떨어지고요.

그래서 많은 성악가들이 외국의 노래를 공부할때 우선 많이 읽습니다.

가장 좋은 학습방법이 되지요.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 성가책에 있는 많은 음악들이 못갖춘 마디로 시작 합니다.

즉 첫박이 약박으로 시작 되는 거지요.

이는 서양 언어가 대부분 관사로 시작 되는데 이유가 있습니다.

즉 우리가 잘 아는 성탄곡 '첫 성탄'을 생각해 보면 한국말 가사가

'저 들밖에 ....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리고 ''라는 가사가 약박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나라 말에서 ''의 음가가 그렇게 약할까요?

오히려 '' 보다는 ''의 음가가 더 약하 겠지요.

하지만 영어로 보면 'The First Noel....' 이렇게 시작 합니다.

약박에는 'The'라는 관사가 오고 음가가 강한 'First'에 강박을 배치 한것이지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한국말은 첫가사가 언제나 강박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음악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사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성가책의 음악중 가사와 음악이 전혀 맞지 않는 곳들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말이 라틴어권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물론 우리 성가책에 있는 음악의 대부분이 간단한 코랄풍의 음악들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약간 복잡한 곡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예전에 제가 억지로(?) 한국말로 개사해 놓은 미사곡을 연주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진땀이 나더군요.  원본과는 전혀 다른 음악이 되어 버려요.

악센트도 바뀌고 분위기도 바뀌고......

아마 작곡가가 들었다면 까무러 쳤을 거예요.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할 것을 궂이 라틴어 성가를 부르느냐?

이러한 물음에 이렇게 답할 수 있습니다.

한국말로 개사해 놓아도 가사를 신자분들이 보지 않는 이상 알아듣기는 어렵다.

작곡가들은 곡을 만들때 가사에서 오는 억양, 발음의 뉘앙스들을 박자의 강약과 멜로디의 고저와

맞추어서 만들게 됩니다. 그것을 한국말로 개사하다보면 이 의도가 모두 깨집니다.

결국 우리나라 말의 억양이나 뉘앙스와 전혀 맞지도 않고 또 원곡과도 전혀 맞지 않는

그냥 멜로디에 억지로 가사를 붙여 놓은 기형적인 곡이 탄생하는 거지요.

 

제 생각은 가능하면 음악은 작곡가가 작곡한 언어로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신자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성가'라는 평가에 예전에 저는 이렇게 대처 했습니다.

즉 라틴어 성가를 부를때는 주송자에게 간단한 곡의 뜻과 설명을 전달,

성가를 부르기 전에 안내 멘트를 해 주십사 하고.

 

물론 위에 언급한 저의 얘기가 100% 들어 맞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말로 번역해서 더 아름답게 부를 수 있는 성가도 많습니다.

뛰어난 번역가에 의해 훌륭히 개사된 음악이라면 이야기가 다를 수 있고

이 성가 번역의 문제는 우리 가톨릭 음악인들이 앞으로 연구하고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봅니다.

 

이제 결론을 말씀 드려야 겠군요.

라틴어 또는 작곡가가 작곡한 원어로 부르느냐 아니면 우리말로 개사해서 부르느냐의 문제는

다른나라들이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듯이 아직은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되고 저것은 절대 안된다 하는 오엑스 방식은 음악에는 절대 맞지 않습니다.

이 글을 혹시 성직자분들께서 읽으신다면 제발 그런 명령(?)은 하지 마세요.

제발 '라틴어 성가는 부르지 마라!' 이런 말씀은 마세요.

 

성가의 음악적인 부분을 가장 많이 아는것은 성가대 지휘자라고 봅니다.

즉 한국어 번역본으로 불러도 좋은가, 아니면 원어로 부르는 것이 낳은가 를 가장 적절하게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성가대 지휘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성가대 지휘자는 라틴어 성가를 선택하였을때는 그만큼의 고민과 공부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요.

 

[추천 :  성가책 329번 부터 있는 슈베르트의 독일 미사곡을 불러 보시고

       원곡을 사셔서 한번 들어보세요 (원곡 Tape는 성물방에도 많이 있더군요.)

                 원래 얼마나 풍부하고 화려한 음악인지 그리고 한국말로 개사되면서

       곡의 성격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아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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