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24주일(나해) 마르 8,27-35; ’18/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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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18-09-15 ㅣ No.3648

연중 제24주일(나해) 마르 8,27-35; ’18/09/16

교황의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복음 선포

 

 

 

오늘 우리가 살펴볼 교황의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은 제3복음 선포입니다. 교황은 이 3장에서 예수님께서 주님이심을 명시적으로 선포하지 않고서는”, 그리고 복음화의 모든 활동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선포의 탁월성없이는 진정한 복음화는 있을 수 없다.”고 명확히 선언합니다.

 

교황은 하느님 백성 전체가 복음을 선포한다라는 제하에서, 복음화는 교회의 과업이며, 복음화의 주체인 교회는 하나의 유기적이고 교계적인 제도 그 이상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백성입니다. 교회는 분명히 삼위일체에 뿌리를 내린 신비이지만, 구체적인 역사 안에서 순례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백성으로 존재합니다. 교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궁극적인 토대가 하느님의 자유롭고 은혜로운 주도권에 있다.”고 밝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은 당신 자비의 활동입니다. 첫 말씀, 참된 주도권, 참된 활동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이 주도권에 우리 자신을 맡길 때에만, 이러한 주도권을 간청할 때에만, 우리 역시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서 복음화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혼자서는, 곧 고립된 개인으로나 자신의 힘만으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 공동체 생활에 따른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를 고려하시어 우리를 이끄시고, 이 백성이 교회입니다. 이 백성은 배타적인 엘리트 집단이 아닙니다.

 

하느님 백성은 이 세상의 다양한 민족들로 구체화되며, 이 민족들은 저마다 고유문화를 가지고 있는 다양한 모습을 지닌 백성입니다. 은총은 문화를 전제로 하고 이 하느님의 선물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문화 안에서 구체화됩니다.

 

 

고유의 문화에 따라 하느님 은총을 경험한 다양한 민족들 안에서, 교회는 참다운 보편성을 표현하고, 다양한 모습을 한 교회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모든 문화에서 발견되는 긍정적인 가치들과 형식들은 복음이 선포되고 이해되며 실천되는 방식을 풍부하게 합니다. 올바로 이해된 문화적 다양성은 교회의 일치에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세례 받은 모든 사람은 성령 안에서 복음화의 길로 초대되어, ‘선교하는 제자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만난 그리스도인은 모두 선교사입니다.

 

복음이 한 문화에 전해지면 토착화의 과정을 겪게 됩니다. 하느님의 은사를 각자의 재능에 따라 자신의 삶으로 드러내면서 자신이 받은 신앙을 증언하고 새롭고 설득력 있는 표현으로 풍요롭게 합니다. 대중신심은 일단 받아들인 신앙이 어떻게 한 문화 안에 구현되고 지속적으로 전달되는지를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대중 신심은 신앙 활동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 것보다 하느님을 믿는 것에 더 역점을 둡니다.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때, 특히 가난한 이들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을 향한 삶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경 구절은 거의 못 외우지만 묵주 기도에 매달리며 병든 아이를 간호하는 어머니들의 강인한 믿음을 저는 생각합니다. 또한 성모 마리아의 도움을 간구하는 누추한 집 안에 켜진 촛불에서 퍼져 나가는 큰 희망을 생각해 봅니다. 이러한 행위들은 우리의 마음 안에 부어진 성령의 활동으로 힘을 얻는, 하느님을 향한 삶의 표현입니다. 토착화된 복음화의 열매인 대중신심 안에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는 적극적인 복음화의 힘이 있습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준비가 늘 되어 있음을 의미하며, 그 첫 단계에 인격적인 대화가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친교 안에서 다양함을 일치시키며 평화의 모범을 보여주시며, 동시에 다양성, 다원성, 다중성을 키워주십니다.

 

 

교황은 강론이란 제하에서, 평신도는 강론을 듣는 것이 어렵고 사목자는 강론을 하는 것이 어렵다며 풀어나가십니다. 강론은 성사적 친교에 앞서 하느님과 당신 백성이 나누는 대화의 최고 순간으로, 전례 상황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봉헌의 일부이고, 그리스도께서 부어 주시는 은총을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강론은 어머니가 자녀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대화는 진리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말하는 기쁨에서 시작되고, 말을 매개로 하여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이들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의 대화는 이미 맺어진 계약을 더욱 강화하고 사랑의 유대를 굳건하게 만듭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우리 마음을 열정에 불타오르게 합니다.

 

 

교황은 강론준비라는 제하에서, 강론 중에 활동하시는 성령을 믿는 것은 단순히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것으로서,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께 도구로 바친다는 것입니다.

 

사제는 먼저 성령께서 오시기를 간청하고, 성경구절에 집중하여,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며, 핵심 메시지를 발견하여,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연결시켜 바라봅니다. 사제는 온순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자세로 말씀을 대하고, 우리의 열정을 새롭게 하여, 우리가 선포하는 말씀에 대한 사랑이 우리 안에 자라나는지 성찰하며, 먼저 하느님의 말씀으로 감화되어 그 말씀을 일상에서 실현합니다.

 

사제는 하느님의 말씀을 실현하기 불편하거나 부담스러워 도망치려 하지 말고, 다른 이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만을 생각하지 말고 자기 자신의 삶 속에 적용하여야 합니다. 또한 백성의 말에 귀를 기울여, 성경 본문의 메시지를 인간 상황에, 하느님 말씀의 빛을 갈구하는 경험에 연결시켜야 합니다. 강론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만남의 기쁨, 실망,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 미래에 대한 불안, 사랑하는 이에 대한 관심 등의 특별한 환경에서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시는지 복음적 식별의 훈련을 합니다.

 

 

교황은 케리그마(복음 선포)의 심화를 통한 복음화란 제하에서, 주님의 선교 명령에는 신앙 성숙에 대한 요청도 포함된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그 성숙은 사랑의 완성입니다. 우리의 모든 종교적 의무에 앞서 하느님의 구원하시는 사랑을 표현하여야 합니다.

 

최근 교리교육은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신비교육을 강조합니다. 모든 형태의 교리 교육은 아름다움의 길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참된 아름다움의 모든 표현은 주 예수님을 만나도록 이끄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의 보화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다양한 현대적 표현을 활용하여 새로운 비유의 언어로 신앙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사제와 수도자와 평신도들은 가까이 계신 그리스도 현존의 향기와 그분의 시선을 구체적으로 전하며 동행의 예술로 이끌어야 합니다. ‘영적 동행을 통해 다른 이들을 하느님께 더 가까이 이끌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하느님을 벗어날 때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하느님을 벗어나 걸어갈 때 실존적으로 의지할 곳 없고 정처 없는 고아로 남게 되어 불안하게 됩니다. 참다운 영적 동행은 언제나 복음화 서명에 봉사하는 상황에서 시작되고 꽃피웁니다.

 

하느님 말씀은 강론뿐만 아니라, 모든 복음화는 그 말씀에 기초하고, 그 말씀을 경청하고, 묵상하고, 실천하고, 거행하고, 증언합니다. 성경 연구는 모든 신자들에게 열린 문이 되어, 복음화를 위하여 하느님 말씀에 친숙해져야 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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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4주일 꽃꽂이

http://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num=1&id=171524&menu=frpeterspds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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