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사진 자료실

[성당] 대전교구 공세리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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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3-12-28 ㅣ No.1187

 

[믿음의 고향을 찾아서] 대전교구 공세리 성당 (상)

내포지역 신앙못자리, 선교 전진기지

 

 

(사진설명)

1. 지난해 성전 건축 80주년을 맞은 공세리성당. 성당 올라가는 입구의 노란 들국화가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2. 공세리성당 내부 중앙 위쪽에 보이는 것이 본당 주보인 베네딕도 성인상.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에 사용한 제대, 성체틀, 양쪽 벽 소제대 등이 옛 성당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을 끝자락인 11월 말에 찾아간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성당은 발아래 수북히 쌓인 낙엽과 활짝 핀  들국화, 잎새 떨어진 나무에 탐스럽게 달린 감들이 고풍스런 성당 분위기와 어울려 또다른 운치를 자아낸다.

 

대전교구 공세리성당(주임 오남한 신부)은 1년 사계절의 모습을 모두 절기에 맞게 잘 담아내는 ’아름다운 장소’로 알려져 영화, TV 드라마, 사진 촬영 단골 장소가 된 지 이미 오래다. 내년 2월 개봉하는 ’태극기 휘날리며’도 얼마전 이곳에서 촬영했다. 순례객의 발길도 연중 끊이지 않고 있다.

 

공세리성당을 찾았을 때 수령 500년 쯤 되는 아름드리 나무를 보호하고 주변을 정리하는 조경공사가 마무리 중이었다. 대전교구 최초의 서양식 고딕 건축물(충청남도 지정 문화재 제 144호)로 지난 99년부터 추진해온 성당 원형 복원작업을 끝내고 조경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산만과 삽교천 방조제를 낀 수려한 주변 경관을 배경으로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한 공세리성당은 부지가 도시성당에서는 꿈도 꿀수 없을 만큼 넓다. 9000평에 달하는 성당 터는 조선시대 공세창(貢稅倉)이 있던 곳으로, 한양으로 운송하려고 거둬들인 세곡을 임시 보관했던 장소다. 성당이 있는 언덕 바로 밑까지 바닷물이 들어온 이 지역은 서양문물이 들어오는 입구이자 해상과 육로를 연결하는 중요한 포구이기도 했다.

 

성당으로 올라가기 전 왼쪽으로 눈을 돌리니 양손을 벌려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의 한복입은 예수성심상이 눈에 들어온다. 사제관과 예수마음 피정의 집이 있는 곳이다.

 

때마침 피정의 집 한켠에서는 한 무리의 여성과 수녀가 앞치마를 두르고 김장 담기에 분주하다. 피정의 집 이용자들이 내년에 먹을 김치다. "본당 어떤 단체가 김장 봉사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자원한 신자들이란다. "집에도 김장을 다 했느냐"고 물으니 "성당 일이 먼저가 아니냐"며 벌겋게 버무린 배추를 맛보라고 떼어준다.

 

자신의 일과 마을 일, 성당 일을 굳이 분리하지 않고 품앗이가 잘 이뤄지는 게 이 지역의 특징이라고 설명한 오남한 주임신부는 "이곳은 내포지역 신앙의 못자리이면서 지역민에겐 마음의 고향, 정신적 고향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추석 명절에 성당 마당에서 마을 잔치가 열리는 것도 전통이다.

 

오 신부와 같이 성당으로 향하던 중 몇몇 순례자와 마주쳤다. 시간이 없어 제대로 순례하지 못해 아쉽다는 이들은 여유를 갖고 꼭 다시 찾아오겠다며 발길을 돌렸다. 공세리성당 구내에는 오래된 고딕 성당 건물 뿐 아니라 박씨 3형제 순교자 묘, 십자가의 길, 성체조배실, 수령 300~500년 된 보호수들, 피정의 집 등이 있다. 역사적, 교회사적 중요성을 알고 차례차례 순례하다 보면 분위기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성당 건물은 1895년 설립된 이 본당의 초대 주임 파리외방전교회 에밀리오 드비즈(한국명 성일론) 신부가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건축 기술자를 불러들여 1922년 완공했다. 지금은 워낙 규모가 큰 성당들이 많아 소박해 보이지만 당시만 해도 크고 화려한 모습으로 언덕 위에 우뚝 솟은 공세리성당은 지방 명물로 구경꾼을 끌어모으곤 했다.   

 

성당 안 정면 중앙 벽에는 성 베네딕도상이 자리하고 있다. 본당 수호성인이다. 드비즈 신부가 성당 부지로 이곳을 매입했을 때는 이미 공세창이 폐쇄돼 폐허화되면서 사람들이 가기를 꺼리는 장소가 돼 버린 상태였다. 드비즈 신부는 그런 이곳을 베네딕도 성인께 봉헌하고 가톨릭 신앙의 전진기지로 바꿔놓았다.   

 

베네딕도 성인상 아래에 나무 십자가가 있고 왼쪽엔 성부자상이 세워져 있다. 오른쪽엔 원래 성모자상이 있었으나 분실돼 비어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 이전에 벽을 바라보고 미사를 집전하던 제대, 성체 난간틀과 양쪽 벽의 소제대, 성가대틀, 고해소 등은 옛 성당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성당을 복원하면서 유리창은 밝은 색상의 14처 유리화로 꾸몄다.     

 

공세리성당을 얘기할 때 이곳에서 35년간 사목하면서 본당의 기초를 다진 드비즈 신부를 빼놓을 수 없다. 가난한 지역민을 위해 교육사업과 의료사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 드비즈 신부는 직접 한방 의술을 활용, 한약을 조제했으며 이명래 고약으로 유명한 이명래(요한)씨에게 고약 비법을 전수시켰다.

 

고향 프랑스에서 재정을 지원받아 성당을 지을 때 가난한 신자들에게 공사에 참여하도록 해 품삯을 지불했으며, 가난한 신자들이 죽은 후 육신이 묻힐 곳이 없음을 딱하게 여겨 성당 맞으편 산을 구입, 충청도에선 첫 공원 교회묘지를 조성하기도 했다. 지금도 노인 신자들은 세상을 떠나면 이곳에 묻히길 바라고 있다.

 

성당 밖으로 나와 왼쪽으로 돌아 성당 뒤로 한바퀴 돌면서 이어지는 길은 14처 길이다. 낙엽이 쌓인 오솔길을 따라 기도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14처 길의 각 처는 실물보다 조금 작은 크기로 순례자들의 성금과 후원자들의 참여에 힘입어 건립됐다. (계속)

 

<평화신문, 제752호(2003년 12월 14일), 이연숙 기자>

 

 

 

[믿음의 고향을 찾아서] 대전교구 공세리 성당 (하)

주5일 근무시대 맞아 문화 관광사목 적극 추진

 

 

(사진설명)

1. 큰 박씨 3형제 순교자 묘소. 묘소 위쪽 붉은 벽돌집은 옛 사제관이다. 본당은 이 사제관을 유물전시관으로 만들 계획이다.

2. 기도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아담하고 조용한 성체조배실.

3. 내년 1월부터 마인드맵을 이용한 가족 단위 피정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예수마음 피정의 집.

 

 

낙엽이 덮어버린 박씨 3형제 순교자 묘소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신앙 후손들을 말없이 반기는 듯한 3형제 묘 앞에 하나씩 놓여있는 귤이 눈에 들어온다. ’어느 순례자가 다녀갔을까.’ 입가에 미소부터 번진다. 이곳에는 야외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제대도 마련돼 있다.

 

공세리본당은 병인박해 때 박의서(사바스)·원서(마르코)·익서(세례명 미상) 3형제를 비롯한 순교자 28명을 배출했다. 이 가운데 박씨 3형제 묘는 1988년 성당에서 서남쪽 5km 떨어진 해암리 맹고개에서 이곳으로 모셔왔다.

 

아산 걸매리에 살았던 박씨 3형제 집안이 이 지역에 끼친 공헌은 역사적으로도 연구할 가치가 크다고 밝힌 오남한 주임신부는 최근 이 지역 순교자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입수한 밀양 박씨의 ’가장보고’(家狀寶庫) 내용에 대해 언급했다.

 

이 ’가장보고’에 따르면, 박씨 3형제의 할아버지 박만선공이 이조참판을 지내다 낙향한 뒤 가난한 민생들을 위해 아산만 방조제 공사를 시작했다. 이 방조제 공사는 1760년대부터 그 아들 박종학공 대에까지 50여년간 이어졌다. 사재를 털고 부족한 것은 한양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공사를 완공했다. 이 방조제 공사에는 ’유랑민’을 대거 참여시키고 이들에게 품삯으로 토지를 대신 나눠 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박씨 3형제가 태중 교우이니 아버지는 당연히 신자이고, 할아버지도 신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방조제 공사에 참여한 ’유랑민’은 신유·신해박해를 피신해온 신자들입니다. 이 방조제 공사는 우리나라에서 민간 차원에선 최초로 이뤄진 것인데다 가톨리시즘을 반영하고 있어 의미가 크죠."

 

오 신부는 이에 대한 역사적, 교회사적 연구 검증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세리본당은 박씨 3형제 묘소 위쪽에 있는 옛 사제관을 유물전시관으로 만들기 위해 현재 이 지역 순교자 관련 자료를 수집 중에 있다.

 

공세리 성당에는 조용히 앉아 묵상에 잠길 수 있는 공간도 갖추고 있다. 성당을 가운데 두고 묘소 맞은 편에 있는 성체조배실이다.

 

성당으로 올라가기 직전 오른쪽으로 몇발자국 가다 보면 언덕 아래를 굴처럼 파서 만든 성체조배실을 만난다. 성체조배실 내부 양쪽 벽에는 이 지역 순교자 28위를 부조로 모셨고 천장에는 옹기장수를 주로 했던 초기 신자들을 상징해 사기 조각 같은 것을 붙였다. 성체를 모셔놓은 곳도 한복을 입은 모양으로 꾸며 토착화의 한 면을 엿보게 한다.

 

아담하고 조용한 성체조배실은 기도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본당은 자연 냉난방이 이뤄지는 이곳에서 평일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공세리성당이 자랑하는 것 중에는 수령 300~500년 된 아름드리 보호수도 있다. 시 당국이 보호수로 지정한 나무만 해도 느티나무 등 7그루이다. 이 지역 역사를 말없이 대변하는 이 나무들은 한여름엔 울창한 모습으로 쉼터 역할을 한다. 성당 앞 성모상을 받치고 있는 석조 기둥도 조선시대 영조 때 말을 묶어두는 기둥으로 사용한 것이니 그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공세리성당에는 특히 봄, 가을철엔 월 1만여명의 순례객이 찾는다. 지난해엔 순례자들을 위해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수마음 피정의 집을 건립, 봉헌했다. 이 피정의 집은 내년 1월(24~25일)부터는 마인드맵을 이용한 가족단위 피정 프로그램도 연중 실시할 계획이다.

 

또한 피정의 집 지하에 최근 음악 감상실과 홈 씨어터도 설치했다. 도시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에 뒤떨어진 이곳 농촌 학생들을 위해서다. 주차장은 인라인 스케이트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겨울방학에는 영어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서해대교 개통 후 교통이 훨씬 편리해진 공세리성당 인근에는 삽교호와 아산 온천 및 현충사, 도고·온양 온천, 영인산 자연 휴양림, 외암 민속마을 등 관광지가 즐비하다.

 

본당은 주5일 근무 시대를 맞아 이곳의 특성을 살려 역사·신앙·문화·관광을 아우르는 곳으로 꾸며 나갈 계획이다. 분기별 음악회와 전시회도 계획하고 있고, ’아름다운 성당’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혼배 전담 성당으로도 가꾸어 나갈 구상을 하고 있다. 피로연장은 피정의 집 식당을 이용하면 된다.

 

피정의 집 음식은 대부분 이 지역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지역 농민 살림에도 보탬이 된다. 농민들은 농약을 적게 사용하고 있어 이용자들도 믿을 수 있는 먹을 거리를 만날 수 있다.

 

또한 피정의 집 이용자 중 단체(20명 이상)로 인근 아산 나트륨 온천을 이용할 때는 4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계약도 맺어 놓았다.

 

오남한 신부는 "이 지역 여건이 국제 휴양도시와 비슷한 면이 많다"며 이러한 면을 아우르는 문화 관광사목에 역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평화신문, 제753호(2003년 12월 21일), 이연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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