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14주일(가해) 마태 11,25-30; ’23/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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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3-06-24 ㅣ No.5443

연중 제14주일(가해) 마태 11,25-30; ’23/07/09

 

 

지난 피정 때, 기도하면서 코로나 19로 우리 곁을 떠난 분들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감염되어 가족과 친지들과 격리된 채 세상을 떠난 분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장례미사는커녕 가족들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화장장으로 이송되어 버린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분들을 기억하면서, 많은 시간을 기도했지만, 그분들이 가시는 길에 아무것도 제대로 해 주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허무함을 느끼며 우울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가족과 친지를 떠나보낸 분들 중에는 술과 약에 의지하여 애써 잊으려고 하거나, 홀로 운둔하면서 보속과 희생의 순간을 보내시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가족과 친지를 떠나 보낸 분들도 그렇거니와, 코로나19로 잡혀 있었던 세월 동안 답답하고 깝깝한 감정들을 풀어버리고, 알게 모르게 쌓여 있던 스트레스를 확 풀어버리고 싶은 마음에서 여행이라도 확 떠나버리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아예 이민을 가고 싶다고 하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서 살기가 마땅치 않고 어딘지 모르게 잘 안 풀린다고 여기거나 더 큰 나라에 가서 더 좋은 조건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가끔은 새로운 제2의 인생이 펼쳐지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서 안 되는 것이 저기서도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건이 변화되어 풀리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변하지 않고서는 여기서도 저기서도 안 풀리는 인간관계도 있는가 봅니다.

그런가 하면, 비단 풀리지 않는 장벽들만이 아니라, 내 맘에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채워지지 않고, 공허하고 허전한 가슴을 쓸어안게 만듭니다.

 

그런데, 여행 중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다고 해도, 잠깐 동안 새로운 것이 나의 관심사로 등장했다고는 하지만, 다시 또 돌아와 변함없이 나를 반기는 긴장과 갈등의 일상은 나를 여전히 불편하게 합니다. 그렇고 보면, 세상 어느 누가 나를 편안하게 해 줄 것이며, 세상 어느 것이 나를 만족스럽게 해줄 것인가? 나 자신이 생각해도 스스로 썩소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돌이켜 보건데, 이런 일을 해도 저런 일을 해도, 이곳에 가든 저곳에 가든, 나를 편안하게 해 주실 분과 나를 만족스럽게 해 주실 분은 오로지 우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뿐이십니다. 예수님께 기도하다 보면, 예수님의 몸을 모시고 나면,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를 평안케 하고, 내게 내적 충만함과 풍요로움 그리고 굳건한 힘을 안겨주십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내 맘이 충만하고 평안해야 세상의 풍파를 겪어도 견뎌내고 이겨내고 굳건하게 설 수 있는 것이지, 누가 대신 풀어주는 것도 아니요, 누가 대신 풀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나도 채울 수 없는 내 허전한 마음을 누가 나를 대신하여 채워줄 수 있겠습니까?

 

많은 분이 평화를 얻기 위하여 성당에 온다고들 합니다. 성당에 오면 어떤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까? 성당에서는 어떤 평화를 줄 수 있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 11,25)

 

사람들은 묻습니다.

어떻게 기도만 하고 살 수 있습니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우리의 처지를 어떻게 헤아리셔서, 채워주실 수 있습니까?’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 어떻게 땅에 있는 우리의 문제를 대신 풀어주실 수 있습니까?’

기도한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갈등이 해소되고 문제가 풀려야 해결되는 것이며, 세상이 변해야 달라지는 것이지!’

기도한다고, 주님의 몸을 모신다고, 하늘에서 돈이 쏟아져 내리는 것도 아니요, 공짜로 밥과 술이 떨어져 내려 먹여주는 것도 아닌 바에야, 어떻게 나를 살린다고 하는 것입니까? 배고프기는 마찬가지인데!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26) 예수님을 통하여 어떻게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집니까?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앎과 생명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심장이식이 아닙니다. 내가 처해 있는 가정과 세상의 조건과 상황들이 나를 마치 옥죄기라도 하듯이 몰아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숨조차 쉴 수 없는 듯한 괴로움에서, 그야말로 언제 터질 줄 모르는 답답함과 타는 목마름 속에서, 우리에게 한가닥 숨을 쉬게 해주고, 우리의 목마른 가슴을 적셔줄 수 있는 분이신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총의 깨달음과 영원한 생명을 내려주십니다.

예수님께 기도하지 않으면,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태초에 세상에 나면서부터 한계지어지고 제한된 세상 속에서 제한된 인간 조건을 가지고 살고 있는 우리네 삶이 생생히 살아 숨쉴 수 없습니다. 반복적으로 불쑥불쑥 우리 인생 앞에 나타나는, 예기치 않은 장애들이 우리를 막아섭니다. 때로는 사람이고, 때로는 사건 사고이고, 때로는 상황입니다. 때로는 운이 없다고 여기며 그냥 지나칠 정도의 것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숨이 턱턱 막히고 등줄기에 식은 땀이 줄줄 흐를 정도의 어려움을 겪어야만 하는 장애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러한 외적인 장애들 이외에도 나 자신의 장애도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27) 실제로, 기도한다고 해서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나 자신이 변화되어 세상에서 오는 어려움을 견디어 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심리적 정신적인 장애들이 스르르 지워지기도 합니다.

주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크나큰 사랑에 내 안에서 나를 괴롭히던 악마의 움직임이 맥없이 스러지고, 내 조급하고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이 주님 사랑으로 충만해짐으로써 풍요한 마음으로 평안하게 안정을 되찾게 됩니다. 그리고 내 맘속에서 악마가 복수하라고 충동하는 유혹을 뿌리칠 수 있으며, 용서하지 말라고, 억울하다고, 손해 본다고, 나를 그 미움과 원망 안에서 가둬 놓아, 결과적으로 악마의 굴레에 갇혀 있던 나를 주님의 커다란 사랑으로 녹여 주심으로써 해방되게 되고 평안을 되찾게 됩니다.

아울러 상대의 마음속에서, 상대를 충동질하여, 상대가 나를 괴롭히도록 했던 악마와 악마의 꾐에 빠져, 나를 괴롭히던 이웃을 용서하게 됩니다. 비록 현세를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연유로 죄 중에 있더라도, 더 이상의 죄악에 물들지 않도록 해주며, 더 큰 해악을 끼치지 않도록 해주십니다. 또한 현세의 제도와 사회의 인습상 죄인으로 낙인찍혀 있다 하더라도, 주님의 무한히 자비로우신 사랑 안에서 영원히 버림받지 않을 것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28) 그렇게 현세의 장애와 장벽으로 상처 나고 헤매고 있는 나를 위로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다시 일으켜 주셔서, 주님과 형제들 앞에 설 수 있게 해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인도해 주심으로써, 주님께서 내려주신 새 생명의 은총으로 오늘을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께서 내려주시는 생명은, 내가 또 다시 악마의 충동질로 인한 죄악의 유혹을 선택하게 되어, 내가 포기하게 되지만 않으면, 누가 뺏어갈 수도 없고, 누구에게 빼앗기지도 않으며, 진정 내 삶의 원동력이요, 내 삶의 양식이며 안식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29) 주님 안에 잠긴 나는 어느 누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아무도 칭찬해 주지 않아도, 아무도 나를 눈여겨 봐주지 않아도, 우리 주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면서 나를 지켜봐 주고 계시고 나를 사랑해 주시고 계시니, 주님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고 주님 마음 안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렇게 주님 안에 머무르게 되면, 참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마치 우리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어머니 뱃속에서 아무런 걱정이나 두려움 없이 평안했던 그때처럼,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30) 미사 성제와 복음 봉독과 기도와 성사를 통해, 주님을 모시고 주님과 하나가 되는 나는 이제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고 주 예수님께 속하여,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하시고자 하셨던 하느님 나라 건설을 향해 나아갑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죄악에서 해방되고 상처를 치유받으며 위로받아 영혼의 건강을 회복하여, 나처럼 죄악의 굴레에 빠져 고통을 겪고 있는 이에게 주님 사랑을 전하고, 주님 품 안에서 그 역시 해방되고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인도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악에서 해방되고 현세의 어둠에서 벗어난 나를 새로 일으키시어, 주님 사랑의 사도로 선발해주시고, 세상의 어둠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서 헤매이는 이들에게 보내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랑 나눔이요, 사명이요, 선교입니다.

 

비록 여행은 가지 못해도, 비록 질 좋은 화장품과 의약품으로 더 아름답게 치장하지는 못하더라도, 비록 현세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는, 그런 성공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비록 현세에서 물질적으로 부자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주 예수님께서 내 갈증을 채워주시고, 내 목마름을 적셔주시며, 내 영혼에 생명의 양식을 안겨주시니,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울러 주 예수님과 함께할 때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의미의 평화와 행복을 누림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우리에게 이런 큰 영광의 기회를 허락하시고 부르고 계신 주님 대전에 나아와, 주님의 몸을 영하고 주님께서 내려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길로 나아갑시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9)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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