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23/07/05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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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3-06-24 ㅣ No.5439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23/07/05 수요일

 

한국인 최초의 사제로서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21년 충남 솔뫼에서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르술라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양반 가문이었으나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1801년 신유박해 때 집안이 몰락하였습니다.

 

김대건은 열여섯 살인 1836년 사제가 되고자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길을 떠났습니다. 1844년 부제품을 받은 그는 선교 사제의 입국을 돕고자 잠시 귀국하였다가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1845817일 상하이의 진쟈샹[金家巷]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고국에 돌아온 김대건 신부는 서해 해로를 통한 선교 사제의 입국 통로를 개척하려다가 18466월에 체포되어 여러 차례 문초를 받고 916일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456일 서울에서 한국 순교자 103위를 시성하면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정하상 바오로와 함께 한국의 대표 성인으로 삼았습니다.

 

예전에 신학교 때 마지막 수업으로 기억됩니다. 교수 신부님 한 분이 들어오셔서 저희 부제들에게 예수님을 따르는 착한 목자는 죽을 목자니까, 이제 나가서 어떻게 살고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인지는 너희가 정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겐가 질문을 받을 때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19-20)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사목생활을 겨우 1년 남짓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잡히면 죽게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신학생 시절부터 사제품을 받고서야 겨우 들어올 수 있었던 귀국로를 개척하기 위해 수도 없이 여러 번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혼신을 다하여 두드리고 시도해 오셨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했는가가 아니라, 그분이 자신의 생애를 통해 주님을 향한 올곧은 마음과 깊은 사랑의 열정으로 점철해 왔음을 바라봅니다. 결국 잡혀서 죽게 되는 그 순간까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영의 이끄심을 따라 움직이셨음을, 그래서 순교의 영광을 얻게 되셨다는 사실이 우리를 고개 숙이게 해줍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불타올라 주님을 찬미하고, 주님 영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응답하며, 형제들에게 봉사하며 주님을 따를 수 있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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