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레지오

2006년 4월호 [내 인생의 레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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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마리애 [legio] 쪽지 캡슐

2006-03-24 ㅣ No.49

 

제가 성당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은 6․25전쟁 중 1․4후퇴 때 38선을 넘어와 부산 수영에 피난민으로 정착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고향 함흥 친정에 맡긴 큰아들이 그립고, 피난길에서 하늘나라로 보낸 6개월 된 작은아들 생각에 너무나 마음이 아파 혼자 이웃에 있는 성당을 찾아가 보았지요. 찾아간 성당은 수영공소로 마당에 멍석을 깔고 천막 안에서 몇몇 사람이 미사란 것을 봉헌하고 있었습니다.

자매 한 분이 처음 왔느냐며 친절하게 맞아주었지만 어색하고 생소하여 그 자리를 황급히 빠져나와 버렸어요. 그러나 마음엔 항상 다시 성당을 찾으리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저는 1924년 11월 6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부모님이 초등학교를 설립할 정도로 부유한 가정의 1남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나 한없는 사랑을 받으며 자라다가 21세 때 남편 조국열과 결혼을 하여 아들 둘을 낳고 오순도순 살았는데 6․25전쟁으로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의 피난생활은 참으로 고생과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려움을 모르고 살아와서 더욱 그랬겠지요. 그래도 착실하고 성실한 남편이 사진관 일을 하면서 아들 둘, 딸 셋을 낳고 통일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어느 날 어린 막내딸이 갑자기 아프더니 천국으로 가버렸지요. 그리하여 괴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하루는 꿈에 막내딸이 이름 모를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가운데 활짝 웃으며 ꡒ엄마, 성당에 꼭 나가세요ꡓ 했습니다. 그 꿈이 너무나 선명하여 성당에 가서 봉사를 하시는 자매님께 꿈 이야기를 하였더니 ꡒ성모님께서 부르셨어요ꡓ 하며 성당에 함께 다니자고 했지요. 그때는 수영공소가 수영성당으로 발전되어 있었습니다.

성당에서 교리문답도 외우고 교리교육을 받아 1962년에 김기봉(필립보) 신부님께 세례를 받고 아들딸도 다 세례를 받도록 했습니다. 그 즈음에는 누구나 다 먹고살기가 어려워 성당에서 구호품으로 나누어주는 밀가루와 강냉이가루를 얻기 위해 신자가 되기도 했었는데 하느님은 하늘로 보낸 어린 딸을 통해 나를 부르고 계셨던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가운데도 행복한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남편이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남편 병 수발도 해야 하는 어려움이 또 닥쳐왔습니다. 이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주님께 열심히 기도를 하며 지친 일상에서도 미사 참례는 물론 철야기도회에도 참가하는 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쁘게 살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가 1972년도에 광안성당 그리스도의 모친 쁘레시디움에 입단을 하면서 레지오를 알게 되었어요. 당시 수영성당이 광안동으로 이사오면서 광안성당으로 명칭이 바뀐 것입니다. 레지오에 입단하고부터 힘들 때 매달릴 곳은 주님뿐이란 나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많은 사람들을 하느님의 대전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성당엘 나가기를 거부하던 남편은 병석에 누워 제가 성당에 갔다오면 옆에 있는 재떨이나 물건을 닥치는 대로 던지면서 ꡒ성당에 가면 밥이 나오느냐 떡이 나오느냐ꡓ 하면서 역정을 내며 우리 가족을 힘들게 했지만 아무 말 없이 남편을 성모님께 봉헌하며 열심히 기도하였더니 어느 날 불쑥 교리교육을 받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기뻐서 수녀님을 집으로 모시고 와서 면담을 하게 한 후 교리문답과 기도문을 가르쳐 주시게 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기도문을 외우거나 공부를 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영세찰고 때 수녀님께서 ꡒ기도문을 다 외웠다ꡓ고 하셨습니다. 남편은 전에 성당을 악평하였던 것이 쑥스러웠던지 몰래 공부를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기다려 주시지 않으시어 세례를 받기 직전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대세를 받고 조용히 하느님의 품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남편의 나이는 54세, 레지오 단원이 아니었다면 평생의 동반자인 남편의 영혼 구제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다시 한번 단원으로 활동한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레지오에서 남을 위한 봉사활동을 몰랐다면 오직 나만을 위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쁘게 장사를 하면서도 레지오 회합시간이 되면 단골집에 물건을 맡기고 한달음에 뛰어가서 쁘레시디움 회합에 빠짐없이 참석하였지요. 남 앞에서 말 한마디 잘 못하던 성격이었지만 쁘레시디움의 여러 간부를 거치면서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는 보너스도 덤으로 주님께서는 주셨습니다.

단원으로 열심히 활동을 하다보니 15년, 20년, 25년 근속상도 받게 되었고 꼬미씨움의 우수상을 받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용호성당으로 옮겨와서는 파티마의 성모 쁘레시디움에서 지금까지 동료 단원들과 형제애를 나누며 즐겁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은 레지오를 통해 나에게 어떤 어려움도 참아 받을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신 것입니다. 

자식들에게는 어릴 때부터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도록 하니 모두 착하게 잘 자라 주었습니다. 성당에서 학생회, 청년회, 청년 레지오 간부를 맡아 봉사하면서도 학교성적이 항상 상위권으로 공부도 잘하였고 지금은 모두장성하여 사회에서도 한몫을 하며, 성당에서는 사목회 부회장․빈첸시오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아들 미카엘과 바오로, 레지오 간부․주일학교 교사․성모회․구역봉사자인 며느리 가타리나와 로사, 전례부․꾸리아 간부․구역반장인 딸 크리스티나, 본당 사목위원․꾸리아 간부로 봉사하는 사위 요셉, 청년회에서 활동하는 손자들…. 너무나 신나게 성가정을 이루며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한없이 외롭고 어렵던 시절 마음의 위로를 받기 위해 찾아갔던 성당, 주님께서는 저에게 너무나 행복한 삶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또 레지오의 활동을 통해 찾아가서 주님을 전한 그 대상자가 진정 그분들이 아니라 결국은 저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여든세 살의 할머니지만 주님이 불러 가실 때까지 ꡐ어머니시여, 모후시여, 나는 오로지 당신 것…ꡑ 단가를 부르며 묵주를 들고 열심히 활동대상자를 찾아갈 것입니다. 아멘.

_이영옥 루치아/부산 용호성당 파티마의 성모 Pr. 부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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