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가을의 끝자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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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1동성당 [suyu1] 쪽지 캡슐

2005-11-13 ㅣ No.485

 

작가 최인호님은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앞서간 누나를 그리면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1987년이니, 벌써 이십 년 가까이 되어간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반세기가 되어가고, 한 형제로 태어났던 큰누이와 막내누이도 돌아기신 지 벌써 오륙 년, 언제나 이 한세상에서 함께 지낼 것 같은 가족들도 어느새 반 이상 우리 곁을 떠나 저세상으로 떠나가셨다.

그리움도 많이 퇴색되어버려서 문득문득 떠오르긴 하지만 가슴이 저미거나 보고 싶다는 감정은 떠오르지 않는다 [...]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누이들과 같은 성을 쓰고 같은 집에서 아빠, 엄나, 누나라는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며 소꿉장난을하듯 재미있게 놀다가 '이제는 그만 들어오아 밥먹어라아-'하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먼저 돌아가버린 동무들처럼 느껴진다. 남은 우리들도 언젠가는 '인호야, 그만 들어와 밥 먹어라아-'하는 소릴 들으면서 소꿉장난의 낯선 골목길을 떠날 것이다.

남아 있는 우리들은 먼저 집으로 들어가버린 동무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고 슬퍼하고 있지만 우리들이 머물고 있는 이 골목길이 오히려 바람불고, 쓸쓸하고, 무서운 낯선 곳일 것이다. 먼저 편안한 저 세상의 집으로 돌아간 엄마와 아빠, 그리고 누이들은 살아 있는 우리들의 눈으로는 보지 못하는 신비의 커든 사이로 우리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제 날이 저물고 있으니 어두운 골목에서 그만 헤매지 말고 들어오라고 손짓하고 있는지 모른다."

-최인호,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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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세상살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마치 이 세상살이가 전부인양 아둥바둥하면서 마음 상하고 상처입히면서 사는 것은 아닌지요. 골목길에서 동무들과 놀던 한 순간에 불과한 인생살이인데, 거기에 너무 연연하는 것은 아닌지요. 이런 반성을 하면서 욕심과 집착, 아집, 미움을 훌훌 털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나보다 앞서간 사람들, 특히 많이 사랑하던 사람이라면 너무도 그립겠지요. 하지만 그들은 편안한 제 세상의 집에서 신비의 커든 사이로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두운 골목길에서 헤메고 있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오히려 그들을 부러워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을의 끝자락에 있습니다. 결실의 계절인 가을을 보내면서, 우리 마음에는 어떤 결실이 맺어졌는지 생각해봅니다. '하늘 아버지의 집'에 대한 확신이 좀 더 분명하게 마음 속에 자리잡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 확신에 두 발을 딛고 서서 세상살이의 짐을 많이 덜어버리고, 세상의 온갖 속박에서 많이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손희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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