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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신앙의 수호자 베네딕토 16세 (하) 사랑의 아버지, 겸손한 순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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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3-09 ㅣ No.67

‘영원한 신앙의 수호자’ 베네딕토 16세 (하) 사랑의 아버지, 겸손한 순례자
 
신앙에 적대적인 사회에서 근본 가치 회복 위해 헌신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세속주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하느님의 진리를 알린 교회의 파수꾼이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신앙의 근본가치를 회복하는데 헌신한 이 시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신앙에 적대적인 세상 흐름에 맞서, 누구보다 용감하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끊임없이 알려왔다.

보수적 성향으로 교회의 현대화를 더디게 하고 교황청 개혁을 이끌 지도력에서는 한계를 보였다는 등 지적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현대인들의 기억 속에 남을 전임 교황은 세속화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하느님의 진리를 증거하며 사랑의 끈을 놓지 않은 ‘아버지’였다. 그리고 교황으로서의 마지막 모습은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의 겸손함 그 자체였다.

“저는 이제 이 세상에서 마지막 순례를 시작하는 한 명의 순례자일 뿐입니다.”


■ 교회의 파수꾼으로 헌신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추기경 시절 한 인터뷰를 통해 “차기 교황의 가장 큰 과제는 가톨릭교회의 일치를 보존하고, 다른 종교와의 대화를 지속하고, 과학과 기술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 윤리와 종교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재임 기간 동안 그가 펼친 교황으로서의 행보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오늘날 세상에는 가난과 굶주림, 자포자기와 외로움, 파괴된 사랑, 생명 존엄성의 상실 등 수많은 ‘사막’이 존재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을 사막에서 그리스도의 빛으로 이끌어내야 합니다.”

베네딕토 16세는 지난 2005년 즉위미사 강론을 시작으로 언제 어느 때나 ‘신이 없는 인간 사회’가 인간을 얼마나 심각한 위험으로 내모는 지에 대해 역설해왔다.

특히 누구나 하느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고 삶에 적용하며, 세속주의 등의 장애물을 넘어 이 시대에 널리 전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극을 제공했다. ‘바오로의 해’ 선포에 이어 ‘사제의 해’, ‘신앙의 해’ 선포 등은 이러한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결실이다.

각 기념 해를 지내는 여정은 개개인의 신앙이 관념 혹은 혼동 위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이며 정확한 토대 위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데 큰 디딤돌이 되고 있다.

전형적인 학자풍의 교황으로, 신학의 연장선상에서만 교회를 지키려는 노력이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개개인의 삶 전반에서 양심 성찰을 지속하고 신앙을 북돋우도록 이끈 지도자의 모습이다.


■ 화해와 대화 실현

교황 재임 기간 동안 베네딕토 16세가 열정을 다해 추진한 대표적인 활동으로 ‘화해’와 ‘대화’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즉위 직후부터 종교와 이념의 벽을 허물고 상호 협력하고 대화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 그리스도교의 일치와 종교간 대화, 비신자들과의 대화가 자신의 첫 번째 임무라고 밝혔다. 특히 해외 각국을 순방할 때마다 그리스도교 및 타종교, 비신자들과의 대화에도 적극 나섰다.

이에 따라 그리스도교의 일치 여정에서는 큰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성공회 신자 및 성직자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할 수 있는 교회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영국교회를 공식 방문하기도 했다. 동방가톨릭 및 정교회 수장들과 형제적 친교를 나누는 모습도 꾸준히 볼 수 있었다.

유다교와 이슬람교 지도자들과 대화하는 모습은 이 시대에 더욱 큰 징표가 됐다. 그는 주교 시노드에 랍비를 초대해 연설하도록 한 최초의 교황이기도 하다. 또 아프리카와 중동 평화를 위해 가톨릭과 이슬람의 협력을 강조하고, 현대교회가 실천해야 할 바를 제시해왔다.

중국교회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은 교황이었다.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서는 식민지화와 복음화 과정에서 정당화할 수 없는 과오가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사목적 배려는 한반도에도 이어져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베네딕토 16세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비롯한 평화와 화해를 독려하고 격려하며, 특히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나눔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 이 시대를 살아갈 나침반 제공

교황직의 핵심은 대개 첫 회칙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간주된다. 베네딕토 16세는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사랑의 회복’을 강조했다. 그의 회칙에서는 특히 인류 역사와 그 안에 깃든 하느님의 섭리를, 해박한 신학적 지식과 확고한 신앙을 바탕으로 전개해 낸 통찰력이 돋보인다.

두 번째, 세 번째 회칙은 각각 그리스도인의 구체적인 일상생활을 올바로 이끌어나갈 나침반 역할을 한다.

그는 두 번째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Spe Slavi)에 현대 사회가 참된 그리스도교적 희망을 회복하길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았다.

‘진리 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은 베네딕토 16세가 발표한 세 번째 회칙이자,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선언한 사회회칙이다. 그는 나날이 심각해지는 세계화의 폐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진리 안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 회칙을 통해 세계 경제 위기는 근본적으로 도덕적 위기라고 지적하고, 복음에 비춰 인간 발전과 행복의 원리원칙들을 제시했다.


■ 못다한 과제

마지막 일반 알현에서 베네딕토 16세는 지난 8년여 간의 영적 여행을 되짚어보며 “기쁨과 영광의 순간도 있었지만 쉽지 않은 순간도 있었다”며 “교회는 폭풍우 치는 바다를 통과하는 한 척의 배와 같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배가 가라앉도록 두시진 않는다”고 전했다.

재임기간 내내 그의 어깨를 짓누른 대표적인 문제는 사제 성추행과 관련한 사건들이었다. 사제들이 저지른 범죄를 은폐했다는 논란은 심각하게 확산됐고, 이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는 교황 사임 요구까지 제기된 바 있다.

베네딕토 16세는 성추행 문제와 관련해 ‘입에 담을 수 없는 범죄’라며 직접 사과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과 만남을 가지고 성추문 사건을 다루는 지침도 수정해 내놓았지만, 그러한 대처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더욱 컸다. 그는 사제 처벌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침묵으로 일관하는 교황’, ‘약속은 많이 했지만 실행에 옮긴 것은 없는 교황’이라는 질타까지 감내해야 했다.

또한 여성 사제서품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하지 않은 것을 비롯해 동성애와 동성 간 결혼 허용, 낙태, 콘돔 사용을 강력히 반대함으로써 사회 변화를 외면했다는 비난도 지속돼왔다. 타종교와의 대화와 관련해서도, 학술적 연설이 이슬람권의 격렬한 반발을 일으키는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베네딕토 16세가 재임기간 맞닥뜨린 모든 문제들과 관련해 끝까지 고수한 태도는 ‘그리스도로부터 비롯된 사랑은 그 무엇보다 강하다’라는 믿음이었다.

그리고 베네딕토 16세는 복음으로 돌아가 다시 물었다.

‘무엇이 본질인가’, ‘시대의 변화에 맞게 올바르게 변화하는 것은 무엇인가’.


■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주요 행보

▲ 2005년 4월 19일 - 제265대 교황 선출
    4월 24일 - 제265대 교황 즉위
    8월 - 첫 해외순방 독일 방문, 제20차 세계청년대회 참석
    12월 25일 -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발표

▲ 2006년 2월 22일 - 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 포함 추기경 15명 임명
    5월 - 폴란드 방문
    6월 - 스페인 방문, 제5차 세계가정대회 참석
    7월 23일 - 세계감리교협의회와 의화교리 공동선언
    11월 - 터키 방문

▲ 2007년 2월 22일 - 교황권고 ‘사랑의 성사’ 발표
    4월 - 「나자렛 예수」 첫 권 발행
    5월 27일 - ‘중화인민공화국 가톨릭교회의 주교와 신부, 봉헌된 이들과 평신도들에게 보내는 서한’ 발표
    6월 28일 - ‘바오로의 해’ 특별희년 선포
    7월 7일 - 1970년 개혁 이전의 로마 전례 사용에 관한 자의교서 ‘교황들’ 발표
    10월 17일 - 추기경 23명 임명
    11월 30일 - 두 번째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발표

▲ 2008년 5월 24일 - ‘중국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에 서산 성모님께 드리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기도’
    7월 - 호주 방문, 제23차 세계청년대회 참석

▲ 2009년 1월 24일 - 비오 10세 형제회 소속 주교 4명 사면 교령 발표
    1월 23일 - 유튜브에 바티칸 채널 개설
    3월 - 아프리카 방문
    5월 - 이스라엘 방문
    6월 19일 - ‘사제의 해’ 개막미사, ‘아르스의 본당 신부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천상 탄일 150주년에 즈음하여 사제의 해를 선포하는 서한’ 발표
    6월 29일 - 세 번째 회칙 ‘진리 안의 사랑’ 발표
    7월 2일 - 비오 10세 형제회 문제 다룬 자의교서 ‘교회 일치’ 발표
    10월 -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아프리카 특별총회
    11월 4일 - 교황령 ‘성공회 신자 단체’ 발표

▲ 2010년 6월 - 영국 방문
    9월 21일 -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 신설에 관한 자의교서‘언제나 어디서나’ 발표
    9월 30일 - 교황권고 ‘주님의 말씀’ 발표
    10월 - 중동 주교 시노드 특별회의

▲ 2011년 5월 1일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식
    5월 16일 - 사제 성추행 문제 관련 서한 발표
    8월 - 스페인 방문, 제26차 세계청년대회 참가
    10월 11일 - ‘신앙의 해’ 제정 관련 자의교서 ‘믿음의 문’ 발표
    10월 22일 - 추기경 24명 임명
    10월 27일 - 아시시, 세계 평화를 위한 종교지도자 모임 주관
    11월 19일 - 교황권고 ‘아프리카의 사명’ 발표

▲ 2012년 2월 18일 - 추기경 22명 임명
    3월 - 멕시코·쿠바 방문
    9월 - 레바논 방문
    10월 11일 - ‘신앙의 해’ 개막미사
    10월 - 제13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총회
    10월 24일 - 비유럽권 추기경 6명 임명
    12월 12일 - 개인 계정으로 트위터 활동 시작

▲ 2013년 2월 11일 - 사임 발표
    2월 28일 - 사임

[가톨릭신문, 2013년 3월 10일, 주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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