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성당 게시판

침묵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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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미 [seungmi] 쪽지 캡슐

2000-08-08 ㅣ No.2579

수도자들에게 과묵이나 침묵은 미덕으로 여겨지고있다.

묵상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안에 고여 있는 말씀을 비로소 듣는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그소리는 미처 편집되지 않은 성서다.

우리들이 성서를 읽는 본질적인 의미는 아직 활자화되어 있지 않은 그 말씀까지도 능히 알아듣고 그와같이 살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일상의 우리들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으로써만 어떤 사물을 인식하려고 한다.

그러나 실체는 저 침묵처럼 보이지도 들리지도 잡히지도 않는데에 있다.

자기 중심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허심탄회한 그 마음에서 큰 광명이 발해진다는 말이다.

말은 의사소통의 구실을 하지만 때로는 불필요한 잡음의 역기능도 하고 있다. 구시화문,입을 가리켜 재앙의 문이라고 한 것도 그 역기능적인 면을 지적한 것이다.

수도자들이 침묵하는 것은 침묵 그 자체에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침묵이라는 여과 과정을 거쳐 오로지 `참말`만을 하기 위해서다.

침묵의 조명을 통해서 당당한 말을 하기 위해서다.

칼릴 지브란은 우리들이 해야 할 말을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귓속의귀에" 하는 말이라고 했다.

사실 언어의 극치는 말보다도 침묵에 있다.

너무 감격스러울때 우리는 말을 잃는다.

그러나 사람인 우리는 할 말은 해야 한다.

그런데 마땅히 입 벌려 말을 해야 할 경우에도 침묵만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미덕이 아니라 비겁한 회피다.

그와 같은 침묵은 때로 범죄의 성질을 띤다.

옳고 그름을 가려 보여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침묵은 비겁한 침묵이다.

비겁한 침묵이 우리 시대를 얼룩지게 한다.

침묵의 의미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대신 당당하고 참된 말을 하기 위해서지, 비겁한 침묵을 고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디에도 거리낄 게 없는 사람만이 당당한 말을 할 수 있다.

당당한 말이 흩어진 인간을 결합시키고 밝은 통로를 뚫을수 있다.

수도자가 침묵을 익히는 그의미도 바로 여기에있다.

 

                                          1974년 법정스님께서 쓰신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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