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2010년~2011년)

제 인생 저녁 빈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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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온균 [gsbs] 쪽지 캡슐

2011-09-13 ㅣ No.7379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착복식이 끝나자마자, 원장수녀는 데레사에게 명했습니다.

 오늘부터 주방 일을 맡아주세요." 

데레사사는 기쁜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녜, 수녀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하느님, 오늘부터 가르멜수녀원 주방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제게 첫 소임으로 이렇게 좋은 일을 맡겨주심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제 자신을 낮추고 오만한 마음을  성모님 발밑에 봉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잘 참아내며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데레사는 하루 일과 안에 벌어지는 작고 사소한 일에서도 하느님을 찾았고, 

그 하찮은 사건을 통해서 크나큰 영적 진보를 일궈냈습니다.

데레사는 다른 수녀님들이 함부로 내팽개쳐놓은 이불을 개거나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져있던 옷가지를 차곡차곡 정리해 옷장 안에 넣는 등,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작고 하찮은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데레사는 정리정돈 및 청소의 대가였습니다.

그리고 데레사는 그 모든 것을 하느님과 성모님께 봉헌했습니다.

 "하느님, 저는 작은 영혼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작은 선물밖에 드릴 수 없습니다.

 지난 날, 지나친 욕심 때문에 너무 많은 영혼을 놓쳤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낙심하지는 않겠습니다. 좀 더 희생하고,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선종하기 직전 데레사는 각혈을 하는 등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도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그럴수록 데레사는 더욱 기도에 매진했습니다.

 데레사가 우리에게 남겨준 영성의 특징은 아주 독특합니다.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데레사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성의 길을 우리에게 제시했습니다.

일상에서 매일 우리가 접하 아주 작고 하찮은 일을 열심히 함을 통해서도 높은 영적 생활에 도달할 수 있음을 알려줬습니다.

 매일의 작은 수고와 번거로움, 귀찮음을 기꺼이 참아내고,

 그것을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하는 것, 그것이 데레사가 우리에게 선물로 남겨준 영성의 길입니다.

 좋으신 아버지께 대한 어린이다운 완전한 의탁,

아버지 품에 꼭 안기려는 자녀다운 신뢰,

아버지께 모든 것을 다 걸고 모든 것을 다 바치려는 순수한 봉헌,

 그것이 데레사가 개척한 성성(聖性)의 특징이었습니다. 

 놀라운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남보다 앞서고 싶어 하고, 남을 딛고 올라서려고 하지요.

 그러나 데레사는 언제나 사람들의 발아래 짓밟히는

한낱 작은 모래알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조그마한 모래알을 찬란히 빛나는 별로 만드셨습니다. 

 다음은 첫 서원식 때 데레사가 품에 지니고 있던 기도문 가운데 일부입니다.

 "오직 예수님, 당신만이 저의 '모든 것'이 되어주십시오."

 "제가 절대로 수녀원의 짐이 되지 않게 하여주시고,

 그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말게 하시며,

 제가 예수님 당신의 작은 모래알처럼 잊혀져 발에 밟히게 하소서."

 "예수님, 저로 하여금 많은 영혼을 구하게 하시고,

 오늘 지옥에 떨어지는 영혼이 하나도 없고,

 또 연옥의 모든 영혼이 구원을 받게 하소서."

 "예수님, 저는 다만 제 존재가 당신께 기쁨과 위로가 되기를 바라나이다." 

 과거에 우리는 이 성녀를 소화(小花) 데레사라고 칭했습니다.

 의미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데레사는 정녕 하느님 앞에 한 송이 작고 예쁜 꽃이었습니다. 데레사는 작음의 소중함, 작음의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보여준 성녀였습니다.

 확대 지향적 물질만능주의 영향 아래 큰 것,

많은 것들에만 각별한 의미를 두는 이 세상에서

작은 꽃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 데레사였습니다.

 작아지고 작아져서 더 이상 작아질 수 없게 됐던 데레사,

마치 하느님의 손수건처럼 가벼운 존재가 된 데레사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품에 안길 수가 있었습니다.

 너무도 큰 사람, 너무도 높은 사람,

너무도 가진 것이 많은 사람, 머릿속에 든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은

너무 무거워서 하느님 품에 쉽게 안길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버릴 만큼 버린 사람, 밑으로 밑으로 내려간 사람,

작아질 대로 작아진 사람, 최대한 자신을 낮추고 구부린 사람은

그 무게가 너무나 가벼워서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 자비의 품안에 머무는 행복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의 주님, 제 인생의 저녁에 빈손으로 저는 당신께 나아갑니다."

 안타깝게도 데레사는 24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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