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노기남대주교님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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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 [animation] 쪽지 캡슐

2008-08-25 ㅣ No.7974

저는 노기남대주교님에 대해 거의 모르고 살았습니다...

모태신앙인 까닭에 천주교 신자로 살아왔지만 그냥 주일학교 때 배운
'한국 최초의 주교'라는 것 밖에 몰랐습니다...

사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대학에 들어가서 학교 도서관에 들락거리며 지난 날들에 대한 여러가지
사실을 스스로 배우게 되면서 박정희 군사정권이 얼마나 잘못된 정권이었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친구들과의 설익은 정치 대화에서 항상 박정희대통령을 옹호했던 기억때문에 말입니다...
(집에서 조선일보만 봐왔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완벽하게 세뇌되어 있던 것 같습니다...)

친일파였고 민주주의를 파괴했던 괴수가 박정희라는 걸 알고서 무척이나 큰배신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배신감에 대한 반발로 줄곧 빨갱이로만 알아왔던 김대중씨에 대해 새로운 존경심이
우러나기도 했습니다...

전두환 시절 민주화를 열망하는 분들의 입에서 노기남대주교에 대한 얘기가 간간히
흘러나왔습니다...

저는 우리 가톨릭 어른에 대한 비판이 무척이나 불편했기에 애써 외면하곤 했습니다...

손이 안으로 굽는 것도 있었겠지만 제가 그러한 부분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후 조금씩 노기남대주교님에 대해 알아보고 하면서 어느 정도 상황을 인식하고는
있습니다...

성당 친구나 선후배들과는 노주교님에 대해 얘기할 일이 거의 없었고 사회생활 안에서
만난 분들과 대화에서 가끔 노주교님에 대한 비판이 나오면 저는 인정하면서도
변명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었습니다...

일제의 뜻을 따라 많은 친일 행동을 한 것과 박정희 정권을 비호했던 부분들...

친일인명사전에 오를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사실들...

대충 알지만 변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겠지요...

다만 어제 오늘 우리 가톨릭 게시판에서 노주교님이 거론 되는 상황에서 저도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이곳에서 마저 변명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다른 곳에서라면 또 변명을 할 지 모르지만...)

사실 제가 함부로 거론하기엔 너무 어려운 분의 문제이기에 거북하기도 합니다만
몇 몇 분들의 왜곡된 생각들 때문에 짧게나마 얘기하고 싶어졌습니다...


일관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충실한 황국신민으로 의무를 다하기 위해 무언복종하고 일치협력하라' 등...

일제 시기 언론매체를 통해 일제의 역군이 되라고 강변하셨던 분이고
해방 이후 미군정, 정계의 고위 인사들과 끊임없는 관계를 지속하신 분이죠...
(친일에서 친미로 적극 변신도 하셨죠...)

제헌국회 선거 때는 장면씨에게 출마를 강요하여 입후보시킨 후 '경향잡지'와 '경향신문'을 통해
장면의 당선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분입니다...

군사정권 때도 '순교정신으로 반공 전선에 나서라'  등...

독재정권을 위한 정치적 발언을 심심치 않게 하셨습니다...

그만큼 일제 천황과 군사독재 정권을 위해 적극적인 정치적 행보를 보인 분입니다...

그런 당신께서 그간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비판이 일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종교도 현실과 유리되어서는 안 되고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그 위에 서야하는 이상,
종교인도 적극적인 사회 참여가 타당하다고 보았다. 국가 민족과 사회를 외면하고
현실을 떠나 있는 종교인은 민족과 사회를 위해 진실한 기구(祈求)를 드릴지조차 의문이라 생각했다'
(지금 정의구현사제단께서 하시는 행동은 그 말씀과 어긋나는게 없네요...^^;)

그러셨던 분이...

박정희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국민들의 민주화 투쟁에 대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당이나 교회에서 정치 집회를 열어서는 안됩니다. 다시 말해서 성토대회를 갖고
어느 특정인이나 정권을 물러가라고 단죄하는 극단적인 행위를 삼가야 합니다.
성직자는 어디까지나 기도와 대화로 불의를 바로잡고, 강론을 통한 비판 정도에 그쳐야 합니다.
감화와 선도를 통한 주권의식 고취나 정치 계몽은 있을 수 있어도, 교회 울타리를 넘어
종교인으로서 일선의 정치 영역까지 뛰어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말씀들만 따로 떼어서는 참 좋은 말씀이겠지만 스스로 하셨던 정치 행보는 외면한 채
독재정권을 비호하기 위해 사제나 목사에게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신거죠...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일관성 부재가 그것입니다...

 

지금 정의구현사제단이 하는 일은 우리 가톨릭이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정구사에 속하지 않은 신부님들께서도 각자 자신의 역할을 소중하게 하고 계십니다...

어떤 역할은 되고 어떤 역할은 안된다고 단정 짓는 것이 저는 무척이나 안타깝습니다...

사제분들은 신앙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주님의 길이라고 생각되면
종교적 양심으로 기꺼이 그 길을 가는 것이라 봅니다...

물질과 권력을 추구하는 극우개신교의 변질된 모습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개독교'라는 단어를
써가며 비난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톨릭이 행여나 그런 모습으로 변질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제가 비신자분들께 변명하던 생각도 납니다...

'노대주교님은 그저 가톨릭의 책임자로서 가톨릭에 대한 책임의식이
강하셨던 것 같습니다...

시대를 잘못만나서 그렇지 좋은 시대에 태어나셨더라면 종교의 순기능을 위해
노력하셨을테고 비신자들에게도 존경받는 어른이 되셨을 겁니다...

신사참배에 대해서도 프랑스 주교님들께 반대의견을 내기도 하셨답니다...'

솔직히 말해서 식은 땀 나는 '자기집 어른에 대한 보호 본능'의 변명이었을 수
있습니다...

사실 노주교님의 친일행보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많은 부분이 있더라구요...

혼자서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아무리 총칼에 휘둘리는 일제시대와 군사독재에 계셨지만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빽인
주님을 모신 분께서 왜 그리 용기가 없으셨을까...?'

지금 글을 쓰면서도 이런 저런 착잡한 마음이 듭니다...


암튼 2000년도에 우리 가톨릭은 일제시대 때의 잘못을 회개하는 반성문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 잉크가 벌써 마른 것은 아니겠죠...?

잉크가 마른다고 우리 가톨릭의 반성도 말라없어지는 건 아니겠죠...?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추기경님과 주교님들께서도 우리 신자들의 이런 마음을 잘 헤아리셔서
신자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그런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청하는 바입니다...

 


P.S : 꿈에 노기남대주교님께서 나타나시면...

'왠지 죄송합니다...'하고 그분의 어깨를 주물러드리고 싶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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